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감은 내 오랜 지병이다.
어릴 때부터 막연한 불안과 슬픔 같은 게 가슴 한 구석에 있었다. 그러면서 늘 밝아야 한다는 강박도 함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활기가 넘쳤지만 마음은 울적한 아이였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땐 조금은 즐거워지기도 했지만, 대체로 애써 밝은 척을 했다.
누군가와 같이 있을 땐 뚜껑이 닫혀 있어 거기 있는 줄 모르다가, 혼자 있을 땐 어느새 그 뚜껑이 열려 새어 나온 감정들이 나를 힘들게 하곤 했다.
내가 그렇게 혼자서 어두운 마음에 갇혀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내가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친구들과 놀다가도 갑자기 슬퍼지곤 했다.
어린아이의 그 터무니없는 걱정은 어디서 왔던 것일까. 체중 미달로 약하게 태어나는 바람에 주위 어른들이 나를 보고 '죽을 뻔했다'라는 말을 하도 많이 해서 그런 게 아니었나 싶다.
초등학교 때는 아침에 일어나기가 싫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이상하게 슬퍼 보였다.
엄마는 내가 게으름을 피운다며 늘 잔소리를 했다. 그런 엄마에게 내 기분을 설명하는 건 의미 없는 일이었다.
사춘기가 되면서 점점 더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선생님께 아침 자율학습을 면해 달라고 부탁까지 드렸다. 대신 밤에는 늦게까지 깨어 있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혼자 이것저것 할 수 있어 즐거웠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기분이 가라앉을 땐 이불속에서 며칠을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지칠 때까지 울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생기고 나서는 감정의 뚜껑이 꽤 오래 닫힌 채 지냈다. 가끔 뚜껑이 들썩거리면 혼자 있을 구석을 찾았다.
17년 전 어느 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 살게 되었다.
아이들과 남편은 학교와 일터에서 바쁜데, 나만 늘 어디다 마음을 둬야 할지 몰라 서성댔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려고 열심히 노력했으니 겉으로는 잘 사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마음은 밑으로 밑으로 끝없이 가라앉고 있었다.
그리고 2년 후 또 다른 타지에 뚝 떨어진 나는 이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집에 틀어박히기 시작했다.
낮에는 온 집안의 창문을 커튼으로 막아 놓고 컴컴한 방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러다 점점 침대에 누워만 있게 되었다. 차로 3분 거리에 있던 학교에 아이들을 픽업하러 갈 수가 없어서 남편이 일하다 말고 40분을 운전해서 와야 했다.
그냥 너무 힘이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자꾸 눈물만 났다.
이별과 만남이 반복되면서 지쳤던 걸까. 고향이 너무 멀어서였을까. 아니면 그동안 참았던 객지 생활의 설움이 폭발했던 걸까. 나도 알 수가 없었다.
그때까지 남몰래 혼자 겪어 온, 뚜껑이 닫혔다 열렸다 하던 그 감정이 우울감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어릴 때부터 아침 햇살이 보기 싫었던 그 기분의 정체가 뭔지 몰랐었다.
며칠이 지나고 가까스로 자리에서 일어나 막아놨던 커튼을 걷으면서, 나는 허물을 벗고 싶어 졌었다. 그 슬픈 껍데기를 그만 벗어 놓고 떠나고 싶었다.
모든 걸 감추고 전부를 앓는 걸 그만두고, 가끔은 흘리기도 하고 들키기도 하면서 편해지고 싶었다.
옛날 언젠가, 바닷물에 들어가 있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던 적이 있다.
내 몸 아래도 물, 위도 물이었다. 세상이 다 물인 것 같았다. 떨어지는 빗물이 바닷물과 섞이는 걸 보았다. 바다와 내가 하나가 되는 것 같은 순간이었다.
그때였을까. 내 마음에 무겁게 깔려있던 감정이 뚜껑을 밀고 틈새로 빠져나와 날아가기 시작했다. 무겁디 무거웠던 감정들이 가벼워져 훨훨 날아갔다.
그 기분을 잃고 싶지 않아서 구름이 낮게 깔린 바다를 한참 동안 떠나지 못했었다.
비 오는 날 세상에 소리가 꽉 차듯, 내 마음의 어두운 곳을 흔들어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조금 시끄러워도 괜찮다. 자유로워질 수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나의 우울을 미워할 수가 없다. 나를 떠나지 않겠다면 버리려고 애쓰지 말아야겠다.
이제 누군지 알았으니 두려움 없이 끌어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