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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Jul 15. 2022

안나가?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들은 이야기다.

10월에서 12월 사이는 로드킬이 빈번히 발생하는 시기다. 번식기를 맞아 활동이 활발해진 사슴들이 자주 도로로 뛰어들기 때문이다.

어떤 한국분이 차를 운전하다 도로로 뛰어든 사슴과 부딪쳤다. 신고를 하기 위해 경찰에 전화한 그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사슴이란 영어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루돌프'가 자신의 차와 부딪쳤다고 해버렸다. 전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흐른 후 경찰관은 말했다. "Oh, Is Santa OK?"


10여 년 전 나는 미 대륙을 동서로 횡단하는 I-90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뒷자리의 아이들과 옆자리의 남편 모두 잠들어 있었다.

갑자기 누군가 날 뒤에서 빤히 쳐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난 지금 운전 중인데?' 의아한 생각이 들어 백미러를 보는 순간, 미러 가득 번쩍이는 불빛이 보였다. 경광등을 켠 경찰차였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뒤에서 나를 노려보며 쫓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머리칼이 전부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경찰관을 기다리는 약 1분 동안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이 스쳐갔다. '내가 그렇게 빨리 달린 건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지만 좀 속도를 내고 있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지인이 해준 말이 생각났다. "하이웨이에서 경찰한테 걸리면 '아이 돈트 스핔 잉글리시' 이러지 말고 '아이 돈트 스핔 잉글랜드'라고 해야 돼. 혹시 알아? 그러면 진짜 뭘 모르는 사람이구나 하고 봐줄지?"

정말 그렇게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경찰관이 다가와 창을 내리라는 시늉을 했다. 와중에도 그의 잘 생긴 얼굴과 멋진 제복 차림이 눈에 들어왔다. 할리우드 영화에 나올 것 같은 핸섬하고 젊은 남자 경찰관은 차 안을 둘러보더니 갑자기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물었다.

"혹시 이 차와 똑같은 차가 지나가는 거 봤어요?"

'엥? 이건 뭐... 지?' 황당함을 담은 남편과 나의 시선이 마주쳤다. 냉정하기로 유명한 미국 경찰관들이라 나름 각오하고 있었는데, 이건 좀 이상했다. 빈틈없는 외모와 너무 다른 그의 나사 하나 빠진 듯한 모습에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

우리는 망설이다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경찰관은 우리를 잡아 놓고는 매우 헷갈려하는 눈치였다. 다른 차를 우리 차로 착각했거나, 속도위반을 하기엔 우리가 너무 평범해 보였거나, 아무튼 그의 속을 내가 알 리 없었다. 그는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경고만 하고 우리를 보내주었다.

이 웃지 못할 해프닝에서 끝났어야 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나는 I-94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장거리 여행이라 지쳐 보이는 남편을 잠깐 쉬게 하고 운전대를 잡은 나는 남편이 자는 동안 많이 가 놓으려고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70-75 MPH(Miles Per Hour) 도로를 어느새 90 MPH로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김없이 백미러가 번쩍이기 시작했고, 내 차 꽁무니를 밀 듯이 몰아붙이는 경찰차에  쫓겨 갓길에 차를 세웠다. 갑자기 내가 범죄자라도 된 낯선 느낌이었다.

벌금과 경고가 주어졌고, 다행히 벌점을 받거나 법원에 가야 하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날 일을 뼈에 사무치게 반성했다. 순간의 욕심 때문에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짓을 저질렀구나 생각하니 그날 밤 잠도 오지 않았다.

다음 날 성경공부 모임에 가서 그 일을 말했더니 멤버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들의 반응에 내가 더 놀라고 있는데, 마침 밖에 잠깐 나갔다 들어온 리더가 옆 사람에게 말을 전해 듣고는 "누가? 안나(Anna)가?" 하고 별안간 큰 소리로 외쳤다. 주위가 조용해지면서 그녀의 동그란 눈과 나의 동그란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그 순간 왜 내 머릿속에서는 낡디 낡은 상투적인 드라마 대사가 튀어나왔을까.

"너답지 않게 왜 이래?" "나다운 게 뭔데? 대체 나다운 게 뭐냐고!"


살면서 대놓고 규칙을 어기거나 의도적으로 남에게 피해를 입힌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속도위반으로 경찰에게 걸린 게 그렇게까지 의외였을까. 내가 그동안 너무 착한 척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속에선 천사와 악마가 하루에도 몇 번씩 싸우는데  말이다.

서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는 우리가 웃겼는지 다음 순간 모두 깔깔대고 웃다가, 운전에 얽힌 각자의 무용담이 한바탕 쏟아졌다.


나를 그렇게 바른 사람으로 보고 있었구나 생각하니 내 잘못에 대해 더 미안해졌다. 그러나 한편으론 잘못한 이야기도 솔직하게 나눌 수 있는 벗들이 있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혼자 담아두기보다 털어놓음의 후련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경험을 나누다 보면, 내가 보는 나와 다른 사람이 보는 나의 모습이 일치하지 않을 때가 있다.

나 자신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는 재미있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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