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인공이 아니었다.
너와 술을 먹다가 결국 물었다.
“너 여자친구 있다며?”
“응 있는데? 없다고 한 적 없잖아.”
어이없었다. 진짜로, 얘 뭐지 싶었다.
“내가 휴가로 간 푸켓, 누구랑 갔냐니까 혼자 갔다며.”
“여자친구가 밝히기 싫어해서.”
“… 여자친구 몇 살이야? 이렇게 둘이 술 먹는 거 괜찮아해?”
“한 살 어려. 근데 뭐, 회사 동료끼리 술 먹는데 뭐가 문제야. 괜찮아해.”
너무 당황스러웠다. 근데 이상하게도 나는 또 합리화했다.
그래, 나는 그냥 동료고. 여자친구도 이미 아는 거고.
나만 마음 정리 잘하면 되는 관계라고 우겼다.
그렇게 나는 이 관계를 계속 끌고 갔다.
여느 때 같던 어느 날, 우리는 선을 넘었다. 머리로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그쪽으로 갔다.
다음날 아침, 정신을 차렸을 때 무서웠다.
내가 뭘 한 건지, 내가 어떤 사람이 된 건지 그제야 선명해졌다.
나는 첫 번째와 바람으로 이별을 겪으며 다짐했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이런 슬픔을 겪게 하지 않을 거라고.
근데 나는 결국 정신승리를 하기로 했다.
너는 말했다. 헤어질 거라고. 내가 너무 좋아서 어쩔 수 없었다고. 이런 적 처음이라고.
나는 잠깐, 내가 로맨스 소설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착각했다.
죄책감보다 선택받았다는 감각에 더 흔들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시작해 보기로 했다.
근데 내 상상을 드라마와 같지 않다고 말해주듯, 너는 다음 날부터 연락이 잘 되지 않았다.
몇 주 뒤 너는 여자친구와 헤어졌다고 했다. 그리고 물었다.
“나랑 만나는 거 힘들 거야. 괜찮아?”
나는 그게 사귀자는 말로 들렸다. 그래서 관계를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날 이후 우리는 전보다 못한 사이가 됐다.
가끔 밥 먹고 술은 마시는데, 연락은 안 하는 사이.
밖에서는 말도 안 섞는 사이.
이게 뭔지, 나는 지금도 얘가 무슨 마음이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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