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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혼부 연예인과 결혼했다 12

승현이 다시는 넘어지지 않도록

by 장정윤

승현은 대체적으로 까부는 편인데 문득 말이 없어질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혹시 남몰래 괴로워하거나 불안해하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됐다. 승현의 인생은 자기도 모르게 정상으로 올라갔다가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고 이후 자꾸 넘어졌다고 했다.


승현은 고등학교 때 자기가 잘 생긴지도 몰랐다고 했다. 시어머니도 말씀하시길 다른 집 애들도 다 그렇게 생긴 줄 알았다고 하셨다. 그러다 같은 반 여자애들이 잡지에 나온 모델 콘테스트 공고를 보고 승현에게 한 번 내보라 했고, 그렇게 콘테스트에 단번에 붙은 것이다. 당시 유행했던 의류 브랜드 스톰 모델이 되고 지금도 잘 나가는 아이돌만 한다는 인기가요 진행자도 되고 시트콤, 라디오 등등 활발히 활동했다. 나도 승현을 처음 봤을 때가 기억이 난다. 꼭 세련된 일본 사람 같다, 참 잘 생겼다 생각했었다. 승현은 잘 나갔던 시절 얘기를 할 때 눈이 반짝였다.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지에 대한 얘기보단 스톰 모델로서 스톰 옷을 마음껏 입을 수 있었다는 것과 피자몰에 본인 지정석이 있어 아무 때나 가도 공짜였다는 얘기를 좋아했다. 아마 열 번 이상은 들은 것 같다. 참 순수한 사람이다.


그러다 모두가 알듯이 미혼부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순식간에 꼬꾸라졌다. 수빈은 애초에 시부모님 딸로 호적에 들어가 있었다. 시어머니는 8월 더운 여름에 태어난 수빈이를 두 번씩 씻기며 정성스럽게 키우면서도 아들의 인생이 잘못될까 수빈을 밖으로 데려나가지도 못했다고 하셨다. 결국 밝혀질 일은 밝혀졌고, 승현은 기자회견까지 하며 자신이 미혼부라는 사실을 사람들 앞에서 얘기해야 했다. 그때는 그랬다. 연예인 누구와 누구가 사귀다 헤어져도 기자회견을 할 때였다.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승현은 바로 수빈과의 유전자 검사를 통해 호적에 본인의 딸로 두었다. 처음부터 그러지 못한 것을, 그는 두고두고 수빈이에게 미안해했다.


승현은 다시 재개하고 싶어 했다. 동생이 매니저로 일하며 둘이 고군분투했다. 동생은 전국에서 알아주는 축구 실력자였는데 부상으로 인해 한 번 넘어진 터였다. 형제는 열심히 이일 저일 가리지 않고 했던 거 같다. 주말 드라마의 작은 역에 들어가기 위해 어떤 수모도 겪어야 했고 오디션을 보고 이미 캐스팅이 됐는데 남자 주인공 측에서 반대해 불발되기도 했다고 했다. (반대의 이유는 승현이 키 크고 잘생겼다는 이유라 하니 이건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나도 얘기를 들으며 난감했다.)


어느 날 술 마시며 승현은 이렇게 얘기했다.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고… 그때 다신 이 사람이 넘어지지 않도록 지켜줘야겠단 생각을 했다. 난 한 번도 넘어진 적 없으니 나만 믿으라고 내 옆에만 있으면 넘어질 리 없다고 말했다. 자꾸 넘어지고 제대로 일어서지 못하면서도 승현은 살아냈다. 그런 인생의 굴곡에 비해 승현은 까부는 걸 좋아한다. 뭐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고생했던 일들을 하나의 훈장처럼 여긴다. 아빠가 결혼 전, 나에게 한 얘기가 생각난다. 이 결혼을 허락한 이유는 승현이 고생해본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그렇다. 승현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가족들을 먹여 살릴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또다시 넘어지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라 믿는다.


결혼식 날이 거의 다가올 때쯤이었던 것 같다. 살림남 예고편에 마치 내가 임신을 한 것 같은 뉘앙스의 영상이 방송됐다. 뉘앙스일 뿐이었는데 기사가 나고 친구들에게 연락이 왔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울었다. 미혼부인 사람이 또 이번엔 임신해서 결혼하네, 그럼 그렇지~ 임신해서 결혼하는 거네! 기사를 본 사람들의 속마음이 읽히는 듯했다. 우리의 순수한 마음과 사랑이 곡해되는 것 같았다.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하면 내가 많이 예민했던 걸 인정한다. 나도 방송작가로서 그 정도 낚시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혼전임신이 요즘 시대에 별 일도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승현이 미혼부이기에... 연예인이기에... 나는 그가 또 실수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건 1분 1초도 싫었다.


나는 그날 거의 발광을 했다. 놀란 승현은 살림남 측에 연락해 정정기사를 내달라 했고 그렇게 임신설은 마무리됐다. 글쎄... 그날의 그 복잡한 심정은 나의 오버였을까. 어쩌면 그럴지도.



황규관 시 <마침표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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