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도시, 시즈오카에서 본 파울 클

by 김리온

도쿄에서 시즈오카까지는 신칸센으로 약 한 시간 반.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지만, 목적 없이 가기엔 애매한 곳이기도 하다.
시즈오카는 관광지로 잘 알려진 도시는 아니다.
후지산을 보러 가는 이들에게는 경유지일 수 있고, 와사비 산지라는 점에서 음식 관련 콘텐츠는 있지만, 특히 한국 사람에게 ‘여행지’로 떠오를 만한 도시는 아니다.


KakaoTalk_20250806_113516984.jpg 전망대에서 본 시즈오카 시내 전경


우리 가족은 일본 구석구석 여행하는 걸 좋아해서 조용하고 작은 시즈오카가 좋았고,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었다.
반다이 파트 디자인이 적용된 거리 풍경, 녹차, 와사비 덮밥, 와사비 아이스크림 같은 지역 특색 있는 재미를 즐기며 한적하게 걷기에는 괜찮았다.
게다가 아이가 와사비를 좋아해 와사비 특산품을 구경하고 고르는 일도 작은 즐거움이 됐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미술관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즈오카시 미술관. 큰 기대 없이 “잠깐 들러볼까?” 정도의 마음으로 향했다.

입구에서 ‘파울 클레’의 이름을 마주쳤다.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KakaoTalk_20250805_183300008_02.jpg 클레의 그림과 다니카와 슌타로의 시가 함께 있는 그림책



며칠 전 도쿄에서 호안 미로 전시를 보며 샵에서 표지에는 파울 클레의 황금 물고기, 본문에는 클레의 그림과 다니카와 슌타로의 시가 함께 있는 작은 그림책을 샀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땐 우연히 끌려 골랐는데, 이렇게 전시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바로 그 반가운 우연이었다.


KakaoTalk_20250805_183300008_12.jpg 시즈오카시 미술관 입구


시즈오카시 미술관은 시내 중심의 복합 건물 3층에 있다

밖으로는 소박한 건물이었지만, 한발 안으로 들어서자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로고, 안내 폰트, 안내물까지 전반적인 디자인이 깔끔하고 세련되었고,

공간은 차분하면서도 현대적이었다.

동선은 단순했지만,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었다.


전시 규모 또한 예상 이상이었다.

이 전시는 “Paul Klee – Solitary and Solidary”,

미술관의 15주년 기념으로 열린 특별전이었으며, 스위스 칼레 센터 협력 아래 클레의 작품 약 60점과 동시대 주요 예술가(칸딘스키, 피카소, 미로 등)의 작품까지 총 110여 점을 선보였다

교육자이자 예술가였던 클레의 생각을 따라가는 듯한 전시 구성도 친절하면서도 밀도 있었다.



KakaoTalk_20250805_183300008_08.jpg 파울 클레 전시장 내부 전경


파울 클레는 스위스 출신의 독일 화가로, 20세기 유럽 아방가르드 미술의 중요한 축이다.
표현주의, 큐비즘, 초현실주의 등 다양한 양식을 넘나들었지만,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았다.
그림은 음악처럼 구성되었고, 색은 감정을 품었으며, 형태는 상징과 리듬의 세계로 확장되었다.
“나는 보이는 것을 그리지 않는다. 나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
그의 말처럼, 클레의 그림은 보이는 세계 너머를 향한 시도이자, 내면을 바라보는 창처럼 느껴졌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그의 그림이 보여주는 ‘단순함 속의 깊이’였다.
색은 종종 투명하고 가볍지만, 겹겹이 쌓인 면마다 고요한 울림이 있었고, 선은 흔들리고 유약하지만, 그 안에 삶의 감정이 고스란히 흘러 있었다.
악보처럼 느껴지는 그림, 시처럼 읽히는 화면.
그 감각은 클레가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음악과 회화의 교차점을 꾸준히 탐구해 왔던 배경과도 이어져 있었다.

뮤지엄 샵도 작지만 인상적이었다.
구석에 자리한 소박한 공간이었지만, 파울 클레의 작품을 활용한 MD 상품들이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엽서, 키링, 머그컵, 노트는 물론이고, 파우치나 파일, 아이들 그림책까지.
일본 대형 미술관에서 흔히 보는 제품이 아니라, 전시와 연결된 기획이 느껴지는 구성들이라 더 흥미로웠다.
덕분에 또 한참을 둘러보다 몇 가지를 골라 나왔다.


조용한 도시에서 만난 파울 클레.

이 우연한 만남 덕분에 시즈오카의 두 번째 여행이 아주 특별한 하루로 남았다.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07화다시 만난 호안 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