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갓집 가는 날

by Anna Lee

숨을 거두기 직전 약 30초 간 플래시백을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그때까지의 삶이 마치 영화의 장면처럼 머릿속을 지나간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어떤 장면들이 떠오르게 될까 생각해 보았다.


해마다 봄이 오면 생각나는 어릴 적 외가의 앞마당.

샐비어와 진달래가 활짝 피고 강아지 보비, 줄리가 뛰놀던 곳.

답답한 우리 집에서 벗어나 봄 냄새를 실컷 맡을 수 있어서, 그리고 엄마 아빠가 외가에만 가면 나한테 잔소리를 안 해서 나는 외가에 가는 게 좋았다.

큰길에서 골목으로 접어들어 삐뚤빼뚤한 보도블록을 밟으며 걸어가면, 네 번째쯤의 파란 대문 집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사시는 곳이었다.

문을 열면 강아지 두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마중 나오고, 앞마당에 핀 꽃들의 향기가 흙냄새에 섞여 났다.

작은 나에게는 현관의 턱이 너무 높아서, 힘겹게 기어올라가 걸터앉은 다음 신발을 벗던 기억이 난다.


나를 제일 반겨 주고 예뻐해 주신 분은 단연 할머니였다. 우리가 가면 늘 부엌에서 요리를 하다 나오셔서 할머니한테서는 고소한 냄새가 났다.

다정하다기보다 오히려 무뚝뚝한, 그리고 굉장히 외향적이셨던 할머니의 마음속 가장 약한 부분은 언제나 큰 손녀인 나였다.

탯줄을 목에 감은 채 체중 미달로 약하게 태어난 나를 보고 주위에서 내가 얼마 못 살 거라고들 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런 말들을 단칼에 자르며, "태어나자마자 조그만 것이 어찌나 제 입을 쪽쪽 빨아대던지, 저것이 살아 보겠다고 저러는구나 했지. 잘 클 거야, 두고 봐" 하고 큰소리를 치셨다 한다. 내가 어른이 되어서도 할머니는 이 말씀을 하고 또 하며, 내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잘 자란 것을 못내 대견스러워하셨다.


엄마가 나를 외가에 자주 맡긴 덕에, 나는 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었다. 할머니가 어디나 나를 데리고 다니셔서 나를 모르는 할머니 친구분이 없을 정도였다.

집에서는 혼나고 잔소리를 듣고 간섭을 받았지만, 외가에 가면 할머니는 내가 하는 모든 일을 무조건 지지하고 허락하셨다.

안방 다락은 온갖 물건들로 가득했다. 까치발로 서야 가까스로 다락 문턱에 코를 붙이고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복잡한 냄새가 나던 그 다락방이 나에게는 얼마나 신비스러웠는지 모른다. 할머니를 졸라 다락에서 하얀 앞치마를 꺼내 허리에 두르고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아가씨 놀이'를 했다. 내 키보다 길어서 질질 끌리는 앞치마를 입으면 마치 예쁜 드레스를 입은 아가씨가 된 기분이었다.

살면서 결정적인 순간들에 - 몸이 아팠을 때, 학교 입학식과 졸업식 날, 대학 입시 치르던 날 - 내 옆에는 늘 할머니가 계셨다.


어디나 빌런은 있다.

나와 열 살 남짓 차이 나는 막내 이모와 외삼촌은 언제나 나를 괴롭혔다.

한 번은 삼촌이 나를 데리고 할아버지 심부름을 갔다가 동네 공터에서 친구들과 공을 차고 놀았다. 나는 좀 떨어진 곳에 앉아 삼촌이 다 놀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는데, 겨울이라 너무 추워서 이가 닥닥 부딪쳤다. 꽁꽁 얼어붙어 들어온 나를 보고 할아버지는 삼촌을 엄청나게 혼내셨고, 나는 감기에 걸려 죽다 살아났다.

그런 일은 삼촌도 어릴 때니 있을 수 있었다 쳐도, 삼촌은 늘 나를 놀리고 울리고 재미있어했다. 어쩌다 포도 씨를 삼켜버린 나한테, 뱃속에 들어간 포도 씨에 싹이 나고 잎이 나고 점점 자라서 내 입 밖으로 나뭇가지가 튀어나올 거라고 삼촌이 놀리는 바람에 나는 무서워서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어른들이 아무리 그게 아니라고 말해줘도 나는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로 한동안 시달렸다.

막내 이모는 늘 나를 따돌리고 핀잔을 주었다. 나도 질세라 '쪼다 이모'라고 놀렸는데, 쪼다 이모는 내가 어른이 돼서까지도 따돌리고 핀잔주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모, 삼촌은 그때 사춘기 틴 에이저였다. 어린 조카가 예뻐 보이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자신보다 어리고 약한 존재를 보호하고 보살펴 주기는 커녕, 놀리고 괴롭히는 대상으로 삼았던 건 인간에 대한 예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이모와 삼촌의 짓궂은 장난에도 나는 할머니 치맛폭 안에서 늘 행복했다.


이맘때가 되면 앞마당에 빨간 샐비어 꽃이 피었다. 마당을 산책하는 할아버지를 따라나서면 강아지 두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나를 쫓아다녔다.

사촌동생이랑 둘이서 마당에 핀 샐비어 꽃을 쪽쪽 빨아먹던 기억이 난다. 달달한 꿀을 먹는 재미와 꽃 향기에 흠뻑 젖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당을 쏘다녔다.

태어나면서 아파트에서만 자란 나는 마당과 화단과 나무가 있는 외갓집이 참 좋았다.


나중에 내 생명이 다하고, 만약 영원히 한 순간에만 머무르라고 한다면 나는 기꺼이 어려서 놀던 외가의 마당에 갈 것이다.

행복을 냄새로 맡을 수 있다면 그건 어린 시절 외가에서 맡았던 봄 꽃 향기였을 것이다.

기쁨이 슬픔을 이기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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