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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Aug 06. 2022

혼선

브런치에 글을 쓰며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집집마다 다 전화기를 갖고 있지 않았다. 꼭 통화가 필요할 땐 전화기가 있는 이웃에 부탁을 하거나, 근처 가게에서 요금을 내고 전화를 사용하기도 했다.

우리 집도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쯤 전화기를 들여왔다. 전화 요금 많이 나온다고 아이들에겐 전화할 기회도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가까스로 허락을 얻어 친구와 통화를 시도하면 어김없이 몇 번은 혼선(crossed line)을 경험했다.

친구의 목소리를 제치며 내 귀를 파고들던 낯선 아줌마 혹은 아저씨의 목소리들. "... 그니까 버스 터미널로 나오라고. 아니 그냥 거기 있으라고,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 "어, 알았어, 근데 몇 시라고?" "... 여보세요, 뭐라고? 이거 전화가 혼선됐나 봐. 들려? 여보세요?"

저쪽에서도 우리 목소리가 들리나 보다. 우리가 혼선인가 보다고 말할 때쯤 저쪽도 서로 혼선이라고 똑같이 말하는 게 재미있다. 통화를 하다 혼선이 돼서 우스운 내용이나 싸우는 소리가 들리면 친구와 약속이나 한 듯 말을 멈추고 가만히 들어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혼선을 통해 의도치 않게 엿듣게 되는 다른 사람들의 사생활. 나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채워주는 뜻밖의 횡재였다. 걸으며 전화를 주고받는 세상에 살고 있는 지금, 전화기 혼선은 잊고 있던 향수를 불러온다.


나의 이야기를 쓰고,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읽는 브런치에서도 마치 전화가 혼선되었을 때처럼 서로의 사연을 알게 된다. 전화의 혼선은 원치 않는 불편함을 주지만, 브런치에서의 '혼선'은 내가 선택한다. 사랑의 작대기 같은 선들이 여기저기서 연결된다. 나의 글을 다른 작가님들이 읽고 나에 대해 더 알게 되듯, 나도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읽고 공감한다. 즐겨 읽는 작가님의 글에 댓글을 쓰러 갔다가 낯익은 작가님을 우연히 만나기도 한다.

생각을 나누고 소통한다. 서로가 서로를 더 알아간다. 자발적 혼선, 아름다운 혼선이다.

굳이 엿듣지 않아도 열려있는 문으로 들어가면 된다.



운전을 처음 할 땐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고 딱 내 앞 차 꽁무니만 보인다. 그러다 운전 경력이 늘면서 시야도 넓어진다. 앞쪽으로는 자동차 두 세 대까지도 보이고 뒤와 옆에서 달리고 있는 차들도 두루두루 잘 보인다. 뿐만 아니라 착륙을 위해 가까이 날아오는 공중의 비행기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이 모든 정보들은 운전에 지장을 주지 않고도 올바른 판단을 돕는다.

처음 브런치에 왔을 때, 나는 초보 운전자가 바로 앞 차 꽁무니만 노려보듯 오로지 내 글을 쓰고 발행하는 데만 긴장하고 집중했다. 브런치에 온 지 넉 달 좀 넘은 지금은 내 글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님들의 글도 넓어진 시야에 들어와 글을 읽는 즐거움이 배가 되었다.


글 소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온종일 머리가 풀가동되는 느낌이다.

무엇을 보든 마치 내 생애 마지막에 보는 것 같은 비장함이 생겼다. '내 글로 만들어줄게, 이리 와~' 그들을 탐욕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다 혼자 멋쩍은 미소를 짓곤 한다.

새로 생긴 내 버릇이 싫진 않다. 글을 쓰는 덕분에 관찰력이 조금은 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

적당한 긴장감과 그 이후에 찾아오는 풀어짐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려 한다.


힘겨워질 땐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생각해 본다.

'브런치에 노크했을 때 나는 어떤 상태였지?', '나는 왜 글을 쓰려했을까?'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질문, '나는 왜 글을 쓸까?'

팬데믹이 오고 다니던 직장이 폐쇄된 끝에 일을 그만두었다. 락다운으로 집에 갇혀있는 생활이 계속되면서, 보고 싶은 사람들을 걷거나 전철 타고 가서 만날 수 없는 곳에 살며 그리움을 외로움처럼 받아들였었다.

브런치는 안으로 안으로 침잠하려는 마음을 밖으로 끌어내 주었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하게 해 주었다.

나 자신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나와 친구가 되고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여전히 내가 미울 때도 있지만, 적어도 나의 감정들에 솔직해졌다.


브런치라는 새 동아줄을 잡고 나서 글쓰기로 상처가 아문 자리에, 다시 별이 뜬다.

서로의 밝은 빛이 노래가 되어 마음을 울려주기를, 겹쳐진 선들이 위로와 공감의 물길이 되기를 바라본다.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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