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비행기 안. 통로를 비틀비틀 걸어 다니는 사람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우리 몸을 통제하는 게 우리 자신이 아닌, 하늘을 날고 있는 이 거대한 금속 덩어리인 것만 같다.
적당히 시원한 실내, 승무원들의 세심한 보살핌, 가끔씩 우리를 통째로 흔들어대는 난기류를 제외하면 비교적 평화로운 비행이다.
같은 곳을 향해 하나의 공간을 가득 채우고 여행의 단꿈에 젖은 사람들을 보며,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생각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를 나타내는 말들 ⎯ 부모, 형제, 친척, 친구, 동료... 나는 어쩌면 이 용어들 때문에 더 괴로웠는지 모른다.
친구는 이래야 하고 형제는 저래야 한다는, 우리가 규정한 관계에 걸맞은 행동을 상대에게도 또 나 자신한테도 늘 기대해 왔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런 기대와 맞지 않을 때 상처받으며 살아왔는지 모른다.
우리 사이를 더 이상 습관처럼 묶고 싶지 않다.
사회가 정해준 관계 말고 그냥 너와 나로 살 수 있다면, 우린 서로에 대해 꽤 많은 걸 알게 될지도 모른다.
요즘 자꾸 눈물이 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을 앞에 두고 웃음보다 눈물이 먼저 났다.
친구 딸의 결혼식에 가서는 울컥울컥 솟는 눈물을 참느라 혼이 났다. 화촉을 밝히러 걸어 들어가는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친구 남편의 그윽한 눈빛을 보고 눈물이 났다. 그 눈빛이 너무 아름다웠노라 나중에 친구에게 전해주며 또 눈물이 났다.
식당에서 밥을 먹다 '나눔의 집'이라 써진 조끼를 입은 여자가 만 원만 도와달라고 했을 때, 그녀의 말투에서 내가 건넨 돈이 정말 아이들을 위해 쓰일까 의심이 들면서도 눈물이 났다.
아이들과 공항에서 헤어지는 게 이골이 날 만도 한데, 눈물이 났다.
어느새 정든 숙소와 동네, 행복한 순간들을 놓고 오자니 눈물이 났다.
이별은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것인가 보다.
눈물이 많아지는 건 나이 먹는 증거라고 친구들이 말했다.
눈물이 많아지는 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알아가는 중인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현상이기만 하던 것들이 의미로 다가오는 것,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도 이해하게 되는 것, 그리고 모든 살아가는 것들의 깊은 사이를 알게 되는 것 ⎯ 눈물이 많아지는 이유가 아닐까.
너와 나, 우리 사이에 한 그루 나무가 서 있거나 한 줄기 강이 흐르더라도 그 푸름이 한결같기만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