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 사랑할 수 있을까?
저는 얼마 전까지 마음에 큰 상처를 받고 후회와 미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이번 글은 쓰기가 정말 어려웠습니다.
글 전체의 내용을 3번 이상 뒤엎었습니다.
다소 부끄러운 속마음임을 미리 고백합니다.
상처 입은 사람의 변
연재 중인 다른 글은 이미 완성해 다듬기를 반복한데 비해, 이번 주제는 연재 일이 코앞임에도 글을 완성하지 못했다.
나는 오만했다.
나에게는 타인과 잘 지내고 상대를 사랑하는 법이 가장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최근 나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미워했다.
내가 마음을 준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했다.
상대가 나에게 준 상처의 크기보다, 그 상황을 더 크게 인지하고 느끼고 증오했다.
나는 사랑하던 주변 타인들을 왜 이토록 미워하게 되었을까?
나에게 사랑하던 이들이 마치 상냥한 지옥 같았다.
너와 너가 모여 너를 만든다
너와 너와 너가 모여 나를 만든다
…
너와 너는 나를 합성하고
나와 나는 너를 합성한다
너는 나에게 의존해 너가 되고 나는 너에게 의존해 내가된다
…
모든 것이 영원한 천국은 얼마나 지루하겠니
불변이 없으므로
붙들릴 게 없다
소유할 게 없으므로
자유다 안녕!
마지막이란 없다는 것
심지어 나의 죽음 앞에서도
고마워 상냥한 내 지옥, 오늘도 안녕히!
상냥한 지옥, 김선우 작
유튜브를 통해 강신주 철학자의 상냥한 지옥이라는 인문학 강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어쩜 알고리즘의 힘은 대단하단 말이지.
나의 내면까지 파악하고 영상을 추천해 주다니!
미래기술이 사람에게 우정과 같은 '마음 헤아림'의 단계까지 발전한 걸까?
그 강의에서 강신주 철학자는 말했다.
관계는 '대체될 수 있는 존재'와 '대체될 수 없는 존재'로 나뉜다.
대체될 수 있는 존재는 우리에게 아무 의미를 가지지 않기에 사라지더라도 마음 아프지 않다.
하지만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사라졌을 때 우리는 마음 아파하고 슬퍼한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대체 불가능한 존재'이기에 상처를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상냥한 지옥이 되었다.
그러나 세상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대체될 수 없는 너와 나를 계속 만들어, 이 세상을 애틋하게 바라보고 살아나가야 한다고...
사랑하고 아끼고 좋아한 만큼 상처받는 관계.
그들은 나에게 정말로 상냥한 지옥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나에게는
소중하고 대체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나는 마음 아팠다.
대체될 수 없는 그들은, 나에게 상냥했고 따뜻했다.
어느 날 대체불가능한 그들이
이제는 나와의 상냥한 관계를 떠나버렸기에,
내 마음은 슬퍼 지옥이 되었다.
나는 마음이 헤펐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에겐 너무나 소중한 관계들이 넘쳐났다.
내가 만든 거대한 상냥한 지옥에서 괴로워하는 나.
어느 날, 더 이상 상냥한 지옥에서 괴로워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김선우 작가의 말처럼.
'모든 것이 영원한 천국은 얼마나 지루하겠나.'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서로를 구속하고 관계의 영원을 갈구하는.. 서로의 상냥한 지옥이 기꺼이 되어 살아가는 것의 연속이 아닐까?
그 정도의 번뇌와 지옥이 없다면
이곳은 이승이 아닐지도 몰라.
이제는 더 이상 상냥한 지옥 안에서 누구를 미워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사람을 사랑하고 마음을 줬던 제 선택을 후회하고 싶지도 않고요.
제 마음을 그저 다시 사랑으로 가득 채우고 싶어요.
다시 잘 살아가고 싶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수많은 상처로부터 어떻게 다시 사랑으로 마음을 채울 수 있을까?
고백
나의 사랑의 방식은 틀렸다.
인정한다. 나는 잘못된 방식으로 타인을 사랑했다.
나는 나를 텅 비워버리면서까지 타인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나에 대한 사랑을 만들어내는 시간보다
타인에게 사랑을 쏟는 시간이 많았다.
그리고 타인에게 이런 내 진심을 인정받아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더 빨리 도파민처럼 채우려고 했었다.
나는 나를 보살피지 않고, 인정욕구에 중독되어
타인에게서 오는 인정으로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충전하려 했다.
하지만,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타인에게서 얻기 시작하면
내 맘 같지 않은 누군가를 인간은 반드시 미워하게 되어있다.
나는 정말 어리석고도 억울한 방법으로 마음속 큰 사랑을 타인에게 퍼붓고 미워하고 아파했다.
그리고 공허해진 마음으로 후회를 반복했다.
이제 상냥한 지옥을 잘 살아내는 방법으로 나아갈 차례다.
사랑을 만들고 사랑하는 법.
먼저 나는 나의 뜨거운 애정을 나에게만 주기로 했다. 오지랖이 넓고 사람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정말로 쉽지 않은 도전이다.
하지만 사랑을 생산하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스로의 마음을 온전히 사랑으로 가득 채운 그다음, 나에게서 넘쳐버린 애정을 타인에게 나눠주기로 했다.
이제는 사랑과 인류애를 생산하는
마음의 공장장은 바로 나 하나다.
그 누구의 도파민 연료로 사양하겠다.
차근차근 무너졌던 마음을 스스로를 돌봄으로써 세워나가고 있다.
그리고 내 세상이 다시 단단해졌을 때, 나는 사랑을 현명하게 나눠줄 것이다.
나와 다른 이를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오는 에너지를 잘 아끼는 것도, 나를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게 '대체 불가능한 사람'에게는 '이해'라는 사랑을 베풀 것이며, '대체 가능한 존재'는 ‘그저 가엽다.’ 생각하고 마음에서 흘려보내기로 했다.
그럼에도 나에게 다시 상냥한 지옥이 찾아온다면, 나에게 이런 소중한 지옥을 만들어준 이에게 고마워할 것이다.
나를 먼저 사랑하고, 넘치는 사랑을 '대체 불가능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그리고 상냥한 지옥을 만들어 서로가 대체 불가능함의 애틋함을 확인하는 것.
그렇게 나는 이 상냥한 지옥을 타인과 함께 부대끼며 다시 살아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