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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혼부 연예인과 결혼했다 11

믿음이 생성되는 순간

by 장정윤

10월 25일, 우리는 신혼집으로 들어가기로 되어 있었다.


집을 계약한 건 7월이었지만 전 주인이 아이들 학교 문제로 당장 이사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 3개월 동안 월세를 받기로 했다고 승현이 그렇게 얘기했다. 학교 문제라면 학기가 끝나는 시점에 맞춰 이사를 해야 할 텐데 10월은 좀 애매한 거 아닌가 의문이 들었지만 승현이 그렇다고 하기에 그런 줄 알았다. 우리는 부지런히 가전제품이며 가구를 보러 다녔고 그 날짜에 맞춰 다 집으로 들이는 걸로 계약했다. 내가 혼자 살던 오피스텔도 날짜에 맞춰 빼주기로 했다. 혼자 살았지만 그래도 갖출 건 다 갖추고 살아 짐이 꽤 많았다.


그런데 승현에게 연락이 왔다. 자기가 계약 조건을 잘못 알았다는 거다. 10월 25일이 아니라 12월 25일에 전 주인이 집을 빼주기로 했는데 자신이 잘못 알았다는 거다. 헷갈렸다 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헷갈릴 게 따로 있지... 나 이 사람을 믿어도 되나?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방송작가들의 성향은 대부분 완벽하게 세팅하고 일을 진행하는 걸 좋아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문제가 일어나고 많은 사람이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촬영이 있는 날 몇 번이고 동선을 체크하고 출연자와 모든 얘기를 끝내 놓는다. 변수까지 생각해 플랜 A, 플랜 B까지 모두 생각을 끝낸 후 촬영을 시작한다. 난 신혼집에 들어가는 준비도 그렇게 했다. 전 주인이 집을 빼면 우리는 2~3일 동안 도배와 입주청소를 할 것이고 이후 같은 날 모든 짐이 들어오면 완벽한 거였다. 이사 날짜를 잘못 알았을 거란 건 내 변수에 없었다. 고로 플랜 A도 플랜 B도 없었다. 당황스럽고 막막했다.


허겁지겁 가전제품과 가구를 산 곳에 전화를 돌려 날짜를 미뤄야 한다고 했다. 막상 통화를 해보니 그쪽에선 이런 일이 큰 일은 아닌 거 같았다. 알겠다 했다. 내 짐도 문제였다. 짐을 옮겨주기로 한 업체에 두 달간 짐을 맡아줄 수 있냐 물으니 꽤 많은 비용을 요구했다. 어쩔 수 없이 피 같은 돈을 지불하고 두 달간 짐을 맡기기로 했다.


문제는 우리가 지내야 할 곳이었다. 승현은 원래 사는 옥탑방에 나는 친정집에 머물면 되는 일이긴 했지만... 우리는 한시도 떨어지기 싫었다. 5월부터 연애를 시작해 만난 지 고작 5개월 차.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기분이 이런 건가 싶게 서로를 좋아했다. 그렇다면 승현의 옥탑방으로 가야 하는 건가... 그런데 승현이 원치 않았다. 누추한 곳에 나를 지내게 할 순 없다 했다. 몇 날 며칠을 우리가 같이 머물 수 있는 곳을 알아봤다. 에어비앤비 같은 곳은 두 달씩이나 머물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러다 찾은 곳이 침대, 냉장고 등이 다 갖춰진 단기로 머물 수 있는 영등포에 있는 오피스텔이었다. 한 달에 70만 원 정도 하는 곳이었다. 허투루 돈을 쓰기는 싫었지만 같이 있을 수 있는 방법은 그곳밖에 없었다. 지금에 와서 이런 실수를 승현이 똑같이 했다면 무섭게 쥐 잡듯 잡았겠지만 이땐 이런 모습도 귀여웠다. 이런 실수도 너그러이 받아주는 나를 승현은 또 얼마나 좋게 봤을까. 결혼 후 언젠가 승현이 이런 얘기를 한 적 있다. 조금 속은 기분이 든다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승현이 혼자 살던 옥탑방에 가본 적이 없었다. 어느 날 삼성동 쪽에서 지인들과 약속이 있었고 영등포까지 넘어가기 너무 멀어 우린 그날 하루 승현의 옥탑방에서 자기로 했다. TV에서 보던 곳이라 신기했다. 승현은 돈을 아끼기 위해 거의 난방은 틀지 않는다 했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내가 추울까 봐 난방을 빵빵하게 틀어주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승현이 나에게 텀블러 하나를 주었다. 뭐냐고 물으니 그동안 행사며 결혼식, 돌잔치 진행을 하고 받은 돈을 모아둔 것이라 했다. 열어보니 봉투들이 여러 개 들어있었다. 승현은 봉투를 열어보면 쓸 거 같아 열어보지도 않고 모아두었다 했다. 얼마인지도 모른다 하며 나에게 가지라고 했다. 액수는 꽤 됐다. 악착같이 모은 돈을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주다니. 이 사람 날 정말 사랑하는구나. 그리고 계좌 번호를 알려주면 앞으로 본인 수입을 다 내 통장에 넣겠다 했다. 이 사람 날 정말 믿는구나.


믿음이란 건 그렇게 생성되나 보다. 나는 그때 승현에 대한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고 제대로 된 확신이 생겼다. 돈 때문이 아니라 이 사람이 날 믿어주는 마음. 그래, 나도 이 사람을 믿어야지. 이사 날짜도 제대로 체크하지 못하는 남자지만 그러면 어때. 날 향한 마음이 진국인데.


그리고 며칠 뒤 우린 혼인신고를 했다. 11월 25일, 신혼집 들어가기 한 달 전이었다.


이사 날짜를 ‘착각’한거냐 물으니 내가 ‘착한’거라 동문서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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