brunch

행복한 로리의 텃밭

by 혜솔

주말농장을 시작했다. 고작 10평 남짓한 작은 땅이지만, 퇴비를 넣고 땅을 고르니 제법 그럴듯한 밭이 되었다. 삼월부터 준비한 이 밭에서 무엇을 할까 생각해 봤다. 밭에서 뭘 하긴, 상추도 심고, 고추도 심고, 토마토도 심고. 물도 주고, 풀도 뽑고, 잘 키워서 맛있게 먹으면 되는 거지.


사실 텃밭을 하기로 결심한 이유엔 또 하나의 특별한 이유가 있다. 바로 로리 때문이다. 로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향기 나는 풀을 좋아했다. 갓난아기 시절, 자다 깨서 이유 없이 울 때면 나는 로리를 안고 베란다에 나갔다. 허브 화분 앞에 서서 민트잎이나 로즈마리 잎을 손끝으로 살짝 스치고는, 내 손을 로리의 코 가까이 가져다주곤 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울음을 뚝 그치고, 손을 코와 입에 대며 웃었다. 지금도 로리는 로즈마리 앞에서 "냄새가 참 좋아"라고 말을 한다.


나는 로리와 함께 하는 야외활동으로 텃밭을 선택했다. 당연히 시작은 쌈채소였다. 다른 사람들 밭을 둘러보니 하나같이 상추, 고추, 깻잎이었다. 나도 똑같이 심었다. 똑같은 10평 밭에서 누가 더 잘 기르나 키재기 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일단은 그대로 시작했다. 그런데, 로리와 함께 상추를 심고 물을 주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아기 삽으로 밭을 마구 파헤치고, 남의 밭 흙까지 퍼 나르니 조마조마했다. 아기 물뿌리개를 들고 수돗가에 가서 물을 길어오는 모습은 참 귀여웠지만, 그걸 모종에 쏟아붓는 바람에 상추 잎이 쓰러지기 일쑤였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내가 왜 이걸 시작했을까...


그때 문득 떠오른 생각.

허브!

애초에 밭 한 고랑은 허브를 심으려 했었다. 페퍼민트, 애플민트, 초코민트를 심고, 잎을 따서 차도 우려 마시고, 향도 즐기고 싶었다. 그런데 그만 깜빡하고, 며칠 전에 고추를 그 자리에 심어버렸다. 나는 초보 농부다. 함께 하는 로리처럼 천방지축 아기 농부일 뿐이다. 고추 몇 포기 심고는 간격을 너무 벌려서 남는 자리가 생겼다. 그 사이사이에 허브를 채워 심으면 어떨까?


허브가 자라면 잎을 따서 냄새도 맡고, 차도 마시고, 로리에게는 일거리도 되고 놀이도 되겠지. 이 텃밭은 채소밭이지만, 꽃을 심지 말란 법은 없지 않은가. 1년간 내가 임대한 땅이니, 이 안에서 어떤 걸 심든 내 마음이지. 그래서 로리에게 말했다.


“로리야! 우리 이 텃밭에 행복도 심고, 기쁨도 심고, 사랑도 심자~”

그랬더니 로리가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할머니~ 그럼 여기는 행복한 로리의 텃밭이에요?”


흙냄새 맡으며 로리와 함께 허브밭을 가꾸는 시간. 그 속에서 마음을 향기롭게 키워간다면, 진짜 행복이 싹트지 않을까.

할미꽃
이게 바로 쑥이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기차가 보이는 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