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선생님과 나

by Anna Lee

오랜만에 '호로비츠를 위하여(2006)'라는 영화를 다시 보았다.

음악을 듣다가 문득 이 영화가 생각나서였다. 이번까지 세 번쯤 본 것 같다.

이 영화는 절대 음감을 지닌 천재 소년과 피아노 학원 선생님의 이야기이다. 가난과 학대로 힘든 시간을 보내던 경민은 자신도 모르는 힘에 이끌려 피아노 학원 주변을 맴돌게 된다.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고 조그만 동네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는 지수는 유학 후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된 친구를 부러워하며 절망한다. 우연히 경민의 천재성을 발견한 지수는, 경민의 재능을 이용해 자신의 열등감을 극복하고 친구 못지않은 유명세를 누릴 꿈을 꾼다. 그러나, 할머니마저 잃고 고아가 된 경민을 지수는 독일로 입양시켜 피아노를 계속 배울 수 있게 해 준다. 어느새 경민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지수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경민의 재능을 이용하려던 욕심을 버리고, 경민이 자신보다 실력 있는 선생님에게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훗날 경민은 지수의 바람을 잊지 않고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된다.


벌써 오래전 영화라 줄거리나 구성의 세련미는 다소 떨어지지만, 나는 이 영화가 참 좋다. 배우들의 연기도 자연스럽고,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도 곱씹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것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영화를 보면서, 오직 어린 제자의 앞 길만을 위해 눈앞에 보이는 자신의 이익을 버린 선생님의 마음을 헤아려 보게 된다.

이 영화가 내 마음을 그토록 울렸던 또 다른 이유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옛날 피아노 학원 풍경 때문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음악을 좋아하던 부모님은 동네에 피아노 학원이 생기자 나를 학원에 보내셨다.

피아노 학원은 내게 학교 다음으로 큰 사회적 환경이자 네트워크였다. 학원에서 다른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도 만날 수 있었고, 학교 선생님과 결이 다른 선생님들도 접할 수 있었다. 피아노 경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연주곡을 고르고 열심히 연습했던 과정도 지금 생각하면 값진 경험이었다.

음악을 좋아하던 나는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즐겁게 학원에 다녔다. 학원 친구들과 노는 것도 재미있었고, 학교 선생님들보다 훨씬 친절한 피아노 선생님들 옆에 꼭 붙어서 피아노를 배우는 것도 좋았다.

피아노 선생님한테서 그리운 엄마를 느끼는 영화 속 경민처럼, 나도 예쁘고 다정한 선생님이 나만 바라봐 주는 레슨 시간이 매일 기다려졌다. 밤에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할 때면 피아노 선생님이 보고 싶었다.


우리 학원에는 피아노가 다섯 대 정도 있었고, 진도에 따라 초급반, 중급반, 고급반으로 나뉘어 각각 다른 선생님한테 지도를 받았다.

학교보다 훨씬 덜 엄격한 분위기를 간파해서였는지, 나는 학원만 가면 떠들고 다른 아이들의 이론 공부를 방해하기도 했다. 나보다 진도도 빠르고 잘 치는 언니들이 부러워, 내 진도보다 앞선 곡들을 혼자 연습해 가서 선생님을 곤란하게 만들기도 했다. 치라는 내 곡은 하나도 안 치고 엉뚱한 곡을 치겠다고 억지를 쓴 것이다. 진도 나가는 재미,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직접 피아노로 연주할 수 있게 되는 게 신기한 나머지 의욕이 과했던 것이다. 그래도 선생님은 한숨 한번 푹 쉬고는 두 곡 다 가르쳐 주시곤 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될 무렵, 원장 선생님은 내게 고급반에 들어가기를 권하셨다.

고급반을 가르치던 선생님은 우리 학원에서 무섭기로 유명한 선생님이었다. 음대에 지원하려는 중학생, 고등학생 언니들이 주로 고급반 레슨을 받았는데, 나는 레슨을 받다가 울면서 나오는 언니들을 자주 보았다. 원 선생님이라 불렸던 고급반 선생님은 레슨 도중에 화가 나면 학원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피아노 책을 집어 바닥으로 내동댕이 쳤다. 원 선생님이 한 번씩 화를 낼 때면 학원 전체가 갑자기 찬 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지며 모두의 시선이 원 선생님의 레슨 방으로 쏠리곤 했다.

원 선생님에게 배우던 언니들이 아무리 심하게 야단을 맞아도 누구 하나, 원장 선생님조차 끼어들지 못했다. 나는 원 선생님이 전직 명문고 음악 선생님이었으며 음대에 많은 학생을 입학시킨 능력자라는 말을 다른 아이들한테서 들었다. 음대에 들어가고 싶은 학생이라면 누구나 원 선생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했고, 학부모들에게도 절대적 신임을 얻고 있는 학원의 보물 같은 존재가 원 선생님이었다. 그 막강한 권력 앞에 아무도 토를 달 수 없었던 것이다.


원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는다는 건 곧 피아노를 전공할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므로 나에겐 약간의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는 사이, 나를 가르쳐주던 선생님이 휴가를 가게 되었고, 나는 원 선생님에게 잠깐 맡겨졌다. 그리고 나에게도 언니들한테 일어났던 일이 일어났다.

어느 날 나를 가르치던 원 선생님이 크게 화를 내셨다. 연습을 안 해 간 것도, 버벅댄 것도 아니었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그날 내가 왜 꾸중을 들었는지 잘 모른다.

피아노를 치는 도중 선생님이 갑자기 꽥 소리를 지르셨고, 나는 그대로 얼어버렸다. 나와 원 선생님에게 쏠리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둘째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더 이상 피아노를 칠 수 없었다. 어떻게 집에 왔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난다.


그 무섭고 경악스러웠던 기억이 다시는 피아노를 못 치게 될 정도의 영향을 내게 주진 않았지만, 나는 원 선생님한테 다시는 레슨을 받고 싶지 않았다. 우리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학원을 쉬겠다고 엄마한테 말했더니, 엄마는 선생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몇 번 남지 않은 동안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

그래도 나는 기어이 학원을 몇 번 빼먹은 뒤, 연습을 하나도 안 한 채 레슨을 받으러 갔다. 원 선생님은 내가 피아노를 치는 동안 가만히 보고만 계시더니, 예상과는 다르게 걱정스러운 얼굴로 "집에 무슨 일 있니?" 하고 물으셨다.

불 같이 화를 낼 게 뻔한 선생님 앞에 그토록 뻔뻔할 수 있었던 건 반항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피아노가 치기 싫었던 걸까. 그날의 내 마음을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왜 연습을 하나도 안 해 갔었는지 뚜렷한 이유를 모르겠다.


원 선생님과의 마지막 수업을 그렇게 마치고, 그 후 나는 몇몇 선생님들을 더 만나며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피아노를 쳤다. 음대에 가지는 않았지만, 한번 배우면 일생 잊을 리 없는 피아노를 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원 선생님의 지도 방식이 그 분만의 애정과 열정을 담은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방식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설령 선생님의 마음을 알았다 해도, 나는 선생님의 지도 방식을 좋아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학교 때 무서웠던 선생님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무섭게 가르쳐주는 선생님이야말로 진심으로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란다. 어른이 되고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의 '무서움'은 누구를 위한 걸까. 누군가의 무서움과 권위에 눌려가며 공부하는 것만큼 배움의 즐거움을 앗아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아이들은 상대방이 진심으로 대하면 그들 특유의 열린 마음으로 그 사랑을 느끼고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나는 무서웠던 선생님보다 나를 위해 당신의 시간과 노력을 아낌없이 쏟아부어 주셨던 선생님이 더 기억에 남는다.

무서움의 뒤편에 있는 선생님의 사랑을 헤아려야 하는 건 내게 어려운 일이었지만, 같이 있으면 기분 좋은 선생님의 미소와 농담은 그대로 내 몸과 마음에 흡수되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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