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2 Day 4. 오후 4시
호텔 근처 Sugar cafe bar 2층 자리에 앉아서 쓰다.
새벽에 402호 커플이 계속 떠들어서 약간 성질이 났다. 중국어를 쓰는 그 커플은 아마도 본토인이나 대만인일수도 홍콩 사람일 수도 있는데, 어디 출신이건 간에 시끄러워서 엄청 열 받았다. 왜 새벽 2시가 넘었는데 웃고 떠들고 자빠졌는가. 애틋한 관계 중에 내는 소리라면 이해하겠다만.
그러고 보니 며칠 전, 방콕의 호텔에서 겪은 일이 생각난다.
어느 한적한 밤 갑자기 옆방에서 인도인으로 추정되는 한 커플이 격렬하게 싸우는 듯한 소리가 들려서 순간 긴장했다. 관광지의 흔한 호텔이 그렇듯 방음은 거의 안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데스크에 연락해야 되나? 저러다 누가 심하게 다치는 건 아니겠지? 그런데... 뭔가 묘해서 계속 듣고 있었더니 그건 단순히 싸우는 소리가 아니었다. 정확히는 섹스 중에 내는 신음 소리가 아니라, 남자가 요구하는 어떤 것을 여자가 거부하다가 말다가(관계 중간에 여자가 어느 정도 들어주는 것 같았다. 이런 걸 어떻게 잘 알아들었냐고 묻지 말아달라) 그러다가 마음에 안 들어서 큰 소리를 내는 것 같았고 결국 남자가 와하하하! 웃고 여자는 화를 내며 문을 쾅 닫고 나가버리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남자가 대체 뭘 요구했을까? 무척 궁금했다. 사실 그보다는 심하게 다투거나 일방적인 폭행 상황이 아닌 것에 정말로 안심했다. 스쿰빗 거리에서는 외국인 남성이 태국인 여성과 하룻밤 잠자리를 가지는 것이 너무 일상적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연인 혹은 원나잇 상대와 젠틀하게 관계를 하는 남자도 있겠지만, 정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말이다.
오전 10시가 넘어서 눈을 떴다. 침을 삼킬 때마다 목이 조금 부어 있는 것 같아 긴장했다. 내가 가진 가장 고질적인 질병이 바로 목에 생기는 염증이다. 무조건 항생제를 먹어야만 가라앉기 때문에 외국에 나올 때 늘 조심해서 다닌다. 지난 겨울부터 필라테스를 해서 올 여름까지 크게 아픈 적은 없었다. 물론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근육통으로 개고생하지만 적어도 편도선은 붓지 않았다. 아프면 안 되는데 걱정하면서 에어컨도 끄고 최대한 몸을 따뜻하게 했다. 다행히도 수술한 자리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오늘은 날이 너무 흐리고 컨디션도 좋지 않으니 어디 돌아다니지 않기로 결정했다. 구글맵에 표시된 카페 중 가장 가깝고 인테리어가 예쁜 곳을 골랐다. 호텔을 나가려는데 매니저가 우산을 들고 가라고 하여 긴 우산 하나를 들고 나왔다. 작은 호텔은 참 정겹다.
한 쪽 벽면에 거대하게 ‘복’이라는 글자가 장식된 예쁜 카페에서 새우살로 만든 샌드위치를 먹고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다. 열심히 지도를 보며 내일 체크아웃을 하고 비는 시간에 어디로 가면 좋을지 탐색을 했다. 내일이면 타이베이 메인역 바로 앞에 있는 호텔로 옮겨야 한다. 이 호텔이 아늑하고 독특해서 마음에 들었는데 아쉽다. 아마 원래 일정대로라면 이 동네는 알지도 못했겠지. 즉흥적으로 일정을 바꾸는 것의 장점이다.
다음 호텔은 위치 하나는 정말 기가 막힌다고 하여 선택한 곳이다. 방은 좁고 거리는 시끄럽지만 정말 역에서 엎어지면 손끝이 닿을만한 거리라고. 타이베이도 서울 못지않게 지하철 노선이 알아보기 편리하게 잘 되어 있어 열심히 이지 카드를 찍으며 다니고 있다. 지금 이 호텔은 역에서 조금 멀다. 날씨가 조금만 더 쾌적했다면 좋았을 것을.
잠시 호텔에 들러 아이패드를 놓고 근처에 있는 디화제에 산책을 하러 나갈 생각이다. 깊은 밤이 될 때까지 비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