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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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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Jun 25. 2019

모닝 루틴

백수 아줌마의 규칙적인 생활

PC로 읽으신다면 더 편안하실 거예요. :-)




너무 부지런한 이 동네 햇님 덕분에 늦잠을 수가 없습니다.


눈곱도 떼지 않은 채,

잠옷 위에 남편 플리스 가운을 대강 걸쳐 입고 부엌으로 나와 

실온의 보리차 한 잔으로 입을 축여줍니다.


커피를 만듭니다.

하루에 딱 한 잔 마실 수 있는 커피이므로

최대한 성의를 다해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픈 열망을 담아.


오전 중에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입니다.


커피머신 온도를 올리는 동안

몇 가지 없는 종류 중 '오늘은 어디에 마실까?' 짧은 고민을 하지만

거의 매일의 선택은 회사 후배였던 동생이 선물해 준 라이온 킹 머그잔입니다.

따뜻한 커피를 느긋이 마시고 싶어 

케틀에 데운 뜨거운 물로 머그잔에 온기를 채워줍니다.


그라인더에서 막 갈려 나온 커피가루는 거칠지만 향기롭습니다.

내가 잘 아는 누군가와 참 많이 닮은 듯합니다.


에스프레소가 추출되는 약 25초 정도의 시간은 설레는 긴장감이 가득합니다. 

매일 만들지만 조금씩 맛이 다르기에 머신 앞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정말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기 때문입니다.


추출된 샷을 따뜻하게 데워진 머그에 옮겨 붓습니다.

이제 우유를 만날 차례입니다.


얼마 전부터 배에 탈이 계속되어

우유를 유당 성분이 없는 것으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어릴 적 마셔본 파스퇴르 우유와 그 맛이 비슷합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달큼하고 고소한 우유에 부드러운 거품과 온기가 생겨납니다.


자,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순간입니다. 정말 찰나입니다.

달리기 선수들에게 '요이땅'의 의미처럼

우유 잔을 바닥에 '쿵쿵' 두어 번 내리치고 회전시켜 거품의 질감을 확인합니다.

기울어진 머그잔 안의 에스프레소 속으로 우유 잔을 회전시키며 부어줍니다.

2/3쯤 차오르면 손목의 스냅으로 곡선을 그리다가 마무리합니다.


아, 거의 매일 로제타는 실패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내일 또 한 번 연습할 기회가 있으니까요.

로제타의 길은 멀고 멀지만 커피는 너무나도 맛이 좋습니다.

내가 원하는 커피의 농도와 우유의 온도 거품의 양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멍을 때립니다. 

한 모금, 두 모금 목을 축입니다.


커피 옆엔 거의 언제나 일정표와 계산기가 함께합니다.

생경한 친구들의 모임일까요.

한 모금 축이고 일정표를 보고, 

또 한 모금 축이고 오늘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에 정리합니다.


주중 내에 중요한 일, 큰 결제 건들이 있으면

떨어져 지내는 남편이 일을 마치고 확인할 수 있도록 정리하여 메시지를 남겨놓습니다.

저녁 통화 때 우리는 그 이슈들에 대해 함께 결정하거나 공유합니다.


나와 남편은 서로 잘하는 것이 명확히 다르기 때문에 역할분담도 확실합니다.

나는 남편의 비서이기도 하고, 우리 집의 오피서이기도 합니다.

우리 집 오피서는 보통 매일 삼십 분에서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을 할애하는 듯합니다.

놓치는 실수 없이 마음껏 놀기 위해서이지요.


오피서 업무가 끝나면 머그잔과 우유 잔, 커피머신을 정리하고 방으로 들어옵니다.

샤워를 하거나 간단한 세안 후 외출복으로 갈아입습니다.


침대를 정리합니다.

이불은 반듯하고 빳빳하게 베개 4개는 네 면의 모서리가 모두 서있을 수 있도록 신경 써서 정리합니다.

너무 반듯해서 쉽사리 다시 침대에 몸을 누일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외출 후 집에 돌아오면 언제든 정돈된 침대가 반기는 것은 나와 남편의 오랜 습관이자 좋아하는 것들 중에 하나 입니다.


이렇게 나는 오늘도 하루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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