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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Dec 03. 2022

파네토네

나는 뭐든 잘 먹는 편이다.

대학 때 소개팅 나가면 의례적으로 하는 서로의 호구 조사 속에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도 꼭 들어 있었다. 그러면 나는 언제나 똑같이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개고기 빼고 다 먹어요."

언젠가 남편이 연애 시절 순대와 간을 먹는 나를 보고 속으로 놀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게 왜?" 그러자, 남자 형제들 속에서 자란 남편은 여자에 대한 약간의 환상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내가 이슬만 먹을 것처럼 보였어?" 내가 묻자 남편이 말했다.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나랑 살면서 여자에 대한 환상은 와장창 다 깨져 지금은 흔적도 없다고.

나는 매를 벌지 말고 돈을 벌어 보라고 말해 주었다.


먹는 걸 좋아해서 뭐든 잘 먹는 줄만 알고 살아왔는데, 내게도 호불호가 있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나라 밖에서 살면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만든 음식을 먹어보며 알게 된 것 같다.

향신료가 듬뿍 들어간 음식은 먹고 있는 게 아니라 화장품을 바르고 있는 느낌이라 거의 입에 대지 못한다.

날지 못하는 새 고기는 튀긴 게 아니면 새들 특유의 체취 때문에 잘 먹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 빵을 선호하지 않는다.

옛날 경양식 집은 늘 중요한 결정권을 쥐어주곤 했다. "빵으로 하실래요, 밥으로 하실래요?"

그러면 나는 더 들어볼 필요도 없다는 듯 질문 가운데를 툭 자르며 "밥이요." 했다. 나는 지금도 빵보다 밥이 더 좋다.


다만, 그중 좋아하는 빵이 있긴 하다. 바게트와 크로와상은 여행의 추억이 깃들어서인지 언제든 손이 간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좋아하는 빵이 하나 더 생겼다. 바로 이탈리아 빵 파네토네다.

매년 이맘때면 이탈리아계 미국인인 남편 친구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내주는 빵이다.

파네토네는 신년이나 크리스마스에 먹는 이탈리아 빵이다. 파네토네 종이라는 천연 효모를 써서 장기간 숙성시켜 만들기 때문에 장기 보관이 가능하다. 반죽은 마르면서 산성을 띠게 되며, 나중에 레몬이나 오렌지, 시트로 열매 등을 넣어 향을 더하기도 한다(위키백과, 2022).

온갖 과일로 범벅이 된 파네토네는 씹을 때 반쯤 말린 듯한 과일의 질감과 향이 느껴진다. 달지 않고 식감이 매력적인 빵이다.

나는 파네토네를 먹을 때마다 우리나라 영양빵이 생각난다. 어쩌다 먹을라치면 싫어하는 야채를 쏙쏙 빼고 먹던 영양빵. 먹는 것보다 야채 파내는 게 더 재미있어질 무렵 어른들한테 혼쭐이 나고는 빼놨던 야채를 한꺼번에 다 먹는 곤욕을 치렀던 영양빵. 추억과 맛은 언제나 함께인가 보다.


사진 Pixabay


파네토네가 좋은 이유 중 하나는, 그 빵을 먹을 무렵이면 크리스마스가 코 앞이기 때문이다.

연말 즈음의 조금은 아쉬우면서도 살짝 들뜨는 기분, 마음을 담은 조그만 선물들을 주고받으며 느끼는 따뜻함, 주위에서 들리는 음악과 노래들이 빵에 스며드는 것 같은 느낌이 좋다.

파네토네를 한 입 먹으면 입 안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맛과 함께 갖가지 색깔의 크리스마스트리 장식들이 머릿속으로 지나가는 느낌이다.

빵을, 그것도 복잡한 맛을 즐기지 않는 내가 파네토네를 좋아하는 건 빵에 담긴 따뜻함과 다양함이 주는 안도감 때문일 것이다.

나는 올해도 파네토네 선물을 기다린다.

매일 아침 갓 내린 커피와 한 조각의 파네토네를 먹으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릴 것이다.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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