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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Oct 21. 2023

이야기의 계절

나는 이야기가 좋다. '이야기'란 단어도 좋고 이야기를 듣는 것도,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다.

어릴 땐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가 제일 편안하고 행복했다.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옛날이야기나 어른들의 뜻 모를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조곤조곤 말소리를 자장가 삼아 한 꺼풀 두 꺼풀 졸음이 눈 위에 드리워지던 그 기분도 잊을 수가 없다.

명절에 가족이 모두 모이면 나보다 나이가 몇 살 위인 친척 언니들은 하나같이 만담꾼이 돼야 했다. 나를 비롯한 내 또래 아이들은 따끈한 아랫목에 올망졸망 모여 담요 속에 다리를 묻고 침을 꿀꺽 삼켜가며 이야기를 듣다가, 엉엉 울기도 하고 깔깔 웃기도 했다. 우리가 그러고 있는 사이 어른들의 바쁜 솜씨가 빚어낸 음식 냄새가 방문 틈으로 솔솔 새어들었다. "밥 먹어라!" 소리에 잠시 흩어졌던 우리는 왁자지껄 식사 후 밥상을 물리고 이내 다시 모이곤 했다.

무서운 이야기에 누군가 소리를 지르고 울면 어른들은 우리 방을 들여다보시며, "이야기 너무 좋아하면 이담에 가난하게 산다"라고 말씀하셨다. 이야기를 좋아하면 왜 가난해지는지, 어린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이야기를 좋아하는 마음을 돌릴 수가 없어 그냥 상관하지 말자고 생각했었다. 어린 시절 부려본 하찮은 고집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 친구가 제일 부러웠다. 맛깔스러운 재담은 인기를 불렀기 때문이다. 친구를 많이 갖고 싶었던 나는 여기저기서 들은 이야기를 기억했다가 친구들에게 들려주기도 하고, 가끔 내가 지어낸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이야기 끝머리에 "뻥이야!"를 외치면 심각하게 듣고 있던 아이들 표정이 금세 웃음범벅 반, 야속함 반으로 바뀌던 순간은 이제 추억이 되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나는 이야기가 좋다. 책도 좋고 영화도 좋고 드라마도 좋다. 남들이 사는 이야기, 남의 이야기는 그중 단연 일 순위다.

여럿이 함께 있다 화장실 가기가 무서운 건 달걀귀신 때문이 아니라 뒷담 유령 때문이다. "나 화장실 갈 건데 너네 내 욕할 거지?" 하며 쉽게 자리를 못 뜨는 친구에게 참으면 병 되니 얼른 다녀오라 말하고는 방심한 자의 등 뒤로 회심의 미소를 날린다. 물론 모두가 다 아는 장난이다.

그러나 언젠가 내가 속했던 그룹에서 남의 이야기가 악성으로 흘러 편이 갈리고 급기야 탈퇴자가 생기는 걸 보며, 이건 아니지 생각했었다. 악의를 품은 이야기의 파괴력이 얼마나 큰지 경종을 울려준 일이었다.

타인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심리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궁금함이 그 바탕이 아닌가 싶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살까 하는 호기심은 사람의 자연스러운 마음일 거다. 물론, 단순한 호기심을 떠나 누군가를 폄훼하기 위한 목적을 갖게 된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그런 게 아니라면, 누구나 다른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가치관에 대해 궁금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궁금함은 인간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다.

그런 마음이 쌓이고 모여 픽션이 되고 문학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혹은 논픽션 장르나 다큐멘터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장되고 발전해 왔을 것이다.

음악과 미술과 스토리는 인류 역사와 떨어질 수 없다. 그중에서도 스토리는 인생 자체다. 우리 삶이 곧 이야기이고 시이고 서사이기 때문이다.


옛날 어른들의 '이야기 좋아하면 가난해진다'는 말을 '이야기를 좋아하면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다'로 바꾸고 싶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복음 5:3)"라는 성경구절처럼,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언제나 진실을 갈구하고 마음의 양식을 구하는 열린 사람들일 것이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늘 마음을 채울 준비를 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이들을 통해 이야기는 번영의 씨앗이 될 게 분명하다.

남의 이야기가 궁금하던 나는, 그래서 언제나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이던 나는 이제 나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이야기'란 말만 들어도 설레던 마음으로 어느새 나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가을빛으로 물들어 가는 나뭇잎처럼, 제법 두터워진 사람들의 외투처럼, 짙고 풍성한 이야기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글로 쓰인, 영화에 나오는, 그리고 사람들의 목소리로 울리는 이야기들이 한없이 사랑스러운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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