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못 하게 된 남자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며 노래를 흥얼대던 남자는 문득 자신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말을 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입만 벙긋거려질 뿐이었습니다.
깜짝 놀란 남자는 이 병원 저 병원 다 다녀봤으나 원인을 모르겠다는 말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남자는 회사 일을 하기 위해 수화를 배우고, 통화 대신 문자와 이메일로 사람들과 소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남자는 가슴 한구석에 쌓여가는 답답함 때문에 밤마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숱한 밤을 뒤척이던 그는 마침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만큼 근사한 글이 써지지 않아 괴로웠습니다.
남자는 하고 싶은 말을 그저 편하게 글로 옮겨보자 생각했습니다.
처음엔 두 글자를 써놓고 지웠다가 그다음엔 낱말 세 개, 그리고 그다음엔 문장 한 줄... 그렇게 남자는 겨우 한 편의 글을 완성했습니다.
몇 편을 더 쓰고 나서 남자는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남자는 점점 글쓰기가 재미있어졌습니다.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독서도 꾸준히 하고, 글감을 찾으려고 주변을 세심하게 살피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전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습니다.
남자는 자신의 글과 어울리는 그림도 직접 그려보았습니다. 영감 받은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사진도 찍었습니다.
사람들은 남자의 글을 좋아했습니다. 한 출판사에서 출간 제의를 받은 남자는 자신의 이름으로 책도 내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책을 읽고 감동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다음 책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이제 남자는 유명한 작가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글을 사랑하고 그를 존경했습니다.
남자는 행복했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답답함이 남아있었습니다.
말을 못 하는 답답함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고 나서도 여전히 남은 먹먹함의 이유를 알 길이 없었습니다.
생각다 못해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닌,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이 아닌 자기 자신을 향해 글을 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는 자신의 마음속 깊고 깊은 곳에서 상처를 발견했습니다.
다른 것들에 가려지고 묻혀 작게만 보이던 그 상처는 가까이 다가가보니 매우 컸습니다. 상처에서는 지금도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왜 지금까지 몰랐을까, 남자는 자신의 가슴을 쿵쿵 치다가 이내 부드럽게 쓸어주기 시작했습니다.
깊고 깊은 상처에, 잊고 있던 절절한 아픔에, 남자는 밤새도록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음날 아침 여느 때처럼 커피를 만들며 노래를 흥얼대던 남자는 문득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남자는 얼른 목에 손을 갖다 대고는 아, 아, 마이크테스트처럼 소리를 내보았습니다. 틀림없는 자신의 목소리였습니다.
너무나 그립던 자신의 목소리를 듣자 남자의 눈에서는 다시 뜨거운 눈물이 흘렀습니다.
말을 잃었던 대신 글을 찾게 된 그는 이제 예전과 다른 새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 마디의 말, 한 문장의 글이 얼마나 소중한지 전율이 일었습니다.
남자는 세상 모든 말 못 하는 존재를 위해 그들의 마음을 글로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게 자신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 남자는 알았습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서는 남자의 등 뒤로 첫눈을 안은 바람이 조용히 지나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