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살겠다, 도피 여행기 15

나를 찾는 방법

by 아르미




눈치빠른 리버,

질문을 어려워한다는 걸 간파하시어 재차 풀어주었다.


“이것들이 왜 좋다고 느끼는 거야?

좋다, 싶을 때 드는 생각이나 느낌을 말해봐.”


“나도 사진 그림 같은 거 잘은 모르는데ㅋㅋㅋ

왠지 모르겠는데 그냥 보면 느낌이 오는 경우가 있어.


이 사진은 보면, 따듯해.

이걸 찍은 사람이 어떤 감정으로 이 풍경을 바라봤던 건지 느껴져.

이 풍경을 어떤 감정을 느끼면서 찍은 걸까.

사진 속 풍경을 찍고 있는 사람의 시선을 상상해보는 거야.

그리고 그 때 그 사람이 느낀 감정을 전달받는 거지.

제대로 전해지면 감동이 일어.


작품 자체가 좋아서 잘 전해지기도 하지만,

지금의 나한테 필요한 감정이어서 잘 전해지기도 해.

지금의 나를 예민하게 만들고,

지금의 내가 예민하게 느끼는 감정이라서.

작품 덕분에 묻어둔 감정이 표출되는 거지.

정신건강에 아주 유익해. ㅋㅋ“


“이건 따듯하면서 멋져.

그냥 평범한 버스나 기차 빈 좌석이잖아.

그런데 가림막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나,

빛이 반사된 좌석 손잡이, 쿠션, 책상 같은 것들이, 색감이 너무나 매력적이야.

눈부시면서 몽환적이기도 하고…

그냥 빈 좌석인데,

이 힙한 순간을 딱! 포착해서 찍은 거잖아.

내가 지금 느끼는 멋지다, 아름답다, 싶은 감정들을 이 사람도 느낀 거겠지?

찍은 사람이 느낀 감정을 전달받고 상상하면서 감동하고,

그런 게 재밌어.


감정을 전달받았다고 하지만 사실은 내 감정이잖아.

내 안에 있는 감정을 느끼는 거잖아.

작품 덕분에 평소에 안 쓰던 내 안의 감정을 꺼내서 쓰게 되는 거지.

그 감정이 확 커지기도 하고,

그래서 울컥하기도 하고,

그렇게 감성이 자라나는 느낌이 좋아.

뭐든 더 많이, 더 깊게,

풍부하고 다채롭게 느끼면서 살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서.

전부 깊게 느끼면 고단하긴 하겠지만 더 의미있어지잖아.

사는 게.”


말하면서 왜 좋아하는지가 정리되었다.


나는 잘 느끼면서 사는 걸 좋아하는구나.


절이나 공원을 좋아하는 것도,

음악을 들으면서 춤추는 것도,

독서, 미술 같은 감상류를 좋아하는 것도,

천천히 혹은 깊게 빠져서 느끼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 거야.


그래서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가장 힘들었던 거야.


취향에는 그 사람의 성향이 묻어난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면,

그걸 좋아할 수밖에 는 성격과 성향이 내 안에 있는 거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나를 말해주고 있었다.


'절을 좋아한다, 미술관을 좋아한다,

단순히 좋아한다는 것을 넘어서,

왜 좋아하는지,

어떤 성격과 성향이 내 안에 있어서 좋은 건지,

나를 계속 들여다봐야겠어.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도 그런 맥락 가운데 있지 않을까.'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나조차 모르겠는 이유는 어쩌면,

내가 나를 몰라서 그런게 아닐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까,

뭘 원하는지도 모르는 거지..'


그래도 원하는 것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겠다.

나는 다시 잘,

느끼면서 살고 싶다.

지금도 여전히 이렇다 할 감흥이 없는 흑백세상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고,

그걸 좋아하는 나를 알아가다 보면,

되찾는 법도 알게 되지 않을까,

컬러풀한 세상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아득히 멀어져가는 정신을 겨우 붙잡고 대화를 이어갔다.


“근데! 이건 그냥 내 경우야.

나는 그림 의미 같은 것도 잘 안 찾아봐 ㅋㅋㅋㅋ

진짜 가끔 진짜 미쳤다 싶은 거는 앞에서 계속 멍 때리고 울컥하고 있다가,

좀 진정되면 개인사나 시대상 같은 걸 찾아보지.

작가가 어떤 사건을 겪었을 때 그린 건지 알면 감정이 더 전해지기도 하더라고.

모처럼 잘 전해지는 작품을 만났는데 놓친 감정이 있으면 아쉬우니까.


나는 그냥 이 사람의 감정이 전달되는 느낌이 좋고,

그 느낌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좋은 거야.

너도 너의 경우를 찾아봐.“


제대로 알아들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제법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확신의 J


건물 밖으로 나오니 쇼핑몰 앞 야외공연장에서 밴드공연을 하고 있었다.

노래가 낯설지 않았다.

언어는 생소한데 익숙한 인디감성을 준다는 게.. 들으면서도 신기했다.


두번째 곡이 끝나갈 무렵, 리버가 물었다.

“너 배는 타봤어?”

“아니?! 재밌겠다!!”


따라갔더니 길쭉한 강이 나왔다.

버스터미널처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앉아서 기다리니 배 한 척이 왔다.

모터도 달리고 제법 컸지만 투박한 나룻배 감성이 느껴졌다.

배 안에는 교회 예배당처럼 긴 나무의자들이 정갈하게 놓여있었다.


부와아ㅏㅏㅏㅏ앙

우렁차게 출발하는 배에 몸을 싣고 물살을 가르는 느낌이 아주 시원상쾌해ㅐㅐㅐㅐㅐ

“덕분에 태국 대중교통 다 타보고 가네!!!”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리버ㅋㅋ


배에서 내려 조금 걸으니 사원이 나왔다.

“황금사원이라는데 나도 안 가봐서 어떨지 모르겠어.”

저 멀리 휘황찬란하게 번쩍이는 지붕이 보였다.

가다보니 가파른 계단이 나왔다.

“지붕 봤으니까 됐어.”

빠른 포기.ㅋㅋㅋ

ㅋㅋ내가 다음에 가보고 어떤지 알려줄게”

“기대할게ㅋㅋ”


산책 겸 걷다 보니 익숙한 길이 나왔다.

“어?! 여기 숙소 가는 길인데!?”

“방금 전 사원, 숙소 근처라서 갔던 거야ㅋㅋ

오늘 치앙마이간다면서. 짐은 다 싸놨지?

공항까지 어떻게 갈거야?”

“택시 탈라 그랬지.”

“ㅋㅋ 내가 데려다줄게.

대중교통으로 가면 훨씬 싸.”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ㅋㅋㅋ


아침에 체크아웃하면서 맡겨둔 짐을 찾아 나왔다.

지하철을 따라 타니 마법처럼 공항이 나왔다..!


“캐리어도 들어주고...

덕분에 너무 편하게 왔네ㅠㅠ

네 덕분에 여행와서 처음으로 아주 계획적인 하루를 보냈어! 정말이지 이보다 알찰 수는 없을 거야!!!ㅋㅋㅋㅋ

너무너무 고마워ㅠㅠ 너는 최고야!!!ㅠㅠㅠㅠ”

“ㅋㅋㅋ 나도 친구 하나 생겨서 기뻐.

덕분에 오랜만에 재밌었어.”


“나 한국 돌아갈 때 방콕 다시 와야 하거든?!

이 공항에서 비행기 타고 가야해서 ㅋㅋ

그때 보자! 몇 일 말미 두고 올게!”

“좋아! 여행 잘하고! 와서 이야기 많이 들려줘~”

“응!! 너무너무 고마워! 조심히 가~!!!”


리버의 따듯한 배웅을 뒤로 하고 밤 비행기에 올랐다.

까만 밤하늘을 수놓은 빛들을 바라보면서 그간의 여행을 돌아보았다.


방콕은 참,

극과 극의 재미를 주는 곳이었다.

낮에는 사원에서 경건하게 멍 때리다가,

밤에는 광란의 파티를 즐길 수 있는 곳ㅋㅋㅋ

어느 쪽이든 힐링에 제격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방콕은 역시,

리버로 기억될 것이었다.









또 보러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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