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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불편한 진실을 부드럽게 보여주는 그림책

그림책 《좋아요》를 통해 본 SNS 시대의 행복 착시

by 혜솔

여러 동물 마을로 통하는 길목에 ‘네모 마을’이 있었어요.로 시작하는 이 책은 '시적'이라는 이름의 작가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작가가 말하는 네모 마을은 어떤 곳일까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다.

네모마을의 주민들은 하루 종일 ‘좋아요’를 누르며 살아간다는 글을 읽다가 손자를 쳐다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아이는 씩 웃으며

"엄마도 아빠도 있는 거잖아? 할머니도 있고, 그건 바로~ 핸드폰!"이라고 외친다. 놀라웠다. 아무리 그림책이지만 서너 페이지 읽었을 뿐인데 세 살 아이의 머릿속에 네모가 핸드폰으로 떠오르다니...


네모마을의 네모들은 이웃의 일상과 감정, 심지어 표정 하나까지 평가하고 기록한다. ‘좋아요’를 많이 받는 것이 곧 존재의 증명이자 사회적 신분이 된 곳, 그곳이 네모 마을이다.

그림책《좋아요》는 낯설지 않은 풍경 속에서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를 비추고 있다.


‘좋아요’가 만든 가짜의 연쇄


이야기는 네모 마을의 사소한 일상에서 시작된다. 은행원 사자는 네모에게 잘 보이기 위해 황금빛 갈기를 다듬고, 그 모습을 본 얼룩말은 곧장 미용실로 달려가 같은 색으로 염색한다.

청설모는 얼룩말의 줄무늬 스카프를 따라 그리고, 비둘기는 그 스카프를 훔쳐 ‘독수리’로 변장한다. 모두가 서로의 시선을 따라가며 ‘좋아요’를 얻으려는 경쟁에 빠져든다.

결국 진실이 드러나 비둘기의 거짓이 밝혀지자 동물들은 일제히 비난을 쏟아낸다.

하지만 작가는 조용히 되묻는다.

'비둘기만의 잘못일까?' 비둘기는 단지 인정받고 싶었을 뿐이다. 그의 욕망은 결코 특별하지 않다.

‘좋아요’를 얻기 위해 필터를 씌우고, 타인의 기준에 맞춰 자신을 편집하는 모습은 현대 사회의 우리를 닮아 있다.


‘좋아요’의 구조, 인정욕망의 사회학


《좋아요》는 SNS 시대의 인간 심리를 정밀하게 포착한다. 우리는 ‘좋아요’라는 작은 클릭에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과 소속감을 기대한다. 그러나 그 안에는 ‘비교’와 ‘불안’이 동시에 깃들어 있다.

사회학자들이 말하는 ‘인정의 욕망’이란 자기 존재를 타인의 시선으로 확인하려는 충동이다. 좋아요가 늘수록 기분이 좋지만, 동시에 그 숫자에 종속된다. 책 속 동물들이 끊임없이 ‘좋아요’를 좇는 모습은 이 욕망이 얼마나 쉽게 경쟁과 모방으로 변질되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좋아요’의 사회는 ‘참다운 나’보다 ‘남에게 보이는 나’를 더 중요하게 만든다. 좋아요를 받기 위해 ‘좋은 사람’처럼 보이는 연극, 그 피로감이 우리를 점점 고립시킨다.

그래서, 그림책 《좋아요》는 어린이의 눈으로 세상을 비추지만, 그 울림은 어른들에게 더 깊다.


진짜 힐링은 어디에 있을까

▲'좋아요'를 많이 받으면 행복할까? ⓒ 신혜솔


"'좋아요'를 많이 받으면 행복할까?"

짧은 문장이지만, 타인의 시선에 길든 우리의 마음을 정확히 겨눈다. 그림 속 거북이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자신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그는

나무그늘 아래 돗자리를 깔고 눕는다.

▲아, 좋다 ⓒ 신혜솔


"아, 좋다." 누구의 평가도, 해시태그도 필요 없는 평화다. 좋아요가 아닌, ‘좋아함’이 피어오르는 순간이다. 이 한마디는 ‘타인의 행복’이 아닌 ‘자신의 행복’을 되찾은 자의 고백처럼 들린다.

그림은 잔잔하고, 색감은 부드럽다. 이 순간만큼은 세상의 평가도, 누군가의 ‘좋아요’도 필요 없다.

그저 존재 그 자체로 충만하다.

▲네모에 의해 '힐링' '좋아요'로 해시태그된 거북의 시간 ⓒ 신혜솔


그러나, 거북이의 고요한 모습이 어느새 화면 속 이미지로 바뀌어 있다.

화면에는 "#힐링", 그리고 하트와 ‘좋아요’ 아이콘이 찍혀 있다.

이제 ‘쉼’은 콘텐츠가 되었고, ‘힐링’은 해시태그로 유통된다.

거북이의 진짜 평화는 네모의 카메라에 포획되어 다시 ‘좋아요’의 세계로 회수된다.

'좋아요' 라는 디지털 언어가 어떻게 우리의 감정과 일상을 점령해 버렸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장면은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읽히기도 한다.

"힐링은 감상이 되어야만 존재하는가?"

현대 사회에서 ‘힐링’은 소비의 언어가 되었다. 조용한 산책, 커피 한 잔, 책 읽는 시간조차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듯 여겨진다.


그림책《좋아요》의 마지막 장면은 그 불편한 진실을 부드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드러낸다.


‘좋아요’를 넘어 ‘좋아함’으로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좋아요’는 행복의 척도가 아니라, 행복의 착각일지도 모른다고.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것은 타인의 손끝에서 오는 인정이 아니라 자신 안에서 피어나는 ‘좋아함’이다. '좋아요'가 아닌, '좋아함'.

그 차이는 미묘하지만 결정적이다. 거북이가 보여준 느림과 고요는 디지털 시대의 과속에 제동을 건다. 그의 휴식은 아무도 보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다.

작가는 '정해준 답이 아닌 자기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좋아요>를 만들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좋아요를 누르는 대신, 잠시 멈춰 자신의 마음에 ‘좋아요’를 눌러보라고 권한다.


책을 덮으며 '좋아요'에 대한 내 마음은 어땠는지 돌아 보았다. 누군가 내 글이나 사진에 눌러주는 ‘좋아요’에 마음이 설렌 적이 많았다. 그 숫자가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 듯 착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진짜 위로는, 누군가의 손끝이 아니라 내 안의 고요에서 시작된다는 걸 이 책이 일깨워주었다.

한편으로는, 정말 ‘좋아서’ 눌러주는 진심의 손길들도 느낄수 있다. 그 마음은 단순한 클릭이 아니라 공감과 응원의 표현이 되기도 한다.

좋아요의 세계가 허상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진심이 전해지는 순간, 그 안에서도 사람과 사람은 연결된다.


그림책 《좋아요》는 SNS 시대의 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정말 좋아요?"

그리고 이렇게도 속삭인다.

"좋아요를 누를 때, 진심으로 좋아서 누른 적이 있나요?"



이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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