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 이야기

by Anna Lee

어릴 때 엄마와 함께했던 기억이 별로 없다.

엄마 품에 안겨본 기억도, 엄마와 재미있는 시간을 같이 보낸 기억도 떠오르지 않는다. 엄마에 대한 이미지는 잔소리, 신경질, 핀잔 등이 대부분이다.

엄마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느꼈던 나는, 엄마가 드물게 내게만 해준 것들을 세상에서 가장 소중히 여겼다. 초등학교 때 엄마가 사준 야구공 모양의 지갑을 아끼느라 한 번도 쓰지 못하고 대학 때까지 책상 서랍 속에 간직하기도 했었다.


엄마와 관련된 가장 좋은 기억은 '인어공주' 이야기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던 것 같다. 매일 밤 잠들기 전 엄마가 동화를 읽어 주었는데, 그중 하나가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였다. 어린아이에게는 좀 긴 이야기라, 엄마는 매일 조금씩 읽어주었다.

다른 동화와 달리 '인어공주'는 왠지 내 마음을 흔들었다. 잠을 잘 들게 하기 위해 책을 읽어주었을 텐데, 내가 잠들지 않고 오히려 더 말똥말똥해지자 엄마는 '인어공주'를 끝으로 더 이상 책을 읽어주지 않았다.

'인어공주'의 무엇이 어린 내 가슴을 그토록 아리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왜 그때의 감정이 지금도 이토록 생생한지 모를 일이다.


유독 기억에 남는 장면은 인어공주가 사람이 되기 위해 마녀를 찾아갔을 때이다. 마녀는 인어공주에게 해뜨기 전 바닷가에 나가 자신이 준 물약을 마시라고 한다. 그러면 지느러미 대신 사람의 다리가 생기지만, 대신 걸을 때마다 칼에 베이는 듯한 고통을 느끼게 될 거라고 한다. 그리고 인어공주는 마녀에게 혀를 내어주어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좀 무섭고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장면이다.

그리고 이야기의 마지막도 잊을 수가 없다. 인어공주는 언니들이 가져다준 칼을 들고 왕자에게 다가가나 차마 죽이지 못하고 해가 막 떠오르기 시작하는 바다로 칼을 던진다. 그리고 자신도 바다에 몸을 던져 물거품이 된다. 나는 그 장면을 들으며 엉엉 울지 않고 어른처럼 흐느껴 울었다. 인어공주가 걸을 때마다 느꼈을 아픔이 내 가슴으로 옮겨온 것 같았다.


공기의 정령들이 인어공주를 하늘나라로 데리고 가서 불멸의 영혼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었다는 게 원작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러나 영혼도 없이 죽어 물거품이 되어버린 인어공주의 마지막을 들으면서도 그것이 끝이 아닐 거라는, 착한 인어공주는 반드시 행복해졌을 거라는 상상을 했었다. 그러니 그때 원작의 마지막 이야기를 몰랐어도 괜찮다.


인어공주가 물약을 마시던 바닷가의 떠오르는 해와, 칼을 던져버린 바다의 붉은 해가 머릿속에서 오버랩되며 그 슬픔이 만져질 듯하다.

가족도 버리고 육체적 고통쯤은 목소리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녀의 사랑은 비록 '둘이 결혼해서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대'로 끝나진 않았지만, 나에게 평생의 긴 여운을 남겼다.

사랑은 지독하다.


little-mermaid-disney-800x400.jpeg 사진 출처 ITM


오래전 남편과 데이트를 하며 디즈니의 '인어공주' 애니메이션을 극장에서 보았다. 아름다운 음악과 영상, 디즈니다운 해피엔딩이 '인어공주'만 떠올리면 슬퍼지던 내 마음을 조금은 위로해 주었다.

그러나 나는 내 어린 시절 기억 속에서 물거품이 되어버린 인어공주를 여전히 잊을 수 없다. 그때 느꼈던 슬픔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그건 엄마의 목소리로 들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슬픔이 엄마를 통해 내게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어공주'는 흔한 이야기가 아닌 나만의 이야기가 된 것이다.


인어공주가 사람이 되어 느꼈을 아픔처럼 우리의 삶도 때로 아프다.

인어공주처럼 모든 걸 버려도 괜찮은, 목숨보다 소중한 사랑을 삶의 아픔 속에서 느낄 수만 있다면, 떠오르는 해를 슬픔이 아닌 기쁨으로 맞을 수 있을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