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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혼부 연예인과 결혼했다 15

연애는 끝났다

by 장정윤

짧은 연애가 끝나고 2020년 1월 12일 우리는 결혼식을 올렸다.


긴장할 법도 한데 우린 둘 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니, 나는 사실 긴장했는데 그걸 인지하는 순간 떨리는 마음을 걷잡을 수 없을 거 같아 최대한 긴장하지 않은 척했다. 결혼식 전날 굶기는커녕 우린 삼겹살에 소주에 맥주까지 마셨다. 나는 다이어트에 실패한 신부였다. 이미 똥배가 나와 있기 때문에 거기서 조금 더 나온다고 큰 영향은 없지 않을까 싶었다. 술을 한잔 해서 그런지 잠은 푹 잘 잤다.


결혼식이 5시임에도 메이크업샵엔 오전 10시에 도착해야 했다. 나는 메이크업을 받으러 강남까지 왔다 갔다 하기 싫어 마포구 소재 메이크업샵을 엄청나게 뒤졌다. 그중 괜찮아 보이는 곳 3군데 정도에서 미리 메이크업을 받아보기로 했는데 다행히 두 번째에 마음에 쏙 드는 샵을 발견했다. 굳이 강남의 유명한 샵까지 가지 않아도 곳곳엔 숨은 실력자들이 있다. 내가 찾은 샵은 차로 집에선 5분 식장에선 3분 정도 거리였다. 내가 굳이 이 말을 하는 이유는, 혹시 결혼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남들의 유행을 따라가며 피곤해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동선과 가격을 고려해서 합리적인 결혼식을 부디 하길 바란다. 그날 그곳에서 메이크업과 헤어를 받은 승현, 나 외 우리 부모님, 오빠, 새언니, 조카까지 모두 대만족이었다. 그 만족감엔 피곤함을 덜었다는 것도 있었을 것이다.


3시쯤 식장에 도착했다. 드레스를 입으니 역시 배가 좀 나와 보이긴 했다. 웨딩 헬퍼가 코르셋을 입어야 한다고 했지만 그랬다간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뒷목 잡고 쓰러질 거 같았다. 그런데 변수는 내 배뿐이 아니었다. 드레스를 고르며 같이 골랐던 구두가 맞지 않는 것이었다. 웨딩 헬퍼는 구두를 신고 좀 걸으면 나아질 거라고 했지만 한 발자국도 뗄 수 없었다. 구두 때문에 한바탕 소란이 났다. 난 머릿속에 하얘지고 눈물이 날 거 같았다. 그때 승현이 묘책을 냈다. 자신이 집에 가서 내 구두를 가져오겠다는 것이다. 집이 가까워 발 빠르게 움직이면 10분 내로 해치울 수 있는 일이었다. 승현은 턱시도를 입고 뛰기 시작했다. 승현이 구두를 갖다 준 뒤에야 나는 진정할 수 있었다. 승현은 생색내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지금까지도 결혼식 얘기가 나오면 "내가 그때 구두 안 갖다 줬으면 어쨌을 거야!"라고 한다. 자신이 잘한 일에 초점을 맞춰 기억하는 편인 거 같다.


결혼식 시간이 다가오자 하객들이 오기 시작했다. 크지도 않은 예식장에 이미 세 팀의 촬영팀이 촬영을 하고 있어 조금은 혼잡스러웠는데 거기에 정말 많은 하객들이 몰려 축의금을 내려고 줄을 섰다고 한다. 나는 신부 대기실에 있어서 잘 몰랐는데 거의 유명 맛집 줄 서듯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고 하니 감사하고 죄송할 따름이다. 나는 청첩장을 돌릴 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돌려야 할지 참 고민을 많이 했다. 내 입장을 생각해보면, 왜 나한테 청첩장을 보내지? 싶은 경우도 있었고 어쩌다 누군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건너 건너 듣게 됐을 때 왜 나는 안 불렀지? 서운한 마음도 들었기 때문이다. 예민하다면 예민할 수도 있는 부분이기에 고심해서 청첩장을 보냈다. 그 사람이 내 결혼식에 왔을 때 그게 내 마음의 짐이 될 거 같으면 보내지 않았다. 그런데 승현은 정말 많이 청첩장을 보낸 거 같았다. 하객들은 대부분 승현의 지인들이었다. 나는 정신이 없어 못 봤는데 나중에 친구들 얘기로는 연예인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고 한다. 또 부모님들도 어깨에 힘이 한껏 들어가 있었다. 나중에 결혼식 사진을 보니 100명이 넘는 연예인들이 자리를 함께 빛내주고 있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알토란으로 인연을 맺은 개그우먼 김지민과 승현과 평소 친분이 있던 개그맨 변기수가 사회를 봐주었다. 주례는 따로 없이 양가 아버지들이 한 말씀씩 하셨다. 결혼식을 다녀보면 부모님께 인사를 드릴 때 많이들 울던데 난 눈물도 나지 않았다. 아는 선배는 신부가 너무 아무렇지 않아서 좀 얄미워 보였다고 하는데, 사실은 정신이 없었던 거 같다. 실제로 난 결혼식의 풍경과 그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긴장감이 폭발했는데 아닌 척 버티느라 애쓰고 있었으리라. 사회를 부탁할 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짧게 해달라고 해서 결혼식은 20분 정도만에 끝났다. 이제와 생각하면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행복을 빌어주던 자리. 때문에 혼인신고와는 별개로 결혼식은 꼭 하는 게 좋다는 게 내 의견이다. 혼인신고를 했을 때는 우리가 부부가 됐다는 게 실감이 안 났지만 결혼식을 치르고 나니 진짜 부부가 됐다는 느낌이 들고 비로소 책임감이 생겼다. 이젠 함부로 물릴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연애 끝, 결혼 시작이었다.


여기까진 무리 없는 해피엔딩이다.


결혼식 전, 승현은 유독 나에게 꼭 보여주고 싶어 한 사람이 있었다. 탁재훈이었다. 재훈은 우리를 보자마자 우스갯소리를 했다.

- 너넨 고비를 넘기지 못했어. 결혼하고 싶은 그 고비만 딱 넘기면 되는데 말이야.

물론 우리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셨다. 그런데 이제와 그가 했던 말이 자꾸 맴돈다. 그땐 웃었고 지금은 웃지 못하는 그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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