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나킴 Feb 25. 2022

럭셔리 침대 열차 왕, 조지 풀먼

 풀먼 타운을 만들고, 콘크리트 무덤에 빠진 남자

시카고 그레이스랜드 묘지공원을 걷다가 만나는 큰 신전급 가족묘들은 대개 시카고 역사 초장기의 재벌이다. 그들이 지었던 백화점이나, 호텔, 소셜 클럽들은 대개 우리 개념의 사대문 안, 시카고 다운타운 내에 몰려 있다. 


그중에 드물게 시카고 외곽에 자신의 회사 공장과 직원들의 주거지, 풀먼 타운을 통 크게 직접 개발한 조지 풀먼(George Pullman, 1831 - 1897)이 있다. 


1857년 젊은 조지 풀먼은 시카고에 왔다. 뉴욕의 이리 터널 공사 시 아버지가 특허 낸 기술, 건물을 통째로 들어서 옮길 수 있는 잭 스크루 기술을 가지고서. 당시 시카고는 하수도 시스템이 없어 기존의 건물들을 들어내거나 이동시켜 도로 아래에 하수도관을 묻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시카고의 지반은 말 한 마리가 통째로 빠진다는 물렁물렁한 진흙 지반이어서 심한 난공사에 봉착했다.  


풀먼은 이런 지반에 대형 하수도관을 묻도록 건물들을 통째로 들어버리거나 아예 이동시키는 사업을 성공적으로 해 냈다. 

1861년에는 객실이 260개나 되는 5층 석조건물 트레몬트 호텔을 손님이 안에 있는 상태로 1.8미터나 들어 올려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조지 풀먼이 1.8미터나 들어 올린 트레몬트 호텔 건물(1850~1871)



조지 풀먼은 당시 급속히 발전하던 철도 산업으로 눈을 돌렸다. 

뉴욕과 시카고를 왕복하던 기차가 너무 힘들어 착안한, 럭셔리 침대 기차다. 

열차 객실 내 하인들이 딸려 서비스하는 초 럭셔리한 침대 열차칸(Pullman Palace Car Company) 사업이었다. 1865년 링컨 대통령 사망 시, 고향 일리노이주로의 운구 기차로 쓰이며 더욱 사업은 커졌다. 


1893년 시카고 박람회의 풀만 관람 기차 재현/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전시 / 2002년 미니어처 제작



사업이 확장되자 조지 풀만은 1880년대에 시카고 외곽에 허허벌판에 교회, 소방서와 상점, 극장, 도서관, 공원까지 넣은 미니 신도시를 세웠다. 마당이 딸린 노동자의 집을 1000개 넘게 지었다. 당시로는 획기적인 실내 배관과 가스, 하수도 기능에 정기 쓰레기 수거 서비스까지 넣은 양질의 커뮤니티였다.   


풀먼 기차를 생산하는 공장도 고성 스타일로 멋지게 만들었다. 럭셔리한 물건을 만드는 럭셔리한 공장의 이미지였다. 초고급 상품을 사러 오는 기업 방문객을 위해 풀먼의 딸 플로렌스의 이름을 붙인 호텔까지도 건설했다. 


풀만 타운 플랜
풀만 타운의 플랜
풀만 타운의 주택 플랜


조지 풀먼의 이름은 이렇게 도시계획사에서 언급되고, 철도나 토목기술 쪽에서도 언급된다. 

사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쪽은 미국 노동운동사 쪽이다. 

풀먼이 단독 개발 소유한 기업 도시였기 때문에 그는 봉건 영주와 같이 도시를 지배했다. 조지 풀먼은 자신의 타운 안의 독립 언론이나 공개장소에서의 토론과 연설을 금지했다. 직원의 집을 불시에 검사해 깨끗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임대를 십일 후 종료하는 권한도 있었다. 극장의 공연 내용과 도서관의 책 선정까지도 조지 풀먼이 최종 결정권자였다. 


풀먼 타운의 전경


1894년 대공황이 오자 조지 풀먼은 급료를 대폭 삭감하면서, 직원들이 살고 있는 집의 임대료를 낮추지 않았다. 2주 급료가 9.07달러였는데, 9달러를 선 임대료로 제한 0.07달러가 노동자 손에 들어왔다.

당연히 파업이 일어났고, 이에 연대한 전국 철도 노동자들의 파업이 발생했다. 

당시 클리브랜드 대통령이 군대를 투입해 34명의 사망자를 낳으며 유혈 진압되었고, 미국 노동법의 큰 변화를 가져왔다. 

1898년 일리노이 주 대법원은 풀만 타운의 단독 소유권을 다양화하라는 판결을 내리고, 풀만 타운은 시카고 시에 병합되었다. 



그래서 기승전무덤. 

성난 노동자의 보복성 도굴을 두려워한 조지 풀먼의 무덤은 속이 매우 독특하다. 

관 속에 콘크리트를 부어 열 수 없게 하고, 관 바깥의 모서리도 납땜했다. 관 전체를 타르 페이퍼와 아스팔트로 꼭꼭 감쌌다. 땅을 깊게 파고 45센티 두께의 철근 콘크리트조로 바닥과 벽을 세우고, 흙이 아닌 콘크리트를 가득 부은 공간에 관을 빠뜨리는 방식이었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그 위로 철로에 쓰는 금속 틀을 깔고, 콘크리트를 한번 더 부어 매장을 완료했다. 


이런 겹겹의 해괴한 철근 콘크리트 덩어리 위에 우아하게 솟아 있는 코린틴식 기둥 한 개와 조각품 의자는 풀만 타운을 만들어 낸 건축가(Solon Beman)의 작품이다. 


조지 풀먼의 무덤. 조각 벤치를 무덤과 함께 건립하는 양식은 상당히 많이 보인다


조지 풀만의 묘지, 그 아래에는 미연방 은행 금고보다도 단단한 작업이 되어 있다


살아서 시카고의 늪 같은 지반을 들어 올렸지만, 

죽어서는 늪 같은 콘크리트 속에 빠져 있는 조지 풀만. 


그가 죽고 나서 풀만 회사의 대표는 링컨 대통령의 큰 아들(Robert Todd Lincoln)이 맡았다. 링컨 대통령은 사후 시신이 도난당하는 사고가 있어서, 큰 아들은 링컨의 시신을 35년간 비석도 없이 몰래 묻어 두었더랬다. 조지 풀만의 매장 공법을 따라서 아버지를 콘크리트로 굳게 덮어 드리고 비석을 세웠다는 일화가 있다. 


풀만 타운은 이후 쇠락하다가 2015년 오바마 대통령이 국립 명소(National Monument)로 지정했다. 

이곳이 최초의 흑인 노동조합이 설립된 곳이고, 이곳에 일하던 흑인 노동자의 손녀가 자신의 부인 미쉘이라며.

그렇게 복원이 시작되었고 2021년부터는 방문객에게 투어도 제공하고 있다. 



보수 중인 풀만 공장 행정 건물, 2021년부터 여행자 방문소가 되었다



참고: (풀만 타운 사진 포함)

https://www.history.com/news/5-famous-company-towns

https://en.wikipedia.org/wiki/George_Pullman

https://www.pullmanil.org/

https://gildedage.voices.wooster.edu/pullman-plans/


이전 17화 에디스 록펠러 맥코믹의 쓰리 아트 클럽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