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나는 스포츠 걸(Sports girl)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스포츠 걸과는 거리가 먼 스토리 걸(Story girl)이었다고 하는 게 맞다. 나가서 뛰고 구르는 것보다 안에서 읽고 이야기하는 게 더 좋았기 때문이다.
체격이 작아 힘이 달리고, 그렇다고 민첩한 편도 아니었던 나는 달리기도 느리고 구기 종목도 잘 못했다.
여섯 명이 동시에 출발해 뛰는 달리기에서 나는 겨우 꼴찌는 면한 4등 아니면 5등이었다. 반에서 키가 제일 작아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1번이었던 나는 뛰는 동안 매번 자리싸움에서 밀렸다. 공 멀리 던지기는 더 가관이었다. 왜 자꾸 내가 던진 공은 코 앞에 떨어지거나 심지어 똑바로 나가지도 못하고 옆으로 새는지 체육 선생님만큼이나 나도 참 답답했다.
이래저래 체육 시간은 다른 아이들에겐 좁은 교실을 벗어나 신나는 시간이었지만, 나한텐 있던 교실로 어서 빨리 회귀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던 시간이었다.
한 번은 학교가 끝나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다가 어디선가 날아온 공에 맞았다. 어깨 부분을 가격한 공은 날아온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튀어올라 내 머리를 한번 더 때린 후 땅에 떨어졌다. 아이들이 다가와 미안하다며 나를 살폈지만, 내 손에 들려있던 책가방이며 도시락 가방은 이미 운동장 흙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창피하고 화도 나서 아픈 건 둘째였다. 그 일 이후 갑자기 공이 무서워져 체육시간에 툭하면 하던 피구도 싫어졌었다. 차라리 빨리 공을 맞고 나가는 걸 택했다.
운동과 관련해 좋은 기억이 별로 없었던 나는 체육시간이나 운동회가 썩 즐겁지만은 않았다.
초등학교 1학년 첫 운동회도 안 좋은 기억을 하나 더 보탠 셈이 되었다.
학창 시절을 통틀어 아빠가 학교에 오셨던 적이 거의 없다.
그 시절 일터에서 바빴던 많은 아버지들이 아이들의 학교 행사에 참여하지 못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아빠는 졸업식과 입학식에도 오지 않았다. 말수가 적고 아주 친한 사람들 말고는 어울리는 걸 별로 안 좋아했던 아빠는 다른 학부모들을 만나야 하는 학교 행사는 질색을 하셨다.
다른 건 몰라도 운동회엔 꼭 오시라고 전날 밤까지 졸랐다. 1학년 순서에 '아빠와 달리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성화에 아빠는 건성으로 알았다고만 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운동회에서 아빠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친한 친구네와 함께 그늘에 돗자리를 펼치고 앉아 김밥과 과일로 점심을 먹으면서도 나는 혹시 아빠가 오지 않을까 속으로 기다렸다. 아빠랑 달리기 순서 때문인지 아빠와 함께 있는 친구들이 많이 보였다.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아빠 언제 와?" 엄마한테 물어도 엄마는 얼버무리기만 했다.
드디어 '아빠와 달리기' 순서가 되었다. 나는 누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이 터질 것 같은 기분으로 아이들 사이에 앉아 있었다. 그때 엄마가 낯선 아저씨와 함께 나타났다.
"이따 달리기 할 때 이 아저씨랑 뛰는 거야, 알았지?"
"아빠는?"
"아빠 대신 이 분이랑 뛰면 돼."
잔말 말고 그냥 뛰기나 하라는 듯 엄마는 그 말만 남기고 사람들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옆에 서 계시던 아저씨가 멋쩍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살짝 웃었다. 그런데 나는 전혀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아빠와는 달리 사회성이 남다른 엄마가 달리기 순서 직전에 한다리 건너 아는 분을 섭외해 오신 것이다. 덕분에 나는 생전 처음 보는 아저씨와 손을 잡고 뛰게 되었다.
"좀 전에 우리 아들이랑 뛰었는데 아저씨 1등 했다. 우리도 1등 하자!" 출발선으로 다가가며 아저씨가 말했다. 1등은 고사하고 아예 뛰고 싶지도 않았던 내 귀에 그 말이 들어올 리 없었다.
"땅!"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아저씨 손에 붙들린 나는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저씨의 뛰는 속도를 쫓아가지 못하고 그만 땅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다.
내 손을 놓치고도 저만치 앞서 달리던 아저씨가 다시 돌아오는 게 보였다. 어디선가 엄마도 나타났다. 나는 얼어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옷은 흙투성이가 되고 신발 한 짝은 어디로 날아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양호 선생님께 가서 깨진 무르팍에 약을 바르며 그제야 나는 엉엉 울었다. 넘어진 데가 아파서가 아니었다.
우리 아빠가 아닌 어떤 아저씨랑 뛰어야 했던 것도, 아저씨가 혼자만 빠르게 뛰어간 것도, 넘어져서 끝까지 뛰지 못했던 것도 모두 서럽고 속상했다.
부모가 되어보니, 아이를 위해 내가 싫든 좋든 뭔가를 해야 하는 순간들이 생겼다. 내가 아닌 아이가 내 인생의 주인공 자리를 떡하니 차지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 나는 불평 없이 기꺼이 주인공 자리를 양보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키도 커지고, 친구들을 통해 요령도 터득한 나는 달리기에서 2, 3등은 거뜬히 해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운동회의 기억은 오래갔다.
그날 아빠랑 같이 뛰었다면, 아빠는 틀림없이 내가 뛰는 속도에 맞춰 주었을 것이다. 아빠랑 함께 만들 수도 있었을 예쁜 추억 대신 쓰라린 기억만 남았다.
그때 내가 원한 건 달리기 1등이 아니라 아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