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a Lee Jun 29. 2022

하늘과 구름과 비행기와 노래

아침에 창을 열다 본 하늘에 구름이 예쁘게 떠 있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

나는 원래 야행성 인간이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 사이에서 '가필드'로 불렸다. 눈이 크고 밤잠이 없어 고양이 같다고 붙여진 별명이다.

평생을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났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오전 내내 잠이 덜 깬 상태로 있기 일쑤였다. 그랬던 내가 한국의 밤 시간에 올라오는 글들을 읽다가 반 시간씩 한 시간씩 차츰 일찍 일어나게 된 것이다. 한국의 밤은 이곳의 이른 아침이기 때문이다.


잠이 깨고 나서도 뭉그적대느라 침대에서 빠져나오는 데 오래 걸린다. 창을 열면 아침 공기가 온몸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공기의 냄새가 매일 다르다. 풀이나 과일 냄새가 느껴질 때도 있고 갓 마른 빨래 냄새가 날 때도 있다.

대충 씻고 나서 스트레칭을 하기 위해 창가로 온다. 늘 같은 자리에 펼쳐져 있는 매트 위에 몸을 누이면 하늘이 보인다. 창을 통해 들어온 하늘이 나를 향해 쏟아질 것 같다. 아까 일어나자마자 보았던 구름과 다른 모양의 구름들이 흘러가고 있다.

매트 위에 누워 한동안 멍하니 하늘을 본다. 세상 가장 편한 자세로 하늘을 보고 있으면 돌고 있는 지구 이 거대한 세상 속의 한 점인 내가 느껴진다. 천천히 움직이는 구름에 시선을 고정하면 이 세상에 구름과 나만 있는 것 같다.

구름을 보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르곤 했다. 비 오는 날을 별로 안 좋아해 비를 만드는 구름이 반갑지 않았다. 뜬구름, 먹구름,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 것들... 구름에 비유한 부정적인 표현들이 일상에 많이 있다. 모호하고 안 좋은 징조를 가져올 것 같을 때 구름의 이미지가 사용되곤 한다.

나는 요즘 구름을 보면 마음의 빗장이 확 풀리는 듯 가벼워진다. 내 마음에서 빠져나온 무거운 감정들이 어느새 구름이 되어 둥둥 떠가는 느낌이다.

만져보면 부드러운 솜털처럼 내 손을 간지를 것 같은 구름은 햇빛에 증발된 물이 수증기가 되어 떠있는 것이란다. 과학적인 실체를 알고 구름을 보면 뭉개뭉개 피어나던 상상이 푹 꺼질 것 같다. 그래서 내 눈에 보이는 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달에 옥토끼가 있다고 믿어버리고 싶은 것처럼.


구름 사이로 비행기 한 대가 반짝이며 날아간다.

고향을 떠나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타주에 사는 지인과 통화를 했다. 자신의 아이가 비행기만 보면 저 비행기를 꼭 타야 할 것 같다며 우리나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에둘러 말한다는 그녀의 말에 전화기를 붙들고 울던 기억이 난다. 그 무렵 라디오에서 지독히도 많이 나오던 노래가 마이클 부블레(Michael Buble)의 "Home"이었다. 낯선 곳에서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당신이 있는 고향이 그립다는 노래다.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그때의 감정이 그대로 살아나니 참 신기하다.

헤르만 헤세의 시 "흰 구름"은 동경과 그리움을 노래한다. 나그네는 구름의 마음을 알 것이라는, 고향 잃은 나그네의 누이이자 천사 같은 구름을 사랑한다는 시다. 예전에 읽었을 땐 이 시를 다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그의 시가 내 마음을 들여다본 것처럼 느껴진다.

박목월의 시 "나그네"에도 구름이 등장한다.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라는 시어에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구름의 이미지는 방랑과 외로움이기도 하다.


오랜 타향 생활에 헤르만 헤세처럼 나도 구름을 사랑하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하늘과 구름을 한참씩 쳐다보게 되니 말이다.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구름에 담아보면, 병에 든 편지를 바다에 띄우는 사람의 심정이 된다.

얼른 비행기를 타고 저 구름 위를 날아 고향에 가고 싶어 진다.


https://www.youtube.com/watch?v=lbSOLBMUvIE

이전 11화 롱디 부모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