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챤 디올 전시를 보고

by 김리온

몇 해 전, 내가 운영하던 갤러리에서 도예 작가의 전시를 연 적이 있다.

전시장에 모인 동료 작가들과 교수들이 한 작품 앞에서 나눈 첫마디는 이랬다.
“이거, 캐스팅 떴네?”

감탄도, 질문도 아니었다.
작품이 왜 존재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먼저 짚어내는 반응이었다.

그땐 감상이 아닌 분석으로 시작하는 태도가 낯설었다.

하지만 지나고 생각해 보니, 그것도 작품을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디올 전시에서, 나도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멈춰 서 있었다.
전시장은 디올의 유산으로 가득했다.
꽃과 드레스로 채워진 방에서 사람들은 탄성을 내며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다.
나는 그 반대편, 잘 보이지 않던 벽 한쪽의 샘플 제작 의뢰서 앞에서 발길을 오래 멈췄다.

1959년과 1960년에 제작된 옷의 원단 조각, 수정 지시, 짧은 메모들이 남겨져 있었다.
‘이걸 아직도 가지고 있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제작 의뢰서는 기업에서 통상 사용하는 내부 결재 문서와도 같을 텐데, 수많은 옷을 만들어온 브랜드가 그 옛날의 자료까지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에 먼저 놀랐다.

(그때부터 우리의 유산이 될 테니 잘 간직하자, 그렇게 말하며 남겼던 건 아니었을 텐데.)

전시는 장관이었고, 아름다움은 예상보다 더 화려했지만 내 시선은 자꾸만 그 이면을 파고들었다.

이 실루엣은 몇 번의 핏 수정을 거쳤을까.
저 원단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감탄보다 먼저 든 건 디자이너로서의 궁금증이었다.
전공자로서 익숙한 부분들이 많았기에, 어느새 감상보다는 분석에 가까운 시선으로 옷을 ‘읽고’ 있었다.

전시가 주는 낯설고 강렬한 인상보다는, 손의 흐름과 설계의 흔적에 마음이 머물렀다






크리스챤 디올이 뉴룩을 발표한 건 1947년, 전쟁이 끝난 직후였다.
황폐해진 거리와 무너진 일상, 얇고 단조로운 복식들 사이에서 그는 여성의 허리를 다시 조이고, 볼륨을 더하고, 천을 아낌없이 둘렀다.

당시엔 사치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디올이 말한 건 단지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패션은 회복이었고, 절망 위에 피어난 정원이었고, 몸이 아닌 존엄에 천을 입히는 일이었다.

“여성에게 꽃을 입힌다.”
그의 말은 그 시절 사람들에게 일종의 희망처럼 들렸을 것이다.

디올의 옷은 늘 구조적이다.
겉으로 보이는 직물보다 더 많은 시간이 내부의 설계에 들어간다.
이 브랜드는 화려함을 장식이 아니라, 뼈대의 미학으로 증명해 왔다.
내가 디올을 좋아하는 이유도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이들은 천을 입히는 것이 아니라, 태도를 입힌다.
우아함은 겉모습이 아니라, 자세와 선택으로 완성된다는 걸 디올은 언제나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익숙했다.
누가 이 옷을 만들었는지, 어떤 손이 그 선을 그렸는지, 어떤 재단 방식이 이 곡선을 가능하게 했는지.
사람들이 ‘와’ 하고 감탄할 때, 나는 익숙하게 그냥 지나치고 있었다.

물론 장인들의 손길과 브랜드의 기술력에 감탄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게 이 옷들은 하나의 ‘작품’이라기보다는, 수많은 선택과 시행착오가 녹아든 ‘작업’으로 보였다.

아마도 그것이 이 일을 오래 해온 사람으로서 자연스레 익숙해진 감상의 방식일 것이다.

처음엔 낯설게 느꼈던 그날의 반응도, 지금 생각하면 같은 길을 걷는 이들끼리 통하는 시선이었을지 모른다.

누군가는 전시장의 장면을 기억하고, 누군가는 그 이면의 과정에 머무른다.

방식은 달라도, 모두가 나름의 결로 즐기고 있었던 셈이다.

화려한 드레스 앞에서 멈추기보다는, 나는 그 이면을 보았고, 브랜드의 철학에 더 오래 머물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레는 전시였던 건 분명했다.






Christian Dior: Designer of Dreams 전시는
2025년 4월 19일부터 7월 13일까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다.
패션에 관심이 있든 없든,
시간을 넘어 이어져온 브랜드의 태도와 철학을 들여다보는 경험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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