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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Nov 08. 2023

들어봐요, 소리를

"아, 또야!"

한참 헤매고 있던 꿈나라 스토리가 단번에 날아갈 정도로 대단한 위력이었다.

뛰뛰빵빵, 한 번은 길게 한 번은 짧게 연이어 울려대는 강렬한 소리. 리듬도 멜로디도 부재한 각기 다른 경적소리가 이른 아침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채 눈도 못 뜨고 몸을 일으켜 블라인드를 젖혀 보았다. 길 한복판에 거대한 물류운반 트럭이 비상등을 켠 채 떡하니 서 있다. '비상등은 켜서 뭐 해, 얼른 비키기나 하라구!', 자동차 경적들이 고함을 친다.

잠시 후 근처 어딘가에 물건을 배송하고 나타난 트럭 기사는 늘 겪는 일이라는 듯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곤 차를 출발시킨다. 빵빵대던 차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줄줄이사탕처럼 트럭을 따라 길을 빠져나갔다.

다시 고요함을 되찾은 아침 거리 저만치 못다 이룬 내 잠이 날아가고 있었다.


예전 서버브에 살 땐 새아침 맨 처음 들려오는 소리가 새들의 지저귐이었다. 새벽 네 시쯤부터 우리 집 앞 나무에 모인 새들은 청아한 소리로 세상을 깨우곤 했다. 아직 캄캄한 하늘을 향해 부르는 그들의 노랫소리에 응답하듯 조금씩 밝아 오던 창 밖이 신기했다.

도시로 이사 온 후 아침에 들려오는 소리는 눈치 없이 울려대는 자동차 경적소리나 모터사이클 소리, 학교 가는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다. 정오쯤 되면 도시 소음을 뚫고 교회 종소리가 아련히 들려오기도 하고, 밤엔 가끔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서 기차가 울리는 기적소리가 나기도 한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어느새 도시의 다양한 소리들에 익숙해 간다.


첫째는 어릴 때 큰 소리를 무서워했다. 공연이나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면 귀를 막고 불안해했다. 언젠가 놀이공원에 갔는데, 마침 옛날 죄수들이 받던 형벌과 감옥을 재현해 놓은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문제는, 전시관에 울리던 "으으..." 하는 마네킹 죄수들의 신음소리가 바로 옆 화장실까지 들려온다는 것이었다. 질겁하는 아이를 달래 화장실에 데리고 가느라 진땀을 뺐다. 큰 소리나 낯선 소리를 무서워하던 첫째는 그 후 여러 가지 경험이 쌓인 덕인지 자연스럽게 공포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하마터면 옷에 실수를 할 뻔 한 '죄수들의 신음소리 사건'은 아직도 기억난다고 한다.

나도 어릴 때 첫째처럼 소리에 예민하고 불안했다. 반복되는 소음이나 요란한 소리에 나도 모르게 민감해지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예전엔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왠지 슬퍼지곤 했다.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아 키우면서는 더 이상 울음소리에 슬프지 않았다.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의사소통 수단임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모스 부호가 문자가 되듯, 그들의 울음소리는 나를 찾는 말소리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워 왔다.


몬테소리 교사로 일할 때 배운 인상 깊었던 활동 중 하나는 듣기 프로그램이다. 세상의 여러 소리를 들어봄으로써 자아와 내면의 안정감 발달을 돕는 활동이다.

침묵 게임(Silence Game)을 할 때는 실내의 전등을 끄거나 어둡게 하고, 모두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있게 한다. 시간은 아이들의 연령에 따라 조금씩 늘려 갔지만, 한 두 명은 가만히 있지 않고 돌아다니곤 했다. 그러던 아이들이 이 게임에 점점 적응하고 즐기게 되는 걸 보면서 속으로 놀랐던 기억이 난다. 눈을 감고 앉거나 누운 그 조용한 공간에서 아이들은 무슨 소리를 들었을까. 그들만의 세상을 살짝 들여다보고 싶었다.

음악을 들으며 걷는 리스닝 워크 시간에는 음악을 바꿔 틀어주며 각자 떠오르는 걸 표현해 보자고 했다.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아이, 동물의 몸짓을 흉내 내는 아이, 그저 걷기에 집중하는 아이도 있었다. 소리를 자신의 몸에 담아내느라 집중하는 그들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만약 세상에 소리가 없다면. 누군가 세상의 소리를 모두 거두어 커다란 항아리 속에 담고 꽁꽁 봉해버린다면 어떨까.

소리가 있어 혼자여도 외롭지 않을 수 있다. 때로 정적 속에 머물게 되더라도 다시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희망에 두렵지 않을 것 같다.

어릴 때 아빠가 틀어놓던 음악소리, 친구들과 이어폰으로 한쪽씩 나눠 듣던 팝송, 툭하면 터지던 그들의 깔깔 웃음소리는 지금도 생생하다. 늦가을 낙엽이 바스락대는 소리와, 겨울 아침 문을 열고 밤새 쌓인 눈에 첫 발을 딛는 소리는 계절마다 늘 새롭다.

대학 때 한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잊히지 않는 말이 있다. 그 어떤 악기음이나 기계음도 사람의 소리만큼 아름다울 수 없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사람의 목소리라는 것을, 교육 현장에서도 내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나는 늘 떠올렸다.

이야기를 들려주던 엄마 아빠의 목소리, 그리고 나에게 들리는 내 목소리를 우리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 소리가 있음이 즐겁다. 탁하고 흉한 소리 말고, 아름다운 소리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 누구도 혼자가 아님을 소리가 알려주길, 그리하여 누구도 외롭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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