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마/포르투갈
한때 무너진 나,
파티마로 향하는 길 위에 서 있다
기도를 놓지 않았기에, 살아 있다
기도는 속삭이듯 낮은말
가장 깊은 곳에서 피어나는 울림
1755년 리스보아, 대지는 갈라지고
모든 것은 무너졌다
신은 침묵했다
돌아오지 않는 대답을 뒤로한 채
눈물로 용서를 구하는 이들
그 울부짖음은 회복을 염원한 기도였다
회복된 도시는 오랜 세월 견고히 서 있었다
1974년, 독재의 그늘아래
무수한 카네이션이 피어올랐다
무너짐과 혁명 사이
꽃으로 기억된 부활의 나라
파티마 성모가 깃든 땅, 포르투갈
발현하신 성모여,
빛나는 자비의 길로 우리를 이끄소서
묵주를 쥔 손과 무릎 꿇는 이들 사이에 앉아
로사리오 한 알 한 알 건너며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
무너짐과 회복의 언어들이
신비속에 흐르는 파티마의 하루
파티마를 향해 리스본을 출발하기 전, 나는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의 생가 앞에 잠시 섰다. 골목은 넓지 않았고 문 앞은 조용했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한 나라의 마음을 대신해 울려 퍼졌던 시간을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내가 가려는 곳이 어디인지 다시 짚었다.
파티마로 가는 길. 여행의 일정표에 적힌 목적지가 아니라, 기도하러 가는 길이었다. 4월이었다.
차에 올라 습관처럼 음악부터 틀었다. 그리고 흔들림 없는 오늘을 위해 화살기도를 했다.
리스본의 돌담과 지붕들이 뒤로 밀려나고, 도시는 점점 낮아졌으며, 창밖의 하늘이 넓어졌다. 고속도로로 올라서자 길은 북쪽으로 곧게 뻗어 나갔다.
‘Fátima/Ourém’ 표지판이 시야에 들어오자 나는 자연스럽게 속도를 늦췄다. 들려오는 음악도 바람의 소리도 조금 부드러워지고, 소음이 작아졌다. 고속의 리듬에서 내려오니, 도착보다 먼저 기도가 앞서기 시작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포르투갈은 한 번 완전히 무너진 적이 있다. 1755년 11월 1일, 모든 성인의 날 아침이었다. 하늘은 맑았고 사람들은 성당에 모여 있었다. 그때 땅이 갈라지고 리스본은 순식간에 폐허가 되었다. 예배당이 무너지고, 이후화재와 해일이 도시를 거의 지워버렸다. 신 앞에서 상처 입은 나라. 그럼에도 사람들은 다시 도시를 세웠고, 무너진 땅 위에서 다시 살아야 했다. 이런 아이러니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었을까. 신의 분노인지 알 수 없는 혼란 속에서도 그들은 끝까지 무너지지 않으려 기도했다. 그 기도는 현실을 바꾸는 마법이 아니라, 현실을 견디며 끝까지 사람으로 남게 하는 힘이었다. 그들의 기도는 훗날 지진이나 해일을 과학의 눈으로 돌릴 수 있게 될 때까지 이어졌다. 회복된 도시는 오래도록 굳건했다.
또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 1974년 4월 25일 카네이션 혁명이다. 독재에 맞서 총 대신 꽃을 꽂은 병사들, 피를 흘리지 않고 끝내 민주주의를 선택한 사람들이 이 나라 국민들이다. 그래서 포르투갈에서 4월은 자유와 존엄의 계절로 불린다. 무너짐과 회복, 절망과 존엄이 한 나라의 역사에 이렇게 선명하게 겹쳐 있다는 사실이 묘한 동질감을 준다. 그들의 ‘자유와 존엄의 계절’은 곧 우리의 ‘희망과 회복의 시간’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니까.
2017년 4월 어느 날, 나는 파티마를 향해 달리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왜 성모님은 이 땅에, 그것도 권력자들 앞이 아니라 가난한 양치기 아이들 앞에 나타나셨을까? 그 깊은 뜻까지 내가 다 헤아릴 순 없지만, 아이들의 시선이야말로 세상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아들이는 창이 아니었을까. 설명하지 않아도 믿을 수 있고, 득실을 따지지 않아도 받아들이는 마음. 어쩌면 성모님이 아이들에게 바라셨던 것도 기적을 보여달라는 외침이 아닐 수 있다. 세상이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 주는 소박한 말—기도의 이어 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파티마는 내가 처음 찾아간 성모 발현 성지다. 그래서인지 도착하자마자 마음부터 고요해졌다. 그날은 주일이 아니어서 매우 한적했다. 넓은 성지에는 빈 공간의 여운이 더 크게 느껴질 정도로 고요가 가득했다. 몇몇 순례자들이 각자 장소를 돌며 기도를 하고 있었고, 그들의 발소리조차 조심스러웠다. 말소리보다 숨소리가 더 또렷하게 들리는 곳이었다. 그 고요함이 가장 큰 언어처럼 다가왔다.
안내를 받으며 새로운 사실도 들었다. 그해는 성모 발현 100주년이 되는 해였고, 한 달 뒤에는 교황님이 방문해 100주년 행사가 예정되어 있다고 했다. 곧 큰 기념일을 앞두고 있었지만, 내가 찾아간 파티마는 참 조용하고 담담했다. 사람들의 관심이나 규모보다 오래 쌓인 침묵이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기도가 소란이 되지 않게, 이 성지는 스스로를 낮추고 있는 듯했다. 마치 '기도는 크게 외치는 게 아니라 오래 머무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로사리오 성모대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돌과 촛농, 오래된 나무 냄새가 뒤섞여 깊은 분위기를 더했다. 나는 자리에 앉아 묵주를 손에 들었다. 손끝으로 묵주알을 하나씩 넘길 때마다 마음이 차분해졌다. 영광의 신비 5단까지 기도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도가 머리로만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 손끝의 촉감이 새삼 알려주었다. 묵주알을 하나씩 넘길 때마다 마음도 한 칸씩 더 낮아졌다.
로사리오 대성당을 나와서 한참을 걸어 맞은편 또 다른 성당으로 향했다.
로사리오 대성당 맞은편에는, 전혀 다른 시간의 건물이 서 있다. 새로 지어진 삼위일체 대성당이다. 오래된 석조의 표정과 달리, 이곳은 직선과 여백으로 침묵을 짓는다. 전통을 대신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순례자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약 9천 명을 품을 수 있다는 규모는, 파티마가 ‘기억의 장소’에서 멈추지 않고 현재진행형의 신앙으로 살아 있음을 말해준다. 삼위일체 성당을 돌아보며 생각했다. 믿음은 시간을 거슬러 오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새로운 그릇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어떤 곳에서는 말이 줄어들고, 또 어떤 곳에서는 마음이 더 낮아진다. 그 자리에서는 내가 믿음의 정답을 알아서라기보다, 그냥 인간으로서 겸허해지고 싶었다. ‘세계 평화’라는 말이 너무 커서 평소엔 자칫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 말이 결코 허공에 머무르면 안 될 것 같았다. 성모님이 아이들에게 “기도하라”라고 했던 것처럼, 지금의 나는 그 요청 앞에 응답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기적을 기대하기보다, 낮은말의 편에 서는 일 말이다.
돌아오는 길,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무엇을 얻었다기보다 오히려 내려놓고 온 것이 많았다. 파티마는 내게 조용한 침묵의 순례로 남았다. 무너진 곳에서 다시 일어난 나라의 시간이 내 안을 스쳐가며, ‘기도’라는 말에 새로운 의미가 더해졌다. 기도란 내 뜻을 앞세우는 게 아니라, 세상이 무너지지 않길 바라며 나를 낮추는 일. 평화로움이 아닐는지. 아주 짧게나마 나는 그 낮음에 참여하고 돌아왔다.
파티마를 다녀온 지 한 달쯤 지나- 나는 이미 그곳을 떠난 후였지만-교황님이 미사를 집전하는 영상을 보았다. 2017년 5월 13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두 목동 프란치스코와 히아친타를 성인 반열에 올리며 전 세계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직접 밟았던 성지의 공기와 화면 너머로 마주한 감동이 교차하는, 가슴이 벅차올랐던 기억이 난다.
* 차에서 화살기도 하며 들었던 곡 중에서 이 곡은 혼자 성지를 둘러보며 들었던 곡입니다. 고대 성가(Gregorian Chant)의 느낌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합창곡으로, 과거의 신앙이 현재의 평화와 만나는 파티마의 공간적 특성과 잘 어울리는 느낌이 듭니다.
https://youtu.be/B-50CeNelnA?si=_Fyu2kgrZT2oYw1p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어우러져 마치 하나의 공동체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곳, 하지만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 마지막 미사가 끝난 후에는 드넓은 성지에서 마치 혼자 있는 듯한 고요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때 성당 종탑의 종소리가 정적을 깨뜨릴 때면, 공간감이 특별히 아름답고 평온한 소리로 다가옵니다. 이 곡의 느낌이 저는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