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1 Day 3.
너무 심각하게 더워서 오후까지 늘어져 있다가 타이베이 당대 예술관에 갔다. 한국이었다면 재난 문자가 15번은 왔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더위였다. 체감 온도 46도인 날씨에는 살아본 적이 없기에 여기가 중동이 아닌지 잠시 고민했다.
오후에 호기롭게 우버를 불러 당대 예술관에 도착했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지었던 시청사를 갤러리로 개조하여 쓰고 있는 건물이라 고풍스럽기 짝이 없었다. 전시되는 주제는 컨템포러리 아트라길래 그러려니 했는데 심하게 컨템포러리라....... 하필이면 사운드를 이용한 인터액티브 미디어 전시라서 20분도 되지 않아 관람을 마쳤다. 내가 가장 관심이 없는 분야가 바로 미디어 아트이기 때문이다. 백남준 선생님 죄송합니다만 저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바로(사실 이해를 한 작품이 이거 하나 뿐이었다) 중정기념당 앞의 광장에 사람들이 서서 각자의 소원을 말하는 비디오였다.
이 중 가장 마음을 후려치는 소원은 뭐니뭐니해도 ‘돈 많은 누군가가 내게 돈을 좀 줬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이었다. 역시 사람 사는 데는 어디나 다 똑같다. 참고로 구체적인 수치를 대자면 나는 10억원 정도면 만족할 수 있다. 10억 달러나 10억 유로가 아니다. 이 정도면 소박한 거 아녀?
바람같이 관람을 마치고 1층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 예쁜 자석과 엽서를 샀다. 오늘 가장 에너제틱한 순간이었다. 잠시 커피를 마시며 더위로 혼미해진 정신을 차리고자 유명하다는 카페인 OLO Coffee Roasters에 갔는데 자리가 없어서 그냥 나와야만 했다. 카페 안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아주 고요하게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있었다. 순간 여기가 도서관인가 했다. 그렇다면 어디로 가야할까 고민하는 중에 카페 앞에서 그 동네 사는 고양이 한 마리와 놀았다. 너무 더워서 그런지 고양이도 나 못지않게 맥아리가 없었지만 털도 깨끗하고 건강해 보였다.
다행히 바로 옆에 일본풍의 빙수 가게가 있어서 라떼를 한 잔 시키고 저녁을 먹을 식당이 문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한국에서는 이자카야나 스시 집이 아닌데도 이랏샤이마세!하고 외치는 가게가 있다면 화염병을 던지겠지만 타이베이는 매우 일본 친화적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긴 기간의 일본의 식민 통치를 겪었지만, 그 강도와 분위기가 동일한 시기에 식민 통치를 겪었던 조선과는 사뭇 달랐던 모양이다. 무엇보다 일본 사람들이 대만으로 워낙 관광을 많이 오기도 하고. 식당이나 편의점에서 내가 중국인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순간 바로 일본어로 접대를 한다. 나는 아주 간단한 일본어는 알아듣기 때문에(그래봤자 스미마셍, 아리가또 정도) 우리는 지금 서로 대화를 하고 있어,라는 표정을 지으며 묵묵히 듣고 있다. 굳이 직원에게 한국인임을 어필할 이유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한참 일본어로 설명과 안내를 해준 사람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이런 경우에는 보통 가만히 있다. 조용히 듣고 있던 내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영어를 쓰는 순간, 다시 능숙한 영어로 응대해주는 그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나는 인사조차 중국어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니하오-해야지 하면서 하이-가 먼저 나온다. 당연히 씨에씨에 대신 땡큐가 먼저 나온다. 태국에서는 의식적으로라도 인사 정도는 태국말로 하려고 했는데, 여기 오니 긴장이 풀렸는지 매일 서울의 번화가를 다니며 평소처럼 노는 기분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대만의 역사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다는 자각이 들어서 그래 내일은 역사박물관에 가자!하고 결심했다. 구글에 검색해보니 공사 중임. 언제 다시 열지 모름. 이라는 안내가 나왔다. 젠장. 역사 공부는 구글과 유튜브로 하기로.
밍숭맹숭한 라테를 다 마시고 한국 사람들이 조금 덜 올 것 같은 ‘덴수이러우’ 난징 점에 일부러 찾아갔다. 타이베이 역 근처에 있는 식당에 가면 여기가 대만인지 합정동인지 광화문인지 구분이 안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바로 앞에 있는 남자들이 한국 사람들인데다, 하필 바 자리에 함께 앉게 되었다. 가게 매니저는 내가 혼자 왔다고 하니까 굿! 외치며 바에 앉혔다. 자리 배치 때문에 어지간히 피곤했나 보다. ‘덴수이러우’는 그 유명한 ‘딘타이펑’보다 고기의 진한 풍미를 느낄 수 있다고 하여 육식주의자인 나는 주저 없이 샤오롱빠오를 먹으러 갔다. 오늘의 첫 끼였기에 아무 거리낌 없이 비싼 딤섬과 기린 맥주를 주문했다. 근데 병이 너무 크고(660ml) 잔은 또 너무 작아서 혼자서 끊임없이 맥주를 따라야 했다. 알코홀릭이 따로 없었다. 맥주를 대차게 마시는 내게 서빙하는 직원이 일본어로 뭐라뭐라 했다. 나도 알아듣는 척했다. 하이하이 아리가또.
곧바로 나온 색색의 샤오롱빠오가 굉장히 예뻤지만 한 2초 정도 감상하고 꿀떡꿀떡 집어 삼켰다. 이걸로는 모자라기에 새우볶음밥까지 시켰다. 먹다보니 점점 더 배가 고파져서(?) 메뉴를 다시 달라고 하여 새우 쇼마이에 생맥주도 한 잔 더 시켰다. 나 홀로 앉아 엄청 먹고 마셨다. 오픈 키친에서는 요리사들이 끊임없이 딤섬을 만들었다. 다른 사람의 끝나지 않는 노동을 보며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고 있자니, 이번 생은 이 정도의 행복으로 만족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딸딸하게 취했겠다, 기분이 매우 좋아져 부른 배를 두드리며 용산사 바로 옆에 있는 보피랴오 거리에 갔다. 옛 대만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걷기 좋은 거리라는 설명을 읽고 마음이 동했다. 사실 이 거리 이름을 또 까먹어서 나중에 다시 찾아봤다. 그러나 너무 늦은 시각이라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낮에는 산책할 엄두도 나지 않는데 어쩌지. 그 거리의 어떤 스튜디오에서는 연극을 연습하는 청년들이 있었다. 창작 활동을 하는 젊은이들은 세계 어디에나 있고 그들은 하나 같이 꾸밈없는 표정을 하고 있다.
잠시 거리를 걷다가 곧 더위에 지쳐서 방으로 돌아갔다. 호텔 근처 지하철 역 바깥으로 나오는 순간 그 번잡함과 화려함에 깜짝 놀랐다. 아니 여기 맥도날드도 있었잖아! 이렇게 불야성을 이루고 있을 줄은 몰랐다. 낮에는 너무 더워서 그런지 도시가 어느 정도의 고요함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해가 질 무렵부터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 다시 살아나는 듯 했다. 괜히 흥분하여(왜?) 미친 듯이 땀을 흘리며 호텔까지 걸어왔다. 이름도 없는 수많은 작은 식당들과 카페와 약재상들과 이발소들과 동물병원들이 호텔로 가는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표정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오늘부터는 가이드북이 아니라 호텔에서 준 지도만 보기로 결정했다. 네이버 대만 카페가 아니라 진짜 종이 지도와 구글맵에서 정보를 얻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하고 즐거워 보였다.
밤이 되자 온 동네 강아지가 다 산책을 나왔다. 낮에는 너무 더워서 밖에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어느 보석상의 시바견이 바닥에 널브러져 내 인사를 받았다. 나른하면서도 여유 있는 표정이 매력적인 아이였다. 길거리에 종종 예쁜 고양이들이 보여서 무작정 인사를 했다. 다들 붙임성이 좋고 아주 귀여운 아이들이었다. 이 도시는 동물들한테 대체로 관대한 듯 했다. 이 더위에도 고양이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흘렀다.
그 중에도 내가 묵는 호텔 문 앞에 떡하니 앉아 있던 치즈색 고양이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더위에 얼굴이 뻘개진 나를 반기는 호텔 매니저에게 저 고양이의 정체에 대해 물어봤다. 마치 제 집인양 지키고 있어서 매니저들이 호텔에서 키우는 앤 줄 알았는데 옆집 고양이라고. 그 말을 듣고 빵 터졌다.
“아니 쟤는 너무 자기 집처럼 앉아 있는데요?”
“그러니까 말이에요. 근데 옆집 고양이에요. 쟤 맨날 저러고 있어요.”
세븐 일레븐에서 비행기에서 먹지 못했던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샤워 후에 먹어치웠다. 너무 더워서 그런가, 수술한 부위가 계속 아프다. 가끔 이렇게 체력적으로 방전이 되면 수술한 자리가 아프다. 하루 정도는 쉬라는 메시지다.
내일은 해가 질 때까지 근처 카페에서 얌전히 책을 읽고 글을 써야겠다. 스타벅스 말고 적당한 카페가 없는지 찾아봐야겠다.
타이베이에서의 세 번째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