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의 마침표가 바다의 시작이 되는 곳

카보 다 로카, 포르투갈

by 혜솔

수평선의 시작


대지의 중력이 희미해지는 지점

바람의 서사가 고막을 뚫고 들어와 뼈를 울린다

깎아지른 절벽은 대륙이 써 내려간 시의 마지막 구절

부서지는 포말은 그 문장이 토해내는 하얀 비명이다


이곳에 서면 땅이라는 안온한 지지대는 사라지고

무한(無限)을 갈구하는 눈동자만 남는다

어린 바람이 절벽의 허리를 감아올릴 때

내가 알던 나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붉은 등대가 밤마다 고독한 불빛을 뱉어내는 것은

길 잃은 자를 부르는 손짓이 아닌

이곳에 남아 익어가겠다는 다짐일까


끝은 시작을 품고 다시

내게로 온다


몬테 고르도에서 다시 리스본으로 돌아오며 그저 실없이 웃음만 나왔다. 가깝지 않은 곳으로의 외출이었다.

붉은 현수교를 건너며 나만의 영화를 찍는 기분이었다. 그 다리를 건너고 싶어 황금모래해변까지 줄곧 달렸던 걸까.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한 템포 쉬고 난 후에야 다음장으로 넘어갈 수 있었으니 조심해야겠다, 경로이탈.


다시 리스본! 4월25일 다리(살라자르 다리) 와 벨렝탑


바다는 땅의 절망 위에서 개화한다.


유라시아 대륙의 최서단, 카보 다 로카의 절벽 끝에 섰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끝이라는 말은 늘 먼 미래의 언어였다. 발바닥 아래로 대륙의 맥박이 잦아들고, 오직 대서양의 거친 숨소리만이 허공을 메운다.


카보 다 로카의 절벽 끝에 서면 카몽이스의 문장이 먼저 몸으로 이해된다.

포르투갈의 시인 '루이스 드 카몽이스'가 남긴 "이곳에서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는 문장은 이곳의 지리적 선언만이 아니다. 그것은 지지대를 잃어버린 자가 마주해야 할 무한에 대한 예언이자, 경계를 넘어서는 자의 숙명적인 첫 발자국이다. 땅이 끝나는 지점에서 비로소 바다가 시작되듯, 인간의 내면 또한 딛고 선 자리가 무너질 때 비로소 타자(他者)를 향해 눈을 뜨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생각나는 작가는 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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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등대와 유라시아 최서단을 표시하는 기념표석-“이곳에서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


카몽이스가 “이곳에서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라고 남긴 자리에서, 바다는 바깥으로 나아가는 항해이면서 동시에 안쪽으로 꺾이는 항해가 된다. 그때 나는 페소아를 떠올렸다. 『불안의 책』에서 그는 마음이 마치 깨진 그릇처럼 새어 나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감각을 반복해서 적는다. 그의 텍스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불안은 절벽 끝에 서면 문학적 수사가 아니라 몸의 상태가 된다. 이곳에 서 있는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닌 또 다른 나인 듯한 착각이 들었다. 땅의 지지대가 희미해질수록 마음은 더 쉽게 비워지고, 페소아가 여러 이름으로 자신을 흩뜨려 놓았던 이유도—단 하나의 자아로는 이 무한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이해된다. 내가 지금 그 상태를 제대로 이해하는 걸까?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사유일 수도 있지만, 지금 이 순간의 내 마음이 그렇다.

카보 다 로카의 바다는, 채우는 풍경이 아니라 비워내며 깊어지는 방식으로 나를 끝까지 밀어 넣는 듯했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지독한 긍정, 사우다드


포르투갈 사람들의 정서인 '사우다드(Saudade)' 역시 이 절벽 위에서 비로소 완성된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Amália Rodrigues의 노래를 듣고 있다. 내가 듣고 있는 음악이 내 안을 가득 채우곤 저 먼바다로 흩어지는 느낌. 이 느낌은 상실에 대한 슬픔이 아니다. 부재하는 것에 대한 지독한 긍정이며, 끝을 마주하고서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는 생의 의지로 다가온다. ‘없음’이 남긴 자리에 머물되, 그 자리에서 다시 출발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나는 황량한 절벽 끝에서 삶이라는 긴 문장의 마침표를 찍어 보려 한다. 그러나 그 마침표는 종결이 아니다. 문장은 마침표를 딛고 다음 행으로 넘어가야 한다. 끝을 목격한 자만이 비로소 뒤를 돌아보지 않고 새로운 항해를 결심할 수 있을 테니까.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찰나, 대륙의 끝은 고립된 섬이 아니라 우주의 입구가 된다. 붉은 등대는 밤마다 고독한 안광을 뿜어내며 수평선을 응시한다. 그 불빛은 길 잃은 배를 위한 이정표인 동시에, 생의 끝자락에서 길을 잃은 여행자들을 향한 묵직한 격려다.

카보 다 로카가 ‘땅끝마을’로 불리는 이유는, 단지 지도가 멈추는 지점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곳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자리에서만 가능한 사유가 시작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끝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삶의 방향을 다시 묻는다는 점에서, 이곳의 사우다드는 감정이 아니라 위치인 셈. 땅이 끝난 자리에서만 허락되는 태도, 그 위태로운 긍정 위에 포르투갈의 시간이 쌓여왔다.


땅끝 마을에 선다는 것은, 삶의 가장 먼 자리에서 다시 중심을 가늠하는 일이었다.


*카보 다 로카(호카곶)에서 대서양을 바라보며 들었던 곡은 Amália Rodrigues 가 부르는〈Canção do Mar 바다의 노래〉였어요. 이 분의 노래를 즐겨 듣는 편인데, 리스본의 골목길을 걸으며 듣기엔 아말리에 호드리게스의 음성이 더 좋지만요. 오늘은 다른 버전으로 들어보려고요.

Dulce Pontes의 〈Canção do Mar〉는 목소리의 윤곽이 맑아, 바다의 바람과 포말을 더 또렷하게 들려주는 느낌입니다. 카보 다 로카에서 느낀 사우다드는 짙은 한숨이라기보다, 수평선처럼 선명하게 남는 그리움이었기에 이 버전을 골라 보았습니다.

https://youtu.be/acZp8cMQ3js?si=Wx3VIMwA8JTZ46wE

Dulce Pontes(Canção do Mar)-바다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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