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고르도, 포르투갈
*연재브런치북에 올려야 하는 글을 수정해 놓았는데, 그 이전글로 잘못 올렸더라고요^^
그것도 연재북이 아닌 곳에 얼떨결에 발행한 사실을 늦게 알아서 다시 올립니다.
라이킷 해주신 분들께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경로 이탈
카보 다 로카로 향해 출발한 오후
어느 지점에서 방향이 틀어졌을까
경로를 이탈한 자동차는
시간이 물드는 해변에서
길을 멈췄다
지는 해가 마음을 끌어당긴다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석양을 바라보다가 그만
마음이 젖어 버린다
이곳은 어디쯤일까 서성일 때
바람결에 스치는 허전함
이정표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뒤따라오던
누군가 손을 들어 신호를 보낸다
그 손끝에 흔들리는 것은
돌아오라는 것도 아니고
떠나라는 것도 아닌
나를 이탈한 물색 스카프
오늘의 일정은
해지는 풍경 앞에서
이탈했던 한 줄기 바람을
목에 두르는 일이 되었다
리스본에서 카보 다 로카를 향해 차를 몰았다. 오후에 출발한 건, 석양에 물드는 하늘을, 길 어디쯤에서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북적이지 않는 한적한 길을 천천히 달리다, 어느 순간 붉어진 하늘을 향해 속도를 올리는, 그런 영화 같은 장면을 마음속으로 먼저 달려본 것 같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국에서, 운전석 옆의 동승자가 아니라 혼자 태양을 향해 달려가는 꿈 정도는 꿔도 되지 않느냐는, 사소한 변명 같은 기대였다.
그런데 방향이 한 번 어긋났다. 경로가 틀어진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달렸다. 길이 좋았고, 지도 속 안내 음성은 뒤로 밀어 두고 싶었다. 나는 오히려 더 신나게 차를 몰았고, 발그레하게 물들어 가는 하늘을 따라가다 끝내 예정에 없던 해변 마을로 들어서고 말았다.
지도 밖으로 새어 나온 저녁은 나를 몬테 고르도에 내려놓았다. 실수는 대개 서둘러 되돌리고 싶지만, 여행에서는 가끔 그 실수가 도착지가 되곤 한다.
경로이탈이 데려다준 곳에는, 거창한 표지 대신 명랑한 표정이 서 있었다. 국기의 초록과 빨강을 온몸에 두른 소 한 마리가 서핑 보드 위에 올라서 있었고, 가슴에는 포르투갈의 문장이 큼직하게 박혀 있었다. 무겁고 둔중해야 할 몸이 가장 가벼운 판 위에 올라선 그 어색한 균형, 마치 이 나라가, 이 도시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방식처럼 느껴졌다. 정체성은 기념비처럼 엄숙하게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상점 앞의 유머로, 응원 머플러의 문장으로, 저녁빛 속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웃음으로 생활 속에 걸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길을 잃었기에 나는 목적지의 이름보다 먼저, 이 작은 농담을 만났고, 그 농담 덕분에 낯선 땅은 조금 덜 낯설어졌다.
해변으로 들어서자 석양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거나 달리기를 하는 몇몇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해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커다란 리조트가 있는 것으로 보아 휴양지인 듯하다.
봄의 바다는 투명했고 모래는 어둑한 띠로 뻗어 있었다. 파도는 얇게 접혔다 펴지며 물가에 잔 빛을 남겼다. 하늘은 분홍에서 살구로 천천히 옮겨가고, 수평선은 낮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일몰은 빠르지 않았다. 낮과 밤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조용히 자리를 바꾸는 시간이었다.
석양 속에서 무엇인가 본 것 같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가 떠오른 건 왜일까. 그 소설에서 “눈을 뜨는 일”은 더 많은 것을 가지는 일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감당하는 일이다. 끝내 눈을 돌리지 않는 한 사람의 시력은 특권이 아니라 책임이었다. 나는 바다 앞에서, ‘보는 일’이란 외면하지 않는 쪽으로 몸을 돌리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오늘의 실수를 감당하는 일도 나의 보는 눈으로 인한 것.
드문드문 움직이는 사람들 중 한 사람으로 바다를, 하늘을 보며 걸었다.
해변을 걷다가 스카프를 떨어뜨린 줄도 몰랐다. 석양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기는 동안, 손끝의 감각이 느슨해져 있었다. 멀리서 한 사람이 걸어와 내 앞에 멈춰 섰다. 그는 말보다 먼저 손을 흔들어 보였다. 내 목에 두르고 있던 얇은 스카프였다. 나는 화들짝 스카프를 받아 들고 오브리가다!(고맙습니다)를 몇 번이나 말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가는 동안, 나의 부주의가 노을처럼 붉어졌다.
길을 잃는다는 건 지도를 놓치는 일이 아니라, 내가 믿어온 속도를 잠깐 내려놓는 일인지도 모른다. 몬테 고르도는 그 내려놓음을 일깨워준 곳이다. 작은 상점의 색과 넓은 해변의 여백이, 서두르던 시선을 풀어주었다.
나는 이제 카보 다 로카로 간다. 대륙의 끝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끝이 내게 무엇을 묻게 하는지 듣기 위해서. 그러나 그 질문은 이미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경로가 어긋난 저녁, 여행은 그렇게 다시, 내 앞에 도착해 있었다.
https://youtu.be/Dt1jMWVvcqg?si=lG21EOC-7AVGQBNM
이 곡은 소리의 과장이 없는, 여백으로 감정을 남기는 노래입니다. 몬테고르도의 봄 해변처럼 조용히 흐르다가도, 길을 잃고 멈춰 선 순간의 숨을 오래 붙잡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