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도미술관 <호안 미로> 전
도쿄도미술관은 내게 각별한 공간이다.
몇 해 전부터 도쿄 출장 중 어린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이 미술관을 여러 번 찾았던 기억이 있다.
서양미술관을 지나 우에노 공원으로 들어서면 분수대가 먼저 보인다.
그 앞에서 아이를 안고 오래 앉아 있었던 기억, 놀이터에서 뛰놀던 모습, 그림 앞에서 함께 사진을 찍었던 장면들이 겹쳐 떠올랐다.
얼마 전, 호안 미로의 전시를 보기 위해 그 길을 다시 걸었다.
이미 나가사키 미술관에서 한 번, 서울에서도 한 번 본 작가였고, 특별히 열렬히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었다.
잠시 망설였다. 또 봐야 할까?
그렇지만 마음 한편에 ‘또 보면 좋겠지’라는 생각이 있었고, 추억처럼 남아 있는 이름이라 결국 미술관으로 향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한 컬러, 자유로운 형상, 익숙한 추상화뿐 아니라 젊은 시절 자신이 살던 동네를 그린 회화, 포스터, 드로잉 하나하나가 인상 깊었다.
그림을 보다가 한참을 멈춰 선 곳이 있었다.
<House with Palm Tree>라는 작품으로, 미로가 파리에 살면서도 자주 머물렀던 고향 마을 부모님의 별장과, 그 주변의 농장과 풍경을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기하학적이고 구조적인 화면 속에, 사실적이고 소박한 정취가 담긴 풍경이었다.
집 앞의 밭, 이국적인 나무, 드문드문 피어 있는 색감들이 기억 속 풍경처럼 다가왔다.
그 앞에 서니 문득, 호안 미로와 안익태 선생님이 1950년대 마요르카에서 친구로 지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시절, 안익태는 마요르카 교향악단을 만들어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고, 미로 역시 이 섬에서 창작에 몰두하고 있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이웃처럼 우연히 마주쳤고, 함께 산책하며 고향, 정체성, 예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서로의 예술 속에서 조국을 발견했던 두 사람—회화와 음악이라는 전혀 다른 매체를 통해, 예술이 어떻게 삶과 나라를 품을 수 있는지 깊이 공감했다고 한다.
그 장면을 상상하니, 미로의 그림이 다시 다르게 보였다.
호안 미로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에서 태어나 고향과 언어, 문화를 지키기 위해 상징과 기호로 가득한 독창적인 조형 언어를 만들어낸 작가다.
“나는 정치적 선동가는 아니지만, 나의 선과 색은 독재와 싸운다.” 미로는 그렇게 말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카탈루냐 농장(The Farm)>은 고향 마을 몬트로익(Mont-roig del Camp)의 풍경을 기억과 감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그림 속에는 농장, 동물, 나무, 도구, 하늘과 땅이 하나의 생명체처럼 조화롭게 존재하고 있다.
미로는 이 작품을 “내가 그린 가장 진실된 그림”이라고 말했고, 헤밍웨이는 이 그림을 보자마자 “내가 가진 유일한 고귀한 소유물”이라며 사들였다고 한다. 그림 속에는 고향에 대한 애틋함, 자연의 숨결, 그리고 예술로 지켜낸 삶의 뿌리가 담겨 있었다.
도쿄도미술관의 전시에서도 나는 그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색은 단순했지만 가볍지 않았고, 형태는 자유로웠지만 그 안에 고향과 삶의 결이 녹아 있었다.
무엇보다 그 그림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기도 했다.
조형감이 살아 있고, 낯설지만 정감 있는 색채, 사람의 삶이 녹아 있는 풍경.
오랜만에 그림을 보며 진심으로 설레었다.
전시를 다 보고 나오며 자연스럽게 뮤지엄 샵으로 발길이 향했다.
작품집, 엽서,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까지—무엇을 고를지 고민이 많았다.
집에 돌아오면 결국 서랍 속에 넣게 될 걸 알면서도, 이번엔 꼭 가지고 있고 싶었다.
기억에 남은 작품 위주로 신중히 골랐고, 한참을 머물며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날 샵에서 호안 미로 외에 파울 클레의 작은 작품집을 하나 샀다.
표지가 물고기 그림이었는데, 이상하게 끌렸다.
며칠 뒤 시즈오카에서 파울 클레의 전시를 보게 될 줄은 몰랐기에, 나중에 그 책을 다시 보며 혼자 웃었다.
어떤 우연은 괜히 더 반갑다.
다음 날, 기념품을 꺼내 다시 보다가 아이에게 물었다.
“호안 미로 그림 어땠어?”
“외계인 같았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어.”
그 대답이 너무 웃겼다.
나는 그림마다 “아, 너무 좋다…” 하며 봤는데, 아이는 그렇지 않았다고 하니 오히려 더 기억에 남았다.
그래도 외계인이라는 상상을 했다는 건, 아무런 감흥 없이 지나친 전시는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그림 앞에서 마음이 한 번은 흔들렸다는 뜻이니까, 나 혼자 좋았던 전시는 아니었다고 믿기로 했다.
이 전시는 여러모로 좋았다. 익숙해서 좋았고, 새로워서 좋았고, 오래전 기억과도 이어져 있어서 좋았다.
아이와 함께 다시 만난 호안 미로는, 이번에도 충분히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