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6일
인천에 도착하니 오전 6시였다. 11시간의 비행은 생각보다 괴롭지 않았다. 옆자리의 아가씨가 분주하게 기내식 사진도 찍고 모니터 사진도 찍는 걸 구경하다가, 자다 깨다 하다 보니 다 왔다. 기내에서 세관 신고서를 작성하는데 직업란에 ‘작가’라고 적었다. 올 여름 내내 매일매일 오늘 글은 어떻게 쓸지, 얼마나 쓸지 고민하며 살았는데 당당하게 써도 될 것 같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으면 된다.
택시를 타려고 공항 문을 나서는 순간 습기를 품은 뜨거운 공기가 훅!하고 들이닥쳤다. 누가 헤어 드라이기로 내 온몸을 말리는 것 같았다. 이게 지금 말이 되는 날씨인가. 그래서 우리 강아지가 목욕하고 털 말릴 때 그 생난리를 피었구나. 미안하다 봄아. 악명 높은 8월의 한국이었다. 내가 집으로 돌아온 이 날은 폭염의 정점을 찍은 날이었다. 아침에 이미 30도가 넘었다. 그 열기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어쩐지 웃음이 났다.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돌아왔구나.
거대한 캐리어를 트렁크에 실어주신 택시 기사님이 어디 멀리 다녀왔냐고 물어보셨다. 간만에 듣는 한국 아저씨의 한국어가 정겨웠다. 은근슬쩍 말을 놓는 아저씨 특유의 말투도 전혀 밉지 않았다. 기사님 목소리에 정이 담뿍 담겨 있었기에.
“어디 멀리 다녀오셨는감-?”
“네, 독일에요.”
“아이구, 유학 다녀오시는감?”
“아니오, 그냥 여행이요. 친구가 있어서.”
“그렇구만. 아이구 오늘은 아침부터 푹푹 찌네그려. 공항은 자주 오시는감? 내 명함 하나 드릴게.”
“네네, 주세요.”
평소라면 낯선 이와의 대화가 내키지 않았을 텐데,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다른 이들 앞에서 목소리를 내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모르게 배웠나보다. 늘 나의 목소리를 내는 걸 두려워했다. 멍청한 소리를 할까봐, 나댄다고 사람들이 싫어할까봐, 거만해보일까봐. 결국 내가 틀렸을까봐.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한심하게 생각할까봐. 베를린에서 오다가다 만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에 거침이 없었다. 어느 날은 가만히 이야기를 듣다가 참다못해 이렇게 묻기도 했다.
너희들은 모든 것에 대한 의견이 있는거니?
그들은 이 질문에 실소를 터뜨렸지만 절대로 부정은 하지 않았다. 때로는 내가 뭘 원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집요할 정도로 물어봐서 지칠 때도 있었다. 아무거나, 라는 대답은 통하지 않았다. 나는 취향이 없다시피 한 사람이라고 해도 기어이 내가 원하는 것 혹은 원하지 않는 것을 실토하도록 만들었다. 처음에는 피곤했지만 그들의 문화에 순식간에 적응했다. 언제나 한 발자국 물러나 다른 이들을 지켜보는 것에 더 익숙했던, 눈치 보는 것이 몸에 익은 나로서는 큰 변화이자 도전이었다. 새로운 내 모습이 싫지 않았다.
창밖으로 기운 찬 매미 소리가 들려왔다. 올 여름 처음으로 듣는 매미들의 목소리였다. 너희들도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었구나. 나는 나 사느라 바빠서 생각도 못하고 있었네. 부지런히 달려 도착한 집안은 이미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화분에 물을 주고 창문을 모두 열어 환기를 하고 샤워를 하고 모두에게 생존 신고를 하고. 긴 여행에서 돌아오면 늘 해야 하는 의식을 수행했다. 그 사이에 커스틴과 막스에게서 안부를 묻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비행기는 잘 탔니, 집에는 잘 도착 했니, 거기 날씨는 어때, 베를린은 별 거 없어, 시차 적응 잘 하고, 벌써 보고 싶다 친구야.
여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살벌하게 더워. 근데 이 더위가 묘하게 마음에 든다.
이번 여름의 베를린은 평생 잊지 못할 거 같아. 정말로 고마워. 모든 게 다.
빨랫감으로 가득 한 캐리어를 보며 긴 여행이 끝났음을 실감했다. 베를린에서 난 뭘 했지. 맥주 마시며 웃고 떠든 건 기억이 나는데. 오랜만에 만난 커스틴과는 물론이고 난생 처음 본 사람들과도 신나게 놀았다. 이렇게 많이 웃었던 때가 언제였지 놀랄 정도로. 베를린의 아름다운 도시 풍경에 감탄하면서도 순간순간 외로웠다. 무엇보다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엄마와 아빠 생각을 할 때면 마음 한구석이 아려올 만큼 슬펐다. 그런 슬픔도 낯선 거리를 걷다 보면 조금씩 옅어졌고, 그러다 가끔은 두렵기도 했다. 이렇게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될까. 또 불행한 일이 생길까봐, 바라는 일이 이뤄지지 않을까봐,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어영부영하다가 이 삶이 끝날까봐 무서웠다. 두려움에 불안해질 때면 사람들을 만나 웃었다. 진심이 느껴질 무렵에는 혼자 울기도 했다. 그들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나처럼 대단치 않는 사람도 원하는 대로 살아도 된다는 무언의 응원을 보내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나도 괜찮아질 지도 몰라. 지금보다 더. 그러니까 이제 죄책감은 그만 느껴. 더 이상 불안해하지도 말고.
그래서 딱 한 번 뒤돌아보고 떠날 수 있었다. 베를린의 친구들과 내년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뒤로 하고.
지난 7월의 매일을 되짚어가며 나는 드디어 베를린에게 작별을 고할 준비가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언제나 동경했고 기대 이상으로 아름답고 독특했던 그 도시와 그보다 더 매력적인 베를린의 사람들에게.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