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래, 너무 많은 세월을 살얼음판 위를 걷듯 살아왔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솔직히 말하지 못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남의 눈치만 보다가 하지 못했다.
'이 정도면 충분해, 여기까지!'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살얼음판 위를 쿵쿵 밟으며 걷기 시작했다.
발 밑으로 얼음이 깨어지고 나는 그대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물속에서 나를 만났다.
세상이 강요한 모습의 내가 아닌 그냥 '나'를 만났다.
두려움, 완벽하고 싶은 마음, 타인에게 맞추기 위해 나 자신을 홀대하는 마음, 비교하는 마음, 과거의 실수를 붙들고 있었던 마음, 그리고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일들을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나로부터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들은 검은 물속으로 흘러 사라졌다.
내 몸이 가벼워져 물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물은 생각보다 차갑지도 깊지도 않았다.
물 밖으로 나와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비로소 나는 자유함을 느꼈다.
나의 존재 가치를 그에게 증명해야만 할 것 같은 순간이 온다면, 그에게서 떠날 시간이 된 것이다.
이미 그는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을 보지 않는다.
그래도 계속해서 나를 보여주려 한다면 그와 나의 관계는 좌초되거나 오염될 것이다.
사랑하면 서로의 존재를 애써 증명할 필요가 없다.
사랑하는 동안에는 너와 나를 초월해 오직 하나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사랑이 끝나면 상대방의 존재가 뚜렷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의 존재 가치는 더 이상 나와 아무 상관이 없게 된다.
너와 나의 만남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그의 능력은 자신을 스스로 낮춤에 있었다.
그의 겸손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채 타인에게 초점을 맞추는 슬픈 가식과는 달랐다.
그는 애초에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이루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영원을 향해 한 발짝씩 걸어갔다.
나는 그를 만나고 싶었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내 안에서 그를 만났다.
세상에서 가장 길고도 먼 여행은 내면세계로의 여행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