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소셜 클럽에서 럭셔리 가구 쇼룸과 카페로
한 도시에 살다 보면, 거주민은 그 도시의 일상에 묻혀 그냥저냥 살아간다.
그 도시에서 가장 최신 유행의 정보는 사실 외부 방문객에게서 온다. 특히 20대 중반에서 30대 여성 방문객들은 그 도시에서 가장 잘 나가는 곳을 인터넷 정보를 써치해 미리 집어 오는지라, 어맛 이런 게 있었어?라고 미국 생활 수십 년 구력의 현지 교포언니들을 놀라게 한다.
현재의 시카고에서 매우 인스타그래머블한 럭셔리 휴가 인증용으로 그녀들이 가는 곳은 쓰리 아츠 클럽(3 Arts club)이다. 이름에서와 같이 이 건물은 소셜 클럽 건물이었다.
미국에서 백여 년 전 남성들의 소셜클럽이 자기만의 리그를 결성하며 시가를 물고 그 안에서 교류하던 곳이라면, 여성들의 소셜 클럽은 좀 다른 양상을 띤다. 아주 부유한 여성들의 기부로 소셜 클럽 건물이 지어지는데, 안방마님 그녀들 간의 교류가 목적이 아닌, 여염집 여성들을 돕기 위해서였다.
여성에게 제도권 교육도 참정권도 주어지지 않던 시절, 소셜 클럽 건물 안에서는 여성의 계몽, 교육과 더불어 어린이, 참정권, 심지어 여공들의 노동권 문제들까지도 다루어졌다.
이 쓰리 아츠 클럽은 1912년 시카고의 최상류 층 여성 30여 명에 의해서 설립되었고 1914년 현재의 건물이 완공되었다. 이 공사의 빠른 진전에는 에디스 록펠러 맥코믹이 뒤에 있었다.
그녀의 적극적인 재정 후원으로 이 건물은 신속히 완공되어 쓰리 아츠(3 Arts), 즉 3개의 예술 영역인 음악 그림 드라마 세 영역을 공부하는 어린 여학생들의 기숙사가 되었다. 92개의 개인 방은 물론 티룸, 도서관, 작업실, 공용 식사 공간 등을 두어 예술을 공부하는 여학생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쓰리 아츠 클럽은 2004년까지 운영되었고 현재 이 건물은 RH라는 미국의 럭셔리 가구 회사의 쇼룸 겸 레스토랑, 카페다. 1979년 창업한 RH는 여러 면에서 벤치마킹할 만한 독특한 철학이 있는 럭셔리 가구 회사다.
이케아처럼 대형 박스 공장 안에 물건 쌓아놓고 파는 가구점이 아니다. 미국 각지의 국가등록 역사문화재( THE 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인 커다란 건물들을 사들여 칠팔 년에 걸쳐 복원, 리노베이션 해서는 자기네 가구의 럭셔리 쇼룸으로 쓴다.
저런 오래된 랜드마크 건물을 복원하는 데는 같은 크기의 건물을 새로 짓는 것보다 엄청 많은 돈이 든다. 그래서 건축물의 복원 = 가진자&지식인의 초 럭셔리 취미 라는 그런 상관관계가 성립한다. 한국에서도 취미의 끝판왕은 골동품 수집이라고 하지 않던가. RH라는 럭셔리 가구회사는 이런 골동품 건축물 컬렉션의 개척자다. 텅 빈채 쇠락해가던 미국내 역사적 랜드마크 건물들을 매입해 쇼룸과 레스토랑을 만들면서 이 분야의 개척자가 되었다.
RH는 시카고 3 아츠 클럽 이외에도 계속 이런 쇼룸을 만들고 있다. 보스턴에서는 옛 자연사박물관 건물을, 뉴욕에선 미트패킹의 벽돌 건물을, 나파 밸리에서는 1904년 산 조적 건물을, 코네티컷에서는 그리스 신전만 한 1917년 우체국을 통째로 다 자기네 가구점으로 변신시켰다. 그리고 아주 최고의 레스토랑이나 카페를 넣었다. 샹들리에 수백 개가 주렁주렁 달린 최고의 인테리어에 최고의 셰프와 커피. 그리고 뒷목 잡지 않는 가격(초고가가 아니고 중고가 정도^^;;)
*예시용 위 사진들은 화면 캡처 이므로 화살표 눌러도 동영상 안 돌아갑니다. RH.com에 각 건물의 뼈대만 남았던 폐허 상태나 건축가의 디자인 프로세스, 기업가의 철학, 공사 진행 상황 동영상 있습니다.
이런 초절정 인기의 레스토랑은 보통 대기시간이 한두 시간 이상이다. 대기자 명단 걸어놓고 고성이나 부띠크 수준의 거대한 자기네 가구 갤러리 안을 천천히 돌아다니며 쇼룸 감상하라는 이야기다. 문화재 건물 매입, 복원&리노베이션 쇼룸이라니. 정말 장기간의 계획으로 실현된 섬세한 스마트함이다.
이런 전략으로 RH는 미국의 럭셔리 가구시장에서 이미지 메이킹을 아주 확실히 하고 있다. 2019년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가 이 RH의 주식을 신규 매입할 정도이니.
미국의 대도시에서 도심재생, 랜드마크 건물의 용도변경, 아답티브 리유즈라는 요즘 핫한 키워드의 사례를 보려면, RH의 쇼룸을 찾아가면 된다. 실내 인테리어나 레스토랑이나 카페도 물론 최고다.
(*RH의 미국 전역의 수십 개의 쇼룸이 다 그런 건 아니니 홈피에서 확인. 새로 지은 대규모 쇼룸 건물도 꽤나 있다)
RH 시카고점은 중정에 빛과 나무, 샹들리에를 들여 찬란한 유럽 고성의 브런치 느낌을 준다. 그 뒤쪽으로는 커피 바가 있어서 커피 한잔 삼사 달러에 테이크 아웃해 건물 루프탑에 나가 앉아도 된다. 노트북 들고 와서 가구점 6층 전체에 걸쳐 셋팅되어 있는 여기저기의 럭셔리 테이블에 앉아 일하거나 공부하는 사람들도 꽤나 있다.
아. 이런, 나는 현재 스타벅스가 필요 없는 미국의 고성에 와 있습니다.
참고로, 1979년에 창업한 이 RH 가구회사의 원이름은 Restoration Hardware이다.
직역하면 (도시의) 복원 장치. 이름값 제대로 한다.
시카고 3 arts club 카페에서 나의 추천 메뉴는 이거다. 다른데 없는 걸로.
미국의 고급 레스토랑은 왜 메뉴를 프랑스어로만 써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을 더더욱 괴롭게 하는지 모르겠다. 프랑스어를 못 읽어 두리번거리다가 옆의 데이트 커플이 먹는 것 보고 따라 시켰다. 브리치즈를 예각 부채꼴로 넉넉히 자른 것과 계속 리필되는 갓 구운 프렌치 바게트, 아주아주 두터운데 기름이 쫙 빠진 메이플 베이컨, 그리고 신선한 과일. 어휴 이건 평균을 매우 상회하는 고급진 섬세한 맛, 너무 맛있잖아.
참고
https://www.restorationhardware.com/
https://en.wikipedia.org/wiki/Edith_Rockefeller_McCorm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