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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Sep 16. 2019

즐거운 여행이 될 것 같다

6/19 Day 1. 오후 10시 

타이베이 지안 샨 호텔 내 방 침대에서 쓰다.


비행기는 생각보다 늦게 도착했고, 입국 심사대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더 많았으며, 내 거대한 캐리어는 생각보다 더 늦게 나왔고, 타이페이는 생각보다 훨씬 더 더웠다. 미리 예약한 클룩 픽업 기사를 기다리는데 한밤중인데도 더위로 숨이 막혔다. 폭염을 뚫고 도착한 호텔은 생각보다 훨씬 더 쿨하고 운치있다.


호텔 주변에는 닝샤 야시장이라는 유명한 동네 시장이 있다. 단 한 번도 이렇게 올드 타운에 위치한 숙소에 묵어본 적이 없었다. 50년대 풍으로 꾸민 실내는 고풍스러움 그 자체다. 심지어 방에 놓인 전화도 다이얼을 돌려서 거는 제품이다. 이 전화의 수화기를 들어 저기, 와이파이 비번이 뭐였죠? 라고 물어보는 상황을 상상만 해도 골 때린다.


자네, 와이파이 비번 좀 가르쳐주지 않겠는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무척이나 근사하다. 보통의 평범한 타이베이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 방과 호텔은 마치 영화 <화양연화>에 나올 법한 곳이다.


한여름의 습한 기운이 카메라에도 담길 지경이었다


홍콩에서 대만으로 오는 여정은 그저 바빴다. 쳅락콕 공항에 내리자마자 보안 검색을 받고 바로 환승 게이트로 갔더니 보딩 시간이 20분도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10분 정도 게이트 앞에서 넋을 놓고 있으니 또 다시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다음 달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예행연습인 듯 했다. 기내식을 깨끗이 먹어치우고 서둘러 입국 심사대로 향했는데,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만 너무 휴양지 룩을 하고 서 있었다. 다들 티셔츠에 청바지 혹은 수트 차림이었는데 나는 야자수 잎이 가득 그려진 와이드 팬츠를 펄럭이며 있었다. 물론 내 착각이겠지만. 여튼 그들 사이에서 나 혼자 너무 튀어서 웃겼다. 저기, 저는 지금 방콕에서 왔거든요 그래서...라고 속으로 구질구질하게 변명을 했다. 


타이베이는 방콕보다 훨씬 이국적이다. 왜냐면 내가 한자를 하나도 모르기 때문에. 길거리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이채롭다. 호텔 바로 앞의 편의점에서 점원이 중국어로 말을 걸어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쳐다봤더니 씩 웃고 거스름돈을 준다. 가타부타 하지 않아도 중국어는 한 마디도 모르는 불우한 관광객인 걸 알았던 게지. 이 도시의 사람들은 무심한 듯 친절하다. 미소 한번 짓지 않으면서 내 캐리어가 무거워도 상관없다며 4층 계단을 뚜벅뚜벅 걸어 올라간 호텔 매니저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이 단박에 마음에 들었다.



즐거운 여행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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