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되는 애매함
우리는 애매한 사이가 됐다.
둘이서 밥은 먹고 술은 마셔도 퇴근하고 나면 연락은 없었고, 회사에서는 전보다 더 데면데면하게 지냈다.
이 상황이 이해가 안 갔지만, 말을 꺼내기가 무서웠다.
한 번은 다 같이 커피를 마시다 네가 제주도 여행에서 다른 여자를 만나 걸 알게 됐다.
네가 SNS도 올려 다들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나는 빨대만 만지작거리며 그 대화에 낄 수 조차 없었다.
그날 내가 무슨 표정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따지고 싶었는데 그럴 자격이 없는 것 같았고,
서운했지만 그걸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더 우스워질 것 같았다.
친구들은 '대화를 시작하지 않으면 그저 파트너일 뿐'이라고 했다.
도대체 나는 왜 이런 감정들을 느낀 걸까.
내가 더 좋아했던 걸까. 아니면 죄스러움이 남았던 걸까.
아마 둘 다였던 것 같다. 마음만큼 이 관계를 믿지 못했다.
나와의 시작 자체가 이미 불신의 이유였으니까.
회사에서 계속 만나야 하니 불편해지고 싶지 않았고, 이 관계가 잘못됐다는 죄책감도 여전했다.
그래서 나는 계속 겉돌았다. 질문을 삼키고, 웃고, 넘기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상처받았다.
그렇게 우리는 데이트 한 번 제대로 못 해보고 정리가 됐다.
대화도, 술도, 어떤 것도 하지 않는 사이가 됐다.
근데 웃긴 건, 우리는 회사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지냈다는 거다.
나는 너에 대한 분노를 내 안에 담고 있었는데, 동료로서는 웃고 말하고 일했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분리해서 살 수 있다는 게, 그때 처음 알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계기가 뭔지 모르겠는데, 우리 사이는 다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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