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픽션이라면 좋으련만

8월 2일 새벽 2시

by 안나

나 : 다들 베를린에 사는데 축구는 어느 팀 응원해? 헤르타 베를린?


막스 : 뭐어? 아무도 그 팀은 응원 안 해. 진짜 엉망진창이야.


루드빅 : 우리 가족은 남부 출신이라...


나 : 그러면 바이에른 뮌헨?


남자들 : 아니! 뮌헨 너무 싫어!!


나 : (예상치 못한 답변에 매우 당황한다) 왜?


크리스토퍼 : 뮌헨은 너무 잘 해. 계속 우승하고. 꼴 보기 싫어. 으으.


나 : 그러면 응원하는 팀은 있어 다들?


막스 : 사실 딱히 없긴 한데, 도르트문트? 근데 그렇게 열심히 안 봐.


루드빅 : 나는... 슈투트가르트.


크리스토퍼 : 나는 분데스리가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 A매치는 보지만.


나 : 작년 월드컵 때는 왜 그랬던 거야? 뭐가 문제였어?


크리스토퍼 : 그냥 다 모든 것이 문제였어. 네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문제가 대표팀에 있었지.


나 : 근데 독일 대표팀 감독님 한국에서 인기 많아. 미중년이라고.


루드빅 : 뭐? 코딱지나 파먹는 남자가 인기가 많다고??


나 : 크하하핳!!! 그 아저씨는 진짜 왜 그러는 거야. 멀쩡하게 생겨가지고. 수트가 잘 맞는 몸매잖아. 한국에는 그런 중년 남자 흔치 않아.


막스 : 한국 선수들도 독일에서 많이 뛰었잖아. 차...


나 : 차붐?


막스 : 차붐도 있고 아들인 차두리도 있잖아.


나 : 차두리도 알아?


루드빅 : 그럼 당연하지.


나 : 요즘 대세는 손흥민이야.


남자들 : 아, 손... 레버쿠젠에 있었지? 작년에 그 골은 정말 잊을 수 없었지.


나 : 아흐흐.... (술김에 자랑한다) 나는 너무 떨려서 한국 경기는 못 보는데 그 때 한국 시각으로 자정이었거든. 갑자기 메신저에 불이 나는 거야. 지금 빨리 경기보라고. 독일 상대로 골을 넣었다는데 장난하는 줄 알았어. 경기를 보는데도 못 믿겠더라.


막스 : 나도 그 경기 보는데 정말... 친구들이랑 쌍욕하고 난리가 났었지.


나 : 경기 끝나고 영상이 도는데, 영국 펍에서 한국이 골 넣으니까 난리 난 장면을 누가 찍어서 올린거야. 영국 사람들이 막... 그러니까 마구 환호성을 지르는 거야! 그거 보는데 와 이거 완전 2차 대전 끝났을 때 같이 엄청 좋아하, 헉!!!!!


남자들 : (잠시 멈칫) 크하하하하하하핳!!!!


나 : (아니 내가 독일 사람들 앞에서 무슨 소리를)... 미안, 미안합니다. 흥분해서 잠시 상황 판단을 못했습니다, 여러분.


크리스토퍼 : 사과 안 해도 돼. 맞아 그랬을 거야. 상상이 간다.


루드빅 : 독일 대표팀은 유럽에서 정말 인기가 없지.


막스 : 모든 나라들이 증오하지.


나 : 그... (간신히 수습할 말을 찾는다) 독일팀이 너무 잘해서 그렇지. 작년에는 정말 이상하게 못했지만. 이제까지 몇 번이나 우승했지?


막스 : 4번. 참고로 브라질은 5번이야. 한 번 더 해야 해.


나 : 어우... 욕심이 많아.


내가 왜 2차 대전이라고 콕 찝어서 말했을까. 순간 나불대던 내 입을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애써 마신 술이 말끔히 깨는 느낌이었다.


차라리 픽션이었으면 좋겠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동네를 지니가다가 포착


keyword
이전 17화독일 청년들은 뭐하고 놀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