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는 브란덴부르크 공항을 이용할 수 있기를

8월 5일

by 안나

6시 30분, 눈이 떠졌다. 소냐도 마침 오전에 일이 있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있었다. 세면도구를 챙겨 넣으니 공항으로 떠날 채비가 되었다. 엘라를 마지막으로 보듬어주고 소냐와 작별 인사를 나눴다. 떠나는 날이 되어서야 내 발걸음 소리에 짖지 않게 되었는데 아쉬웠다. 다음에도 베를린에 와서 자신의 집에 머물러달라고 말하는 소냐의 모습이 정겨워 꼭 안아주었다. 아직도 쿨쿨 자고 있는 레니와는 인사를 하지 못했다. 안녕, 3주 동안 정말로 고마웠어요. 건강해요.


택시를 타고 도착한 테겔 공항에서 체크인 카운터를 찾지 못하고 바로 보안 검색대로 들어갈 뻔했다. 말도 못하게 어처구니없는 짓을 해서 또 혼자 웃었다. 어떤 친절한 아즈씨가 항공사 카운터는 바로 옆인 터미널 B에 있다고 하여 멘붕이 왔다. 네? 이게 체크인 카운터 줄이 아니라고요? 도대체 이 공항은 왜 이렇게 생겨먹었죠?(또 남 탓을 하고 있다) 내가 있던 곳은 터미널 A. 순환 버스 같은 거 타고 멀리 가야 하는 건지 걱정했으나 정말 바로 옆이었다. 왜 공항에만 오면 이러고 있을까. 굳이 변명하자면 인천 공항과 어마어마하게 다른 규모 때문에 뭐가 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겨우 정신을 붙잡고 짐을 부치고 다시 보안 검색을 받으러 돌아갔다. 테겔 공항의 규모는 시골 터미널 수준이다. 어느 정도냐면 뮌헨으로 향하는 비행기의 탑승구 게이트가... 보안 검색대 바로 옆에 있다. 문자 그대로 바로 옆. 2미터 떨어져있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 보안 검색 받는 사람들과 하하호호 웃으며 일하는 공항 직원들을 구경하고 있다. 면세 구역이랄게 있는 지도 모르겠네. 피어싱 때문에 삐-소리가 날 줄 알았는데 뭐 별 일 없었다.


멍하니 의자에 앉아 있는데 뮌헨에서 인천으로 향하는 비행기가 한 시간 가량 지연이 됐다고 메일이 왔다. 환승 시간도 짧았는데 뮌헨 공항 구경이나 해야겠다. 여기보다야 볼 게 많겠지. 독일이라는 거대한 국가의 수도 공항이라는 타이틀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테겔 공항은 작기로 유명하다. 동독과 서독이 통일이 된 직후, 수도에 걸맞은 새로운 공항을 지어야겠다는 건설적인 생각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러나 베를린 시에서 야심차게 추진했던 브란덴부르크 신공항*의 완공은 요원하다고 한다.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건설 계획이 세워졌고 십년이 지난 후에야 구체적인 방안이 나왔다는데 그 이후로 완성될 듯 안 될 듯 하고 있다고. 삼라만상이 들어 있다는 나무 위키 설명에는 ‘영원히 다음 달에 개항하는 공항’이라고 나와 있을 정도다. 아마 20년이 지나면 완공될지도. 정부도 시민도 다들 포기 상태에 이르렀다고 보인다.


진짜 골 때리는 건 보안검색대 앞에 사람들이 줄서서 대기하는 공간을 구분해놓은 줄에는 떡하니 ‘브란덴부르크’라고 적혀있다. 일단 만들어놓은 건 있는데 정작 공항은 안 열었으니 썩히면 뭐하나 테겔에서 써야지, 이런 거다. 이런 헛짓을 보고 있자면 그 철저하다고 동네방네 소문난 독일 사람들이 공사한 거 맞나 싶다. 그래도 근검절약의 아이콘인 건 알겠다.


한 시간을 날아 뮌헨으로 왔다. 창가에 앉은 여자애가 내가 창문 밖의 풍경을 보는 걸 눈치 채고 미소를 지으며 슬쩍 몸을 뒤로 빼준다. 여행 중에는 이런 소소한 배려가 늘 고맙고 귀엽다. 남부 지방의 특징인 듯 공항 주변에는 나무도 많고 경작지로 보이는 땅도 많다. 처음 본 뮌헨은 전형적인 유럽 시골의 정취가 물씬 드러났다.


마침 너무 타이트한 일정이라 약간 피로할 뻔 했지만 인천행 비행기가 지연된 바람에 느긋하게 게이트 앞 바에 앉아 라들러를 마시며 일기를 썼다. 오히려 잘됐다 싶다. 새파란 눈의 카페 직원은 라들러를 한 번에 정확하게 알아들었다. 뿌듯하구만.


독일에서의 마지막 라들러

뮌헨 공항은 모든 면에서 인천 공항과 매우 흡사하다. 시설은 당연히 최신식이고 공항 건물은 한도 끝도 없이 크다. 다른 터미널로는 셔틀 트레인으로 이동하며 화장실에서는 남부 독일의 전통 음악이 흐른다. 생뚱맞게 VR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뮌헨이 가지고 있는 자본의 힘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기분 탓이겠지만 여행 첫 날, 베를린 행 비행기에서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했는데 뮌헨 행 비행기에서는 다소 활기가 흘렀다. 느긋하고 활력 넘치는 남부와 약간 차갑고 세련된 북부의 차이랄까. 환승을 위한 심사대에서는 무려 자동으로 여권 인식을 할 수 있었다. 미국, 한국, 일본 등 협약을 맺은 몇몇 국가의 여행객들에게만 허락된 특혜였다. 길게 늘어선 줄에서 잠시 서 있다가 한국 사람들이 갑자기 어디론가 총총 걸어가기에 따라갔더니 자동출입국 심사대가 있었다. 우오 여기 인천인가봐! 벌써부터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었다.


물론 물가도 부자 도시답게 사악하다. 샌드위치 등 가장 간편한 음식들도 기본 7-8유로 정도다. 커피도 4-5유로. 라들러도 5.5유로라 가지고 있던 동전을 남김없이 다 썼다. 뮌헨 출신 사람들이 여기 물가 너무 비싸다고 한탄을 했는데 실제로 보니 정말 비싸서 여행 오지 않길 잘했다 안도했다. 아까 착륙할 때 살짝 본 창밖의 풍경이 고즈넉하고 정감이 있어서 주말에 이틀이라도 와볼 걸 살짝 후회했는데 샌드위치 가격보고 바로 마음을 접었다. 만원 주고 샌드위치를 사먹을 수는 없었다.


이제 20분 뒤면 탑승이 시작된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간다.



* Flughafen Berlin Brandenburg 설계 결함으로 개항이 끝없이 미뤄지는 중. 일단 2020년 안에 개항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다고. 이름 하나는 거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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