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나는 아픈 데가 참 많은 아이였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거나 마음이 불편해지면 이내 머리나 배가 아팠다. 통증은 목이나 다리, 심지어 허리까지 번져갔다.
학교에 가기 싫은 날은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배가 아프고 어지러웠다. 아파서 학교에 못 가겠다고 말하다 엄마한테 한바탕 혼나고는 먹기 싫은 아침밥을 꾸역꾸역 먹다가 토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지금도 그 아픔이 기억날 정도니 꾀병은 아니었다. 마음이 아프면 몸도 따라 아픈 것 같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친구가 아프면 나도 똑같이 아픈 것 같아 괴로웠다.
감기에 걸리기만 하면 늘 목이 붓고 아팠던 나는, 때마침 편도 수술을 받은 같은 반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그 무서운 수술을 받게 될까 봐 며칠을 잠까지 설쳐대며 걱정을 했었다.
한 번은 친구가 밤에 잘 때마다 귀에 환청이 들린다고 말하는 바람에 나도 그럴까 봐 신경을 쓰다가, 결국 환청을 듣는 꿈을 꾸고 말았다.
예민하고 요구가 많고 몸까지 약했던 나는 무척 키우기 힘든 아이였을 것이다.
나의 첫째 아이는 성격이 나와 완전히 달라서, 가끔 그 아이를 잘 모르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3년 동안, 학부모 상담에서 담임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아이가 친구와 싸우고 나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잊고 다시 잘 놀아요."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선생님들에게서 빠짐없이 들었던 말이다.
"그게 꼭 좋은 걸까요, 선생님?" 결국 3학년 담임 선생님께 이렇게 묻고 말았다. 아이가 너무 눈치가 없거나 둔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아이는 나와 꼭 닮아서 예민하고 호기심이 많았다. 같은 걸 여러 번 묻고 확인하느라 나를 괴롭혔다. 아이의 말을 잘 들어주고 괜찮다고 말해주면 그제야 안심을 하곤 했다. 곧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어 질문을 계속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이는 걱정이 생기거나 몸이 아플 때 나를 믿고 안전 기지로 느끼는 듯했다.
나와 닮은 둘째 아이를 키우면서, 나의 엄마도 내가 둘째 아이를 대하듯 나를 대해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러 번 생각했다. 작은 내 몸과 마음을 불안에 온통 잠식 당해 힘들어했을 때 엄마가 나를 안아주며, "괜찮아" 한 마디만 해 주었다면 나는 훨씬 안도했을 것이다.
어른이 된 지금도 마음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 가끔 여기저기 기웃거릴 때가 있다. 그럴 땐 마음의 고향을 잃어버린 채 정착할 곳을 찾아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것만 같다.
언젠가부터 엄마는 내가 아프다고 하면 의심하고 짜증부터 냈다. "뭐, 또! 어디가 아픈데. 너 괜히 그러는 거 아냐?"
그래서 나는 몸이 아플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엄마, 미안해. 그런데 나 진짜 아파."
언젠가부터 나는 불편하고 아픈 것에 대해 위로받기를 포기하고, 엄마한테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아픈 것보다 엄마가 속상해하는 게 더 마음이 쓰였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엄마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엄마가 어디 안 가고 내 옆에만 있어 주었으면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어느 날 밤, 아빠 품에서 잠들었던 나는 잠에서 쉽게 깨어나지 못하고 몸을 많이 떨며 헛소리까지 했다고 한다.
놀란 부모님은 나를 병원에 데리고 가 여러 가지 검사를 받게 하셨다. 피검사, 뇌파 검사, 엑스레이, 골수 검사까지, 일곱 살 인생이 겪을 수 있는 고통의 끝판왕이었다.
힘들어하는 내가 가엾어 아빠가 예쁜 인형을 하나 사주었다. 나는 인형을 안고 의지하며 날카로운 주삿바늘을 견뎌야 했다. 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갈 때마다 내 옆에 엄마가 없었기 때문이다. 며칠에 걸쳐 건강 검진을 받는 동안 엄마는 단 한 번도 내 옆에 있어주지 않았다.
무뚝뚝한 아빠와 둘이 병원에 갔던 것도,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여 검사를 받아야 했던 것도 내게는 슬픔과 고통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부모님의 염려와 보살핌으로 다행히 나는 건강하게 자랐다.
타고난 예민함은 거의 그대로이지만 적당히 조절하며 살아갈 수 있고, 살면서 예민함이 오히려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어쩌면 나는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픈 아이였는지도 모른다.
외로움을 타거나 공허함을 느낄 때, 마음이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을 본다.
"괜찮아" 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대신 내가 나 자신을 안아주며 "괜찮아"하고 말해본다.
그러면 내가 나인 것이 참 괜찮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