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1순위인 사람의 기록: 3화

내 손으로 보내버린 가능성

by 상온

첫 번째에게서 사랑과 배신을 배우고, 오빠를 만났다.

어떤 이별은 배신처럼 크고 요란하게 끝나는데, 어떤 이별은 조용해서 더 오래 남는다.


그를 만난 건 우연이라기엔 소개팅이었고, 소개팅이라기엔 우연 같았다. 회사에 남편 얘기를 자주 하던 언니가 있었다. 언니는 사랑만으로 부부가 굴러가는 건 아니고, 싸우고 난 다음에 그 얘기를 어디서 어떻게 풀어내는지도 중요하다고 했다. 나는 그런 말을 자연스럽게 하는 사람이 좋았다. 그리고 그런 언니 부부가 참 행복해 보였다. 그 무렵의 나는 다시 사랑을 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언니 얘기를 듣다가 자연스럽게 그를 소개받았다.


오빠는 다정하고 똑똑했다. 다툼이 없었던 건 아니고, 내 마음에 쏙 들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말을 하면 고쳐보려고 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내가 예민해질 때도 바로 감정으로 맞받아치기보다 한 번 참고 들으려는 사람이었다. 그런 태도가 나를 안심시켰다.


참 아이러니한 게, 첫 번째는 내 사랑이 느껴지지만 말투가 너무 사나워서 힘들다고 했는데 오빠는 내가 말을 예쁘게 해서 좋다고 했다. 친구들도 어느 순간부터 내 인상이 많이 부드러워졌다고 했다. 지나고 보니 나는 첫 번째에게서 배운 걸 오빠에게 자연스럽게 쓰고 있었다. 예쁘게 말하는 법, 싸우지 않고 사랑하는 법 같은 것들. 첫 번째는 나를 많이도 바꿔놓았다. 인상으로 이어질 만큼.


오빠와의 연애는 참 편안하고 평안했다. 뭘 먹을지, 주말에 뭘 할지, 사소한 걸 정하는 시간마저 편했다. 오빠는 나에게 취미를 가지라고 했고, 삶에는 사랑 말고도 사람을 붙잡아주는 것들이 있다고 말하곤 했다. 나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좀 신기했다. 우리는 같이 소소한 내기와 게임을 했고, 가끔은 뜬금없이 춤을 추며 놀았다. 큰 사건보다 별일 없는 날들이 자꾸 좋아지는 연애였다.


그래서 나는 그와 평생 이렇게 살 줄 알았다. 적어도 그때는 진짜 그렇게 생각했다.


근데 우리의 이별은 예상 못 한 곳에서 시작됐다. 오빠는 해외 본사로 가게 됐고, 해외에서 살고 싶었던 나는 진심으로 그 일을 응원했다. 나도 그가 있는 도시로 가고 싶었다. 근데 결국 나는 그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멍청해서였는지, 게을러서였는지, 아니면 내가 생각한 만큼 간절하지 않았던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는 이직이 안 되면 대학원도 보내주겠다고 하며 내 선택지를 넓혀줬는데, 나는 그 손을 끝내 잡지 못했다.


장거리는 길어졌고 나는 자꾸 흔들렸다. 첫 번째와도 장거리를 해봤으니 괜찮을 줄 알았다. 하루에 한두 번 영상통화하면 사랑은 충분히 이어질 줄 알았다. 근데 그건 내 착각이었다. 그는 새로운 곳에 적응해야 했고, 거기서의 삶을 살아야 했다. 나는 그걸 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잘 몰랐다.


연락이 예전 같지 않은 날들이 생겼고, 나는 그걸 이해하려고 했다. 바쁘다는 걸 아니까 괜찮은 척했고, 적응하느라 힘들다는 걸 아니까 먼저 참아보려고도 했다. 근데 이해와 서운함은 늘 같이 왔다. 나는 괜찮은 척하다가 결국 한꺼번에 터뜨리는 쪽이었고, 오빠는 설명하다가 지치는 쪽이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같은 얘기를 반복해서 하게 됐다. 나는 사랑을 확인받고 싶었고, 오빠는 그런 나를 버거워했던 것 같다.

그러다 오빠가 먼저 포기를 말했다.


크게 싸운 것도 아니었고, 누가 크게 잘못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더 멍했다. 누군가를 미워하면 차라리 마음이 쉬운데, 오빠는 끝까지 좋은 사람 쪽에 가까웠다. 그게 더 오래 남았다. 첫 번째가 내게 남긴 게 사랑과 불신의 공존이었다면, 두 번째가 남긴 건 후회였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고, 우리도 막장으로 끝난 건 아니었다.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내가 조금 덜 의심했더라면, 조금 더 단단했더라면, 조금 더 움직였더라면 달라졌을까. 답 없는 질문인 걸 아는데도 자꾸 생각하게 된다. 배신보다 더 오래 남는 건 어쩌면 놓쳐버린 가능성일지도 모른다.


4화, 이별을 하면 자꾸 상상을 한다.

https://brunch.co.kr/@anna30/10

5화, 사치가 또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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