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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Jun 08. 2022

나에게 닿는 길

어느새 내 나이와 비슷한 개수의 글을 올렸다.

(내 나이보다 많은 글을 올렸다고 쓰고 싶지만, 글 쓰는 사람은 정직해야 하므로:)

잔뜩 들떠서 첫 글을 발행하고는 심장 뛰는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리는 듯했던 게 벌써 두 달여 전이다.

처음엔 서툴고 어색했지만, 지금은 다른 작가님들의 글도 많이 읽고 댓글로 소통까지 하게 되었다. 위로와 배움을 얻는 소중한 시간들이 내 삶에 펼쳐지고 있다.

브런치에 와서 내가 누리는 가장 큰 즐거움은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읽는 것이다.

집중력도 떨어지고 읽는 속도도 느린 나는 책 한 권을 다 읽으려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런데 브런치의 글들은 다양한 장르, 다양한 스토리 속에 삶의 이야기가 깊이 있고 진하게 들어있다. 읽고 나면 그 글을 쓴 작가님과 이야기가 하고 싶어 진다.


학창 시절 내가 제일 좋아하던 과목은 국어였다. 입시 준비로 팍팍한 학교 생활 중에도 국어 시간만 되면 마음이 편했다. 멀쩡한 작품들을 갈기갈기 해체하며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는 건 싫었지만, 한편으론 시나 소설을 선생님과 함께 수업시간에 읽을 수 있어 좋았다.

문예반에 들어 글쓰기를 배워 보기도 하고, 잠이 안 오는 밤엔 공부 대신 끄적끄적 연습장에 글을 써 보기도 했다. 고 2 때 처음으로 친한 친구에게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고백처럼 말했던 기억이 난다.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점점 글을 쓰지 않게 되었다. 매일같이 나붙는 교내 대자보들을 보면 내가 쓰고 싶은 글들은 사치품처럼 느껴졌다. 친구와 선배가 최루탄에 쓰러지던 그 시절,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글을 쓰는 게 죄스러웠다.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자꾸 주눅이 들어갔다.

불문과 복수전공을 할 때, 존경했던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잊히지 않는다. 마음속에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견딜 수 없는 사람은 글을 써야 한다고 하셨다. 하고 싶은 말이 늘 속에서 득실득실했던 나는 언젠가 꼭 글을 쓰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도 오랫동안 쓸 수 없었다.

몇 년 전 수강했던 강의 시간에 한 동화 작가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작가의 삶을 사는 게 얼마나 중노동인지 아냐고. 쉴 틈 없이 읽고 쓰다 보면 하루가 짧게만 느껴진다고. 요즘 들어 그 말이 자꾸 생각난다.

브린이에 불과한 나도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고부터 조금 바빠진 건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독서량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리고 더 많이 써야 한다.


브런치에 오기 전, 나는 글쓰기와 꽤 오래 담을 쌓고 살았다고 생각했다.

타지에 적응하기 위해 그 나라 말을 배우기 급급해서 우리말 쓰는 걸 소홀히 했던 적도 있다. 생전 처음 접해보는 말도 아니니 금방 잘하게 될 거라고 기대하며 집착했다. 그러나 서른이 넘은 나이에 원어민과 똑같은 수준의 언어 능력을 바란 건 나의 욕심이었다. 언젠가 친구가 '안 느는 영어, 잊어가는 한국말, 거기 끼어드는 스패니쉬'라고 해서 너무 공감한 나머지 웃픈 적이 있었다.

어느 날 미국인 친구와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친구가 자기 나라 말이 없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다. 영어는 미국어가 아니다. 미국 사람들은 본래 자기 나라 말이 없다.

우리말과 우리글이 있어 자랑스러웠다. 오랜 세월 타지에서 살았지만, 이렇게 우리말로 글을 쓸 수 있어서 감사하다.


처음 브런치에 왔을 때 그동안 너무 오래 글을 안 썼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없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동안 친구들과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도 글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만들었던 교재도 글이었다. 글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게 우리 생활인데, 글을 안 썼다는 생각은 틀린 거였다. 글을 쓰지 않았다는 건 내가 나한테 한 거짓말이었다. 나 자신에게 속아 자신감을 잃었던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다 보니 잊고 살았던 어휘들이 새록새록 생각나 재미있다. 요즘도 이런 말을 쓰나 싶어 인터넷도 뒤져본다. 글을 쓸 때 꼭 몇 번씩은 국어사전을 찾아보게 된다. 새로 생긴 말도 있고 맞춤법도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글을 다 쓰고 발행 버튼을 누르기 전 5초 정도는 늘 손가락을 그 자리에 멈춘 채 고민한다. 민망하다. 망설여진다. 그리고 떨린다.

이렇게 부끄러운 내 글임에도, 읽어주고 응원해주고 공감해주는 작가님들께 어떤 고맙다는 말로도 내 마음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


글을 쓰다 보면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라 괴로울 때도 있다.

그러나 그 괴로움은 마음을 다 털고도 결코 허전하지 않은 후련함으로 다가온다. 그게 바로 행복감이라는 걸 깨닫곤 한다.

나를 만나는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글을 쓰는 한, 나 자신에게 접속하기 위한 아이디는 하나씩 늘어가는 브런치의 글들이 될 것이다.


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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