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니가 갖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언니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여동생 말고 언니 말이다.
부모님은 언제나 내게 세 살 아래 남동생을 보살펴 줘야 한다고 말했다. 동생이 울거나 다치면 내가 야단을 맞았다. 그래서 나는 동생 말고 언니가 갖고 싶었다.
언니에 대한 황홀한 상상 ⎯ 언니가 내 머리를 빗겨주고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다정한 모습은 어린 시절 내가 가졌던 판타지 중 하나다.
언니 있는 친구들은 든든한 자기편을 가진 듯 보여 지금도 가끔 부러워지곤 한다. 별 일 아닌 걸로 티키타카하는 모습까지도 좋아 보인다.
명절에 가족이 모이면, 어린 나는 친척 언니나 이모, 고모들 옆에 딱 붙어 다녔다. 언니들과 같이 있으면 보호받고 사랑받는 기분이 들었다. 집에선 아무도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는 내 말을 언니들은 열심히 들어주고 귀엽다고 내 머리를 만져 주기도 했다. 예쁘고 목소리도 곱고 좋은 냄새가 나는 언니들이 나는 한없이 좋았다.
지금도 생각나는 '나뭇잎배(박홍근 작사, 윤용하 작곡, 1955)'라는 동요가 있다.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푸른 달과 흰 구름 둥실 떠가는
연못에서 사알살 떠다니겠지
연못에다 띄워 논 나뭇잎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살랑살랑 바람에 소곤거리는
갈잎 새를 혼자서 떠다니겠지
어릴 때 다니던 성공회 성당에서 만난 B 언니는 가끔 우리 가족 모임에도 오곤 했다.
내가 대여섯 살 무렵, 한 번은 어른들 심부름을 하러 가는 B 언니를 따라갔는데, 무슨 일이었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누군가를 오래 기다려야 했다. 언니는 기다리는 동안 내게 이 노래를 가르쳐 주었다. 한 소절 한 소절 언니가 부르면 내가 따라 불렀다. 가사의 뜻을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 시간이 너무 즐거워 언제까지나 기다려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나는 B 언니를 볼 수 없었다. 언니가 멀리 이사를 간 건지 아니면 시집을 간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오래오래 언니를 그리워하며 밤엔 아무도 모르게 베갯잇을 눈물로 물들이곤 했다.
하루는 이 노래의 가사처럼, 낮에 잠깐 눈을 붙인 엄마 옆에 누워서 다리를 올렸다 내렸다 박자를 맞추며 노래를 불러 보았다. B 언니가 견딜 수 없게 보고 싶었다. 이름 모를 감정들이 가슴 가득 차올라 숨쉬기가 벅찼다.
헤어짐이 어떤 건지 어렴풋이 알게 된 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누군가를 다시 볼 수 없는 안타까움, 보고 싶은 마음은 이렇게 가슴이 미어지는 느낌이구나 생각했다.
초등학교 6학년 합창반을 할 때 이 노래의 악보를 받고 연습을 하면서 다시 B 언니 생각이 났다.
나뭇잎배가 아닌 B 언니를 마치 내 어린 시절 어딘가에 두고 온 것 같았다.
세월이 흘러 나는 어느덧 두 아이, 자매의 엄마가 되었다.
내가 그토록 갖고 싶었던 언니를 내 아이는 갖게 되었다.
둘째가 어릴 때 친구들에게 "I have a big sister!" 하고 말하던 자랑스러운 표정이 생각난다.
첫째가 둘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눈빛을 볼 때마다 나는 이들을 가졌음이 더없이 행복하다.
그리고 여전한 마음속 언니에 대한 그리움은 아이 적 내 마음을 기억나게 해 준다.
그 맑고 여린 마음을 잊지 않게 해 준다.
https://www.youtube.com/watch?v=oZX5IyaqKJ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