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사람을 바꾸는 방식
시간이 오래되었지만 내 첫 번째는 아직도 내 마음에 남아 있다. 사람 자체를 못 잊었다기보다, 그를 통해 처음 알게 된 감정의 모양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 같다.
당시의 난 그가 주는 예쁜 마음이 너무 커서 그걸 이해하지 못했다. 꽉 찬 사랑을 모르고, 90년대 치정물 로맨스 소설 같은 걸로 사랑을 배운 나는 사랑이란 원래 불안하고 요란하고 좀 미쳐 있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뜬금없이, 또 끊임없이 그를 시험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유치하고 못됐다.
나는 하루에 열 번을 사귀고 아홉 번을 헤어지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의 첫 번째는 그걸 받아주는 사람이었다. 다정하고, 묵직하고, 웬만한 일엔 쉽게 흔들리지 않던 사람이었던 그는 몇 년 간 지속되는 나의 도발에 점점 빠가사리가 되었다. 나는 그런 사람을 흔들어놓고도, '그렇지 이게 사랑이지!'라고 생각했다.
그 덕분인지 몰라도 그와 연애하는 내내 나는 나에 대한 온전한 사랑을 느꼈다. 사랑에 가득 차서 나를 보는 그 눈빛 때문에 나는 조금씩 행복하고 건강한 사람이 되어갔다. 그는 사랑의 눈을 가르쳐준 첫 번째 사람이었다. 누군가가 그냥 나라는 이유만으로 대가 없이, 빈틈없이 좋아해 줄 수 있다는 걸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사랑을 원하면서도 사랑을 못 믿는 사람이었다. 누가 나를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오히려 불안해졌다. 왜 이렇게까지 나를 좋아하지, 진짜 맞나, 언제 마음 바뀌지. 그걸 확인하고 싶어서 자꾸 시험했다. 사랑받고 싶어 하면서도 사랑은 꼭 흔들어봐야 직성이 풀렸다.
그런 그와 헤어진 건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배신 때문이었다. 공무원 시험을 치고 복학한 그는 졸업한 나를 두고 새로운 여자와 바람이 났다.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감히 그가 나를 두고. 사실 신호는 있었다. 달라진 말투, 이상한 핑계, 설명 안 되는 예감. 근데 나는 그걸 믿지 않았다. 믿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두 눈을 감고, 귀를 닫은 대가는 컸다. 헤어지던 당시 그는 나에게 지쳐갔다고 했다. 나는 그 덕분에 사랑으로 가득 찬 사람이 되어갔는데, 그는 나로 인해 사랑에 인색한 사람이 되어갔다. 이상하게도 우리는 반대로 변했다. 미안함과 분노가 공존했다.
그 뒤로 나는 사랑을 잘 못 믿게 됐다. 언제나 내 편에서 응원을 보냈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연인을 잃은 나는 마음이 약해졌다. 작은 일에도 혼자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유약한 사람이 되었다. 내가 다시 혼자서 잃어 설 수 있게 회복하던 사이, 그는 또 다른 바람과 결혼, 아이를 낳았다.
내가 그를 못 잊은 이유는 아마 그 사람이 특별해서만은 아닐 거다. 그냥 나를 그렇게 사랑해 준 사람이 없어서였을지도 모른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사랑받던 내 모습을 다시 못 봐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첫 번째는 사람 하나보다 더 큰 걸 남겼다. 다정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눈빛으로 사랑을 말하는 게 뭔지, 그리고 그런 사랑도 결국 배신할 수 있다는 사실까지. 그래서 나는 그 이후로 사랑을 더 원하면서도, 동시에 더 못 믿게 됐다.
3화, 내 손으로 보내버린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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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이별을 하면 자꾸 상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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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사치가 또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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