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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혼부 연예인과 결혼했다 16

첫 번째 부부싸움

by 장정윤

우리는 연애 시작과 동시에 거의 같이 살다시피 했기에 만난 기간은 짧아도 난 어느 정도 승현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또 어떤 문제가 생겼을 시 내가 그를 컨트롤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오만한 생각이었다. 결혼생활은 더없이 행복하다가도 종종 절망으로 빠졌다.


신혼 초, 나는 세상에 승현 하나만 있어도 살 수 있겠다 싶었다. 나의 선택으로 이룬 유일한 가족인 승현은 존재만으로도 날 행복하게 했다. 난 아침에 그리 늦게 일어나는 편은 아니었는데 승현과 더 붙어있고 싶어서 그가 깰 때까지 침대에 누워있었다. 같이 잠에서 깨면 우린 서로가 너무 좋아서 한참을 들여다보고 어루만지곤 했다. 같이 밥을 차려서 먹을 때 그 사람 입에 뭐가 들어가는 것만 봐도 행복했다. 그래서 이것저것 자꾸 챙겨주며 먹으라 했다. 승현은 살면서 한 번도 75kg을 넘긴 적이 없었는데 금방 80kg이 넘었다. 물론 나도 매일매일 새로운 몸무게를 경신하고 있었다. 우린 같이 산책도 많이 했다. 혼자 살 땐 밤늦게 나가는 건 생각도 못할 일이었는데 우린 새벽 1시에도 나가 걷고 또 걷다가 맥주 한잔 하고 해 뜰 때까지 수다를 떨었다. 승현의 스쿠터를 타고 서울 시내 곳곳을 다 돌아다녔다. 그의 허리를 잡고 등에 볼을 대고 있자면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특별했다. 그와는 평생 싸울 일 같은 건 없을 거 같았다. 어떤 문제든 사랑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을 거라... 그렇게 쉽게 속단했다.


우리의 첫 부부싸움은 얼마 가지 않아 터졌다.


사실 어떤 이유로 싸움이 시작되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저녁을 먹다가 말다툼이 시작되었다. 나는 승현이 화낼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내 목소리가 커지자 승현도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당황한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는데 승현이 갑자기 외출복으로 갈아입더니 나가버렸다. 내가 모르던 승현의 모습... 화내는 승현... 그 큰 눈으로 나를 쏘아보는 승현. 나는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문득 외로워졌던 것 같다. 내 편인 줄 알았던 승현은 자기편이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일단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현이 왔을 때 내가 집에 없어야 좀 통쾌한 기분이 들 것 같았다. 너만 나가냐? 나도 나간다! 심보랄까. 혹은 그가 애타는 마음에 나에게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어주길 원했던 걸까.


일단 차를 타고 어디로 갈지 생각했다. 친구도 꽤 많은 편이고 친정집도 가까운 데 갈 곳이 생각나지 않았다. 누구든 만나면 지금 집을 나온 상황을 설명해야 할 것이고 그러면 그게 남편의 흠이 될 거 같았다. 나는 동네를 한 두 바퀴 돌다가 집에 들어갔는데 그 사이 승현은 들어와 자고 있었다. 나는 그 사이 화가 조금 풀려 자고 있는 승현의 옆에 다가가 누웠다. 승현은 등을 돌려버렸다.


싸운 다음 날은 알토란 녹화 날이었다. 녹화장까지 가는 내내 승현과 난 한 마디도 섞지 않았다. 우울한 마음으로 대기실에 들어섰는데 유지인 선생님이 우리의 기류를 읽었는지 다가와 내 등을 쓸으며 한마디 하셨다.


- 정윤아, 결혼 전에는 그냥 너만 신경 쓰면 되는데 승현이까지 신경 쓰려니까 힘들지? 갑자기 네가 짠하다.


나는 서러운 마음에 울컥 눈물이 났는데 그 눈물을 삼키느라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녹화가 시작됐다. 승현은 프로였다. 언제 싸웠냐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녹화를 이어가는데 나는 그게 또 서운했다. 부부가 함께 일을 한다는 게 감정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알토란 녹화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진행되는데 그동안 우린 사적인 감정은 꽁꽁 숨기고 서로를 대면하며 일을 해야 했다. 어색하고 불편한 하루가 지나갔다.


다음 날 아침, 승현이 스케줄을 나가기 전 난 화해의 의미로 밥을 차렸다. 승현은 아무 말 없이 밥을 잘 먹고는 나갔다. 난 그렇게 화해가 된 줄 알았다. 그런데 잠시 후 승현에게 장문의 문자가 왔다. 요약하자면, 자기는 기분이 풀리는데 오래 걸리니 당분간은 말을 안 하고 지내는 게 좋겠다는 거였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거 같았다. 나는 화를 불같이 내고 나면 풀리는 편인데 승현은 말을 아끼는 대신 오래가는 스타일인 거 같았다. 아무튼 우리가 싸운 원인은 별일도 아닌 걸로 화낸 나에게 있었고 거기에 대해서 승현은 긴 시위를 할 작정인 거 같았다. 나는 직감적으로 이젠 싸움과는 별개로 기선제압의 상황에 들어섰다 느꼈다. 여기서 지면 평생 질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데 그땐 정말 심각했다.) 나는 캐리어를 꺼내와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승현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집 나가요. 편히 혼자 지내세요."


그렇게 내 생애 첫 가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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