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바닥에서 자본 적 있니?

#18일 차

by annamood









한국인중에 나보다 순례길 잘 경험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나 오늘 비박했다.

인생 처음으로 길바닥에서 자봤다.......




일단 어제 아저씨들과 마추 지지 않기 위해 최대한 빨리 나왔다.

출발은 성공! 어예~


날씨가 비 오다가 눈 오다가 아주 난리였다.

왜 비수기인지 알겠다 ㅜ_ㅜ 날씨가 참 걸을 맛 안나게 만듭니다.

그래도 쉬지 않고 걸으면 몸에서 열이 나서 춥지는 않은데 비 맞으면 그것도 소용없다..


비가 또 많이 와서 비도 피할 겸 근처 바에 들어갔다.

24시간 배가 고파서.. 간단한 간식과 맥주를 시켰다. 술이라도 먹으면 몸에 열이 좀 오르겠지라는 핑계 아닌 핑계...

난로를 피고 계셔서 그 앞에서 손 녹이고 발 녹이고, 난로 전세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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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계속 오는데 앞으로 가긴 가야 하고..

겨우 녹인 몸과 옷을 대충 말리고 다시 길을 떠났다.

그렇게 얼마를 갔을까 캠핑을 한다던 피자남을 길 위에서 다시 만났다.

곧 점심을 먹을 거라 하며 의사를 묻길래, 난 24시간 배고프니까! 콜을 외쳤다.


당연히 식당을 향해 걸어가는 줄 알았는데 바람을 막아줄 벽들을 찾더니 가방에서 캠핑 도구들이 나왔다.

순례길 걸으면서 길바닥 위에서 음식 해 먹기는 또 처음이었다.


바람 방향을 잘 막아주는 벽을 찾아 라면이 익기만을 기다렸다.

벽 하나가 바람을 막아주는데, 생각보다 너무 따뜻했다.

그리고 라면은 꿀맛이었다.



어제 먹은 그 수프도 인스턴트 식으로 마트에 판다면서 뜨거운 물을 부어서 만들어줬다.

신세계였다.

나도 마트 가서 이제 이런 것도 하나씩 사야겠다 다짐했다.

따듯한 국물 먹으니까 다시 비바람을 뚫고 걸을 수 있겠더라.


배도 부르고 따듯하고 가방을 베개 삼아 누워서 여유 부렸다. 한량이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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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점심까지 길 위에서 먹고 봉지에 설거지 거리들을 싸고 출발했다.

길 위에 다른 순례자들도 이제 잘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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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남이 오늘 캠핑하는데 체험해볼래? 라며 제안했다.

캠핑??

순례길에서 캠핑을 한다고?

솔깃했다. 왜냐면 나는 새로운 걸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고 이런 경험 또 언제 하겠나 생각에

콜!!!!! 을 외쳤다.


피자남 왈, 캠핑에서는 바람과 비를 비할 장소 선정이 중요하다며, 캠핑 고수의 눈으로 장소를 물색했다.

우리는 빈 성곽같이 보이는 큰 건물들 사이에 바람을 막아주는 벽 옆으로 향했다.

캠핑하기에 좋은 장소에 가니 캠핑족들이 몇몇 있었다.


날이 금방 어두워졌고 불을 피워야 된다고 했다.

근처에 잘라진 나무들이 매우 많았다. 바로 태우면 됐지만 비와 눈이 와서 다 젖어있었다.

최대한 안 젖은 안쪽의 장작들을 고르고 골라 알맞은 사이즈로 잘랐다. 물론 도구는 없고 손과 발로 이용해서..

그렇게 밤새 때울 땔감을 모아놓고 불을 피웠다.


스페인에서 불멍을 하게 될 줄이야.

좀 무서울 법도 한데 별로 무섭지 않았다.

단지 그냥 너무 어두운 것뿐..?

조금 추운 것뿐...?



캠핑의 고수들이어서 난 그냥 숟가락만 얹으면 됐다.

점심에 이어 저녁도 캠핑족들의 간편 음식인 누들을 먹었다.

언제 끓여서 먹나 했는데 생각보다 금방 끓었고 장작불의 힘을 느꼈다. 와우

순례길에서 빠질 수 없는 와인 역시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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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 장비 하나 없는 나 지만, 길 위에 만나는 좋은 사람들 덕분에 돈 주고도 경험하지 못할 소중한 경험을 했다.

물론 몸은 좀 고생이겠지만 매일 비박하는 거 아니니까..!!
원래 가려고 했던 마을의 한국인 알베르게는 내일 꼭 가야지. 아직 갈길이 멀다~



내일 얼어 죽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무사히 일어날 수 있겠지?











무계획이 계획이다.