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남편과 나는 서부와 동부를 잇는 I-80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주말을 맞은 도로는 I-90 도로를 벗어날 때까지 북적였다. 마침내 I-80 도로에 들어서 차가 뜸하고 길이 한적해지자 음료수 생각이 간절해졌다. 무엇보다도, 세 시간 넘게 운전한 남편을 좀 쉬게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쉬었다 가자."
"그래. 조 앞이 내 스타일이야."
남편의 말이 너무 웃겼다. "뭐가 네 스타일이야? 이제 휴게소도 취향 따라가기야?"
약 1분가량 말이 없던 남편이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운전에 열중한 나머지 남편이 내 말을 못 알아들었나 싶었다. "조 앞 휴게소가 당신 스타일이라며? 거긴 다른 휴게소랑 뭐가 좀 달라?"
자판기와 화장실만 달랑 있는 휴게소가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취향도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 후 특이함은 내 몫임을 알게 됐다.
남편의 말 "레스트 에리아(rest area; 휴게소)야"를 "내 스타일야"로 잘 못 들은 나야말로 특이했던 거다.
네 발음이 문제네 네 청력이 문제네 아웅다웅하며 레스트 에리아로 들어서는데, 오래전 딸과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중학교에 갓 입학한 첫째는 한창 사춘기를 지나고 있었다.
어느 날, 뭐 때문이었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서로의 생각이 부딪쳐 말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다 갑자기 딸이 "유(You), 똥개!" 이러더니 홱 돌아서 제 방으로 가버리는 것이었다. 하도 기가 막혀 벌렁대는 가슴을 애써 가라앉히고 딸에게 말했다.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엄마한테 똥개가 뭐야."
딸은 "유 돈 겟 잇(You don't get it; 엄마는 이해 못 해)"라고 말했다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첫머리 '유'와 가운데 '돈 겟'만 내 귀에 꽂혀 "유 똥개"로 들린 것이다.
심각하던 분위기가 '엄마 똥개'로 뭉개져 코미디가 돼버린 건 물론이다.
영어에 얽힌 에피소드가 솜사탕처럼 불어날 만큼 이곳에 오래 살았나 보다.
만약 기록을 꼼꼼히 해두었다면 지금쯤 많은 이야기를 보유할 수 있었을 텐데 그냥 흘려버린 기억들이 아쉽다. 그러나 영어 때문에 실수를 하거나 당황하거나 본의 아니게 주위 사람들을 웃음의 늪에 빠뜨렸던 순간을, 기록은 커녕 어서 빨리 잊고 싶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 일이 있던 날 밤엔 혼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괴성과 발길질로 창피한 기억을 날리곤 했던 것이다. 그런 순간을 빨리 과거로 만들어버려야 앞으로 갈 힘이 생겼기 때문이다.
다소 산만하고 이해력이 달리는 내게 다른 나라 말을 듣고 이해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웠다. 영어를 말해야 하거나 들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내 머릿속에 있는 변환 스위치를 영어 모드로 바꾸어 유창하게 소통하는 상상을 수없이 했다.
영어를 쓰는 땅에 발을 딛는 것만으로 입에서 영어가 술술 나오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으며, 어려운 단어를 많이 안다고 의사소통이 척척 되는 것도 아니고, 교과서에서 배운 How are you? 만이 인사말로 쓰이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데만도 시간이 걸렸다. 언어는 적절한 공식을 대입해 문제를 풀면 정답이 딱 떨어지는 수학과는 전혀 다른 것임에도, 나는 꽤 오랫동안 영어로 하는 소통을 수학문제 풀기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에 와 한 달쯤 되던 어느 날 오후, 세 살 둘째를 픽업하러 아이가 다니던 프리스쿨에 갔다.
말이 사정없이 트이는 시기, 그러나 영어는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던 아이에게 '소변(pee)'과 '화장실(bathroom)'만 겨우 연습시켜 보내곤 가슴 졸이던 날들이었다.
아이의 선생님이 얼굴 가득 웃음을 지으며 나를 데리고 아이들이 놀고 있는 뒷마당으로 갔다. 그리곤 "딸이 뭐 하고 있나 좀 보세요." 했다.
그 순간 어디선가 낯익은 노래가 들려왔다.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 아빠곰, 엄마곰, 애기곰. 아빠곰은..."
혼란 한가득 내 눈에 그네를 타며 '곰 세 마리' 노래를 쩌렁쩌렁 부르고 있는 둘째가 들어왔다. 같이 그네를 타던 두세 명의 아이들이 둘째를 따라 '곰 세 마리'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둘째가 매일 한국 노래 하나씩을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으니 딸이 잘 지내고 있나 그만 걱정해도 된다고 선생님이 말해 주었다.
아이의 해맑은 자신감, 누가 말해 주지 않아도 스스로 즐거움을 찾아내는 힘이 놀랍고 자랑스러웠다.
어쩌면 우리 모두 아이 때 가졌던 그 힘을 어느새 잃어버리고 잊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힘을 기억해 내기 위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낯선 환경, 바뀐 언어에 주눅 들고 좌절을 겪던 세월이 거의 스무 해가 돼 간다.
그동안 시간이 좋은 약이 돼준 걸까. 영어에 대한 욕심과 조바심이 어느새 여유로움과 뻔뻔함으로 바뀌어 가는 걸 느낀다.
"못 알아들으면 어때? 우리말을 얼마나 사랑하면 영어가 우리말로 들리겠어."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자유로운 내일을 꿈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