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바야흐로 졸업 시즌이다.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졸업 가운을 입은 갓 졸업생들을 보면 누구라도 다가가 축하한다고 말해준다.
컬럼비아 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의 반전 시위로 졸업식이 줄줄이 취소되고 있으나, 둘째의 학교는 맨해튼의 한 뮤직홀에서 졸업식을 가졌다. 둘째의 졸업식 중에도 몇 학생이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고 구호를 외쳤다. 별다른 제지는 없었고 박수를 보내는 사람도 많았다.
오랜만에 참석해 보는 졸업식이었다. 이른 아침 비 속에 지하철을 타고 와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설레기만 했다. 드디어 홀 안으로 들어간 나는 웅장한 실내와 흥분에 겨운 사람들의 소곤거림에 다시 가슴이 뛰었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에드워드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에 맞춰 등장하는 수많은 교수들, 그리고 이어진 연설들은 감동의 연속이었다.
올해의 교수상을 받은 저스티스 휘태커(Justice Whitaker)의 연설을 들으며 그가 얼마나 자신의 일과 학생들을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케냐에서 일하다 테러로 세상을 떠난 은사를 기리며 만든 가사로 직접 랩을 할 때는 객석에서 커다란 박수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오래 기억에 남을 장면은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존 배(John Pai)가 연설할 때였다. 그는 1937년 서울에서 태어나 1949년 미국에 왔으며, 둘째가 졸업하게 된 이 학교에서 디자인과 조각을 전공한 후 27세에 최연소 교수가 되었다. 그는 교수로 예술가로 뉴욕 속 한국예술의 발전에 이바지해 왔다. 유머 넘치면서 마음 깊은 곳에 울림을 주는 그의 연설에 모두들 유쾌한 웃음과 공감의 박수를 보냈다.
1974년도 졸업생들이 졸업 50년 만에 후배들을 위해 단상에 올라 축하인사를 전한 것도 가슴 뜨거운 장면이었다.
졸업식 마지막, 새로운 시작의 상징으로 작은 과업 하나가 남았다며 총장은 졸업생들에게 모두 일어나 졸업모자의 테슬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옮기라고 했다. 2초 정도의 고요함이 홀을 감싼 다음 순간 환호성과 박수 속에 "여러분은 이제 졸업생이 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Class of 2024!"라는 총장의 목소리가 울렸다. 졸업모자들이 일제히 공중으로 날아오르고 홀은 온통 환희와 축제의 도가니가 되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나는 압도되었고 벅찼다. 시작부터 끝까지 나는 졸업생의 부모라기보다 그들과 하나였다. 또 하나의 산을 넘은 기분, 둘째의 졸업과 더불어 내 삶에도 새로운 국면이 펼쳐지는 듯했다. 나도 내 마음속 테슬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옮겼다.
졸업을 Commencement라고 한다. '시작'이란 의미다. 서운함보다, 앞날에의 기대와 희망이 앞설 수 있는 이유다. 삶의 모든 게 그럴지도 모른다 ⎯ 끝은 시작이다.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떠날 때 나와 남편, 우리는 객석에 앉은 채로 사진을 찍었다. 우리의 대학 졸업식 날 함께했던 그와 나는 어느덧 중년의 부부가 되어 사진 속에 웃고 있었다.
학교를 마친 둘째에게 더 넓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듯, 아이들의 학교 뒷바라지가 모두 끝난 지금 남편과 내게도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겠지. 그리고 도전은 계속될 거다.
우선은 작은 여행이라도 다녀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