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그거 아니.
창 밖으로 보이는 세상이 내가 방금 맞고 들어온 찬 공기와 달리 그저 따뜻해 보이기만 할 때를. 한겨울에 쏟아져 내리는 환한 햇살을 머금은 사물들이 한없이 포근해 보이기만 할 때를.
몇 분만 지나면 지하철에서 내려 다시금 그 쨍한 차가움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함을 알면서도, 떠오르는 내 안의 온기를 차마 밀어내지 못하는 게으름을.
어릴 때, 아마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이었을 거야. 엄마랑 이모랑 놀이공원에서 커피컵 라이드를 탄 적이 있어. 왜 있잖아, 커피잔처럼 생겨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놀이기구.
어느 날 엄마가 나를 가리키며 이모한테, "아유, 말도 마. 그때 쟤가 얼마나 악을 쓰며 울던지. 태워달라고 떼쓸 땐 언제고. 그때 너랑 나랑 얼마나 민망했니. 다른 사람들 보기엔 영락없이 어른들 재밌자고 애를 억지로 태운 꼴이었잖아" 이러면서 울상을 짓고, 이모는 깔깔 웃고.
그러자 갑자기 잊고 있던 게 생각났어. 알록달록 컵 모양의 놀이기구가 얼마나 매혹적이던지. 그런데 막상 타보니 그 예쁜 놀이기구가 정신없이 도는 게 얼마나 무섭고 세상이 끝나는 것 같던지. 그때 느꼈던 모호한 배신감과 공포가 문득 다시 살아나는 거야. 눈에 보이는 모든 게 빙빙 돌며 제자리를 잃어버린 것 같았어. 그리고 그게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았어. 아아, 그래서 내가 유난히 회전 놀이기구를 무서워했구나, 내 의식 어딘가에 깊이 틀어박혀 있던 그때의 기억 때문이었구나, 알게 됐지.
몇 년 전 프리스쿨에서 일할 때 아이들을 인솔해 현장학습을 간 적이 있어. 농장 안 작은 놀이공원에서 각 팀이 놀이기구 여섯 개씩을 타기로 했지. 그런데 하필이면 거기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회전 라이드가 있었던 거야. 딸기, 사과, 호박 모양의 회전 라이드는 너무 예뻐서 마치 아이들을 유혹하는 마녀의 집 같았어.
어쩔 수 없이 나도 우리 팀 아이들이랑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가슴이 콩닥콩닥 뛰더라. 드디어 우리가 탄 호박이 움직이기 시작했지. 내 속도 모르고 우리 팀 장난꾸러기 라이언이 핸들을 자꾸만 세게 돌리는 바람에 빠르게 돌았지만, 난 왠지 생각했던 것만큼 무섭지 않았어. 즐거워하는 아이들이 사랑스러웠고 우리의 뺨을 스치는 생기 가득한 바람이 고마웠어.
그때 깨달았어. 그동안 나는 은막에 영상을 쏘듯 무서움의 대상에 내 마음을 비추어 바라봤던 건지도 모른다고. 영화를 볼 때 잔상이 뇌에 남듯 감정도 마음에 남아있는 거라고. 그날 이후 빙빙 돌아가는 것들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사라졌어.
상처는 별이 되기도 하지만 벌이 되기도 해. 상처를 잘 다루지 못하면 상처받은 마음은 일상에 스며들고 그 시간들은 부지불식간에 나를 갉아먹지. 벌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결국 내가 만들어 가는지도.
하루하루의 시간이 만져질 것처럼 생생하면 좋겠어. 아이처럼 단순하고 기분 좋게 살 수는 없을까. 좋은 기억은 오래 가슴에 남기면서.
그래서 나는 책을 읽을 때도 종이의 감촉이 필요해. 전자책장을 넘기는 건 꼭 전화기 너머 목소리를 듣는 것 같다. 사람의 입술을 읽는 동시에 목소리를 들으면 메시지 이면의 감정이 전해오는 것처럼, 책을 읽을 때도 종이의 버석임이나 적당한 보드라움이 필요해. 그래야 글쓴이의 마음을 알 것 같아.
지하철이 멈추고 나는 다시 플랫폼에 발을 디디며 햇빛에 반짝거리는 역 주변 건물들을 바라보았어. 따뜻하리란 예상과 달리 두꺼운 코트를 넘어 확 달려드는 추위에 소스라치면서. 옛 어른들 말씀처럼 착하고 말 잘 듣는 게 꼭 좋은 세상살이는 아니라는, 보이는 세상과 겪는 세상은 너무나 다르다는 생각에 괜스레 어깨를 옴츠려본다.
그래도 희망을 잃는 건 쓸쓸한 일이야. 낯선 곳을 헤매고 또 헤매도 집으로 돌아갈 길을 찾지 못하는 것과 같아.
깊은 잠에서 깨어나 내 안의 반짝이는 빛에 대해, 꿈에 대해 말하고 싶다.
찬란한 봄을 품고 있는 이 겨울을 바라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