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이기고

by Anna Lee

귀신, 괴물, 사나운 개, 물, 벌레 등등 옛날엔 무서운 게 참 많았다.

어릴 때 몸이 약하고 예민했던 나는 외부 자극에 빠르게 반응하는 편이었다. 조금이라도 낯선 환경에 놓이면 금방 불편해지곤 했다. 적응하는 데 시간도 오래 걸렸다. 그래서 늘 겁이 많고 잘 울었다.


만 서너 살 때쯤이었던 것 같다. 엄마랑 이모가 일하는 학교에 갔다. 수업 중이라 운동장엔 아무도 없었다.

엄마는 사진을 찍어 줄 테니 저만치 가서 서라고 했다. 학교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주려 하셨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엄마와 떨어지는 게 무서웠다. 텅 빈 운동장은 내겐 사막만큼이나 광활했고 내 뒤쪽의 건물은 입을 쩍 벌린 괴물 같았다.

싫다는 나를 억지로 밀다시피 하여 멀리 떨어뜨린 엄마는 카메라를 얼굴에 대고 "뒤로! 아이 참, 더 뒤로 가야지!" 하고 말했다. 이번엔 엄마 얼굴을 가린 시커먼 카메라가 괴물의 눈 같았다. 그러니까 나는 아무도 없는 사막에서 괴물들에 둘러싸인 셈이 된 것이다.

겁에 질린 채 가까스로 한 발 더 뒤로 떼는 순간, 갑자기 학교 괴물이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하늘과 땅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울면서 엄마에게로 뛰어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소리는 수업이 끝날 때 울리는 종소리였다.

모처럼 간 이모의 학교에서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하고 말았다.


뭐니 뭐니 해도 극강의 공포는 병원이었다. 그중에서도 치과 병원은 나의 흑역사로 남아 있다.

유치원에 다닐 무렵 앞니가 흔들렸다. 이게 무슨 일일까 더럭 겁이 났다. 어른이 되려고 이가 바뀌는 것이라는 설명을 들은 후 안심은 했지만, 문제는 이를 뽑는 것이었다.

어른들이 흔들리는 이를 뽑자고 말할 때마다 이리저리 꽁무니를 뺐다. 엄마는 이를 제때 뽑지 않으면 새 이가 드라큘라처럼 난다는 둥 겁을 주기도 하고, 어찌어찌 나를 붙잡아 나의 이와 방 문 손잡이를 실로 연결해 잡아당겨 보기도 했지만 결과는 '피, 땀, 눈물'이었다. 결국 나는 동네 치과로 질질 끌려갔다.

예쁜 그림들과 영상까지 있는 요즘의 소아 치과와는 달리, 옛날 치과는 삭막했다. 칙칙한 의자와 뾰족한 기구들을 보기만 해도 벌써 이가 아파오는 것 같았다.

기절할 것처럼 우는 나를 어쩌지 못하고, 의사 선생님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음날 다시 오라고 돌려보내 주셨다. 얼마나 고래고래 울었는지 목이 다 쉬어 있었다. 그날 저녁 뭔가를 먹다가 이가 빠져버려 다음날 다시 치과에 갈 필요는 없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두려움을 극복할 나름의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이렇게 겁내면 안 돼' 하는 울림이 언젠가부터 마음에 울리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이 어디서 왔는지 지금 돌아보면 신기하다.

학교에 다니면서 친구들이나 선생님의 눈을 의식하게 된 게 변화의 시작이 아니었나 싶다. 나의 존재 범위가 더 넓어지고 그 안에서 타인도 나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자신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울고 고집부리다 엄마한테 혼나는 것도 싫었다. 그러고 있는 나 자신이 스스로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사를 맞을 땐 양손으로 입을 막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좋아하는 노래를 불렀다. 입을 막은 건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오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따끔함이 온몸으로 퍼지는 순간 손을 입가에 대고 있으면 왠지 든든했다. 내가 나를 지켜주는 기분이 들었다.

치과에 갈 땐 '치과에 간다고 나는 죽지 않아'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내내 '나는 죽지 않아' 하는 생각을 거듭했다. 이렇게 자기 암시를 사용하여 내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던 두려움에서 점점 빠져나오고 있었다.

귀신 나올까 무서워 밤에 혼자 화장실에 못 가던 나는 친구들, 사촌동생들과 무서운 이야기를 하고 귀신놀이도 했다. 처음엔 두 손으로 눈을 가리기도 하고 귀를 막기도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무서움이 사라졌다.

무서워서 물에 발도 못 담그던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수영을 배우려고 스스로 수영 특활반에 들어갔다. 뭔가가 두려운 건 그 두려움의 대상을 잘 몰라서일 수 있다. 모호했던 두려움의 대상을 막상 접하면 생각보다 두렵지 않다. 나는 그렇게 공포의 대상과 직접 대면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조금 더 커서 알게 된 또 다른 두려움이 나를 얼어붙게 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마치 나와 맞지 않는 친구와 룸메이트가 된 것처럼 나를 괴롭혔다. 구체적인 대상이 있는 두려움보다 훨씬 다루기가 복잡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실패의 두려움으로 움츠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는 나 자신의 성장에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내 마음에 밀착돼 있던 두려움을 떼어내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나와 떼어놓고 보니 두려움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았다. 포기가 배추를 셀 때 쓰는 말이듯, 실패도 실을 감을 때나 쓰는 말로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잘 되지 않아도 괜찮아지기로 했다. 어느새 내 안에 두려움보다 더 큰 힘이 생겼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이렇게 살면 안 돼. 바꿔야 해' 할 때가 있다. 그때를 진정한 터닝 포인트로 만들기 위한 동력이 필요하다. 나는 누구나 자신의 내면에 그런 힘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그 힘을 알게 된다면, 바닥을 칠 순 있어도 그보다 더 아래 심연으로 빠져버릴 일은 없을 것이다.

기대와 현실 사이에는 언제나 실망이라는 이름의 잡초가 자라난다. 내가, 혹은 다른 사람들이 물을 주어 잡초가 자라나게 할 수도 있다. 실망의 잡초가 좌절이라는 꽃을 피우기 전에 뽑아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두려움을 이겨보고자 했던 마음, 어떻게 하면 두렵지 않을까 궁리하던 마음, 그리고 용기를 내어 행동으로 옮겼던 어린 내가 있었다.

어린 나는 격려받기보다 꾸중을 더 많이 듣고, 남동생에 치여 차별당하고, 마음 붙일 곳을 찾지 못해 둥둥 떠다니면서도 나 자신을 아끼고 붙들었다.

나를 붙들어준 내 안의 힘이 있었다. 마치 작은 반딧불이처럼 약하지만 끊임없이 빛나던 것이 있었다. 빛은 점점 환해져 나를 압도했다.

그리고 그 빛은 앞으로도 내가 있는 곳과 내가 있고 싶어 하는 곳 사이의 어두운 통로를 환하게 비춰줄 등불이 될 것이다.

어떤 순간에도 나를 붙들고 놓지 않았던 내 안의 목소리, 그 힘을 느끼는 한 나는 희망을 잃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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