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파트 2층에 산다.
아파트지만 땅과 가까워 좋다.
올해 초, 이사할 집을 정할 때 몇 층이 좋을까 고민하다 문득 신혼 첫 집이 생각났다. 아파트 13층이었는데, 높은 층에 익숙하지 않던 나는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볼 때마다 현기증이 나곤 했다.
한 번은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베란다에서 목격했다. 사고 순간과 사고 처리과정 등이 너무 자세히 보여 오랫동안 힘들기도 했다.
결혼 전까지 줄곧 2층에 살았었고, 신혼집 이후 살아본 제일 높은 데가 6층이었던 걸 생각하면 낮은 층에 끌린 게 어쩌면 당연했는지 모른다.
아파트 2층살이, 가족단위 가구가 많은 오래된 타운, 정이 많은 사람들, 산책 나가면 맡게 되는 집집에서 흘러나오는 음식냄새 등, 어릴 때 내가 살던 동네와 많이 닮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 사실 ⎯ 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집 앞에 머물다 간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길을 가다 내 방 창 앞에 멈춰 서서는 유아차에 탄 아기의 옷을 여며주거나, 담배에 불을 붙이거나, 냄새 맡는 강아지를 기다려주거나, 휴대폰으로 누군가와 열심히 대화를 했다. 창가 테이블에 앉아있던 나는 그들의 소리에 눈을 돌려 신기한 듯 바라본다. 우리 집 앞에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이라도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발걸음을 멈추고 우리 아파트 건물을 올려다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서로 손을 흔들어주기도 한다. 헬렐레 파자마 차림의 내 모습을 깨닫고 '악!' 소리를 질러도 때는 너무 늦고 만다.
그런데, 문제는 밤이었다.
밤이 되면 가끔 음악 소리, 말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처음엔 남편이 동영상 볼륨을 올려놓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 방 창 바로 밑, 살짝 솟은 턱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걸터앉아 음악도 듣고 쉬기도 했던 것이다. 특히, 일을 마친 오후나 주말 밤이면 사람들은 그곳에 삼삼오오 모여 웃으며 잡담을 하곤 한다.
밤엔 소리의 울림이 낮과 다른 법이다. 그 웅장함에 본의 아니게 나도 그들의 대화에 끼곤 했다. 물론, 내 말소리는 묵음처리된 상태로.
어느 금요일 밤 두 시간이 넘게 떠드는 소리에 시달린 나는 아파트 관리인에게 이 사실을 문자로 알렸다. 아파트 오피스에 리포트하겠다는 관리인의 답이 곧 왔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 변화가 없었고, 사람들은 여전히 내 방 창 앞 혹은 아래에서 머물다 가곤 했다.
관리인이 리포트하는 걸 잊어버렸나, 한번 더 말해야 하나 생각하던 주말 저녁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친구인 듯 보이는 남녀 셋이 턱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들은 휴대폰에서 나오는 힙합 음악을 배경 삼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영어가 아닌 그들의 고향에서 쓰는 말 같았다. 그리고 그들은 몹시 행복해 보였다.
그렇게 그들이 고향의 언어로 이야기에 열중해 있는 동안 나는 쓰다 만 글을 썼다. 그들의 말소리가 전처럼 시끄럽거나 성가시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누구나 지나다닐 수 있는 길가 아파트. 내 방 아래엔 사람들의 쉼터가 있다. 그들은 그곳에서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통화를 하기도 하며 지친 몸을 달래기도 한다.
그들을 위한 의자는 놔줄 수 없더라도 그들을 쫓고 싶진 않아 졌다. 그들의 발길이 머무는 곳 가까이 내가 있다는 게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산다는 건 마음을 넓히는 걸 배워가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